▲ 박다혜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내부 전문가와 외부세력이 합세해 압도적인 힘과 정보의 우위로 만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노조는 불공정한 게임을 한 것.”

노동조합의 보도자료 속 문구가 아니다. 서울중앙지검이 2018년 삼성 노조파괴 사건에 대한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밝힌 내용이다. 그룹 차원에서 전문가를 영입·육성하는 것에 더해 고용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 출신 전문가·경찰·경총 등 “활용 가능한 모든 세력을 동원”해 조직적인 노조와해 공작을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경찰들과 노동부 고위관료들에 대한 기소가 줄줄이 이어졌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노동의 자락 곳곳에 있다. 그저 내내 목격만 되느냐, 위 사건처럼 널리 확인되느냐의 차이뿐이다. 하루 평균 7명의 사람이 일터에서 떨어지고, 끼이고, 깔리고, 불타거나 화학물질에 노출되거나 감전을 당해 죽는다. 그런데 남겨진 노동자와 가족은 운동장에 출입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국가가 사고 원인을 파악하고 다시는 같은 재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고 책임을 지게 하는 일련의 과정에 노동자와 유족은 아예 참여하지 못하거나 기울어진 발밑을 바라보며 자주 절망한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와 법체계의 중요한 책무인데, 그 과정에서마저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는다.

사업주·경영책임자·법인을 처벌함으로써 중대재해를 사전에 예방하고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는 것, 이것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의 목적이다. 노동부는 이와 같은 입법목적을 실현하고 중대산업재해 수사의 전문성 및 신뢰 제고를 위해 중대산업재해 수사심의위원회와 자문단을 구성했다. 검찰도 중대재해 사건 수사와 관련한 내·외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고 자문을 구한다며 자문위원회를 꾸리고, 안전사고 전문위원회도 설치한다고 발표했다. 그 외에도 각종 위원회와 협의체 등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문제는 누구의 의견을 듣고, 누구로부터 전문성을 찾으며, 누구의 신뢰를 받으려고 하는가다. 새로 어렵게 조성한 운동장이 이번에는 정말 평평하고 온전한지, 경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언론을 통해 들리는 면면은 최근에도 연이어 사망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대표적인 중대재해 다발사업장의 안전·환경 자문을 담당한 대형로펌 변호사, 현직 대기업 임원 등이다. 다른 위원들은 누구인지 알려진 바 없다. 하지만 비슷한 구성이라면 심의마다 위원의 제척·기피가 반복되거나 심의는 비공개일테니 모르는 새에 심판과 선수가 같이 뛸 수 있다는 건 지나친 우려일까. 그동안 어이없는 불기소처분에 첨부된 수사심의위·자문단 등의 깜깜이 회의 결과를 마주한 경험을 생각하면, 운동장의 기울기부터 따져야 하는 이 지난한 과정을 결코 소홀히 할 수가 없다.

반면 현장에서 날마다 위험을 온몸으로 경험하며 이를 바꾸고자 사투를 벌이는 노동자와 노동조합, 또 이들과 함께 일터를 들여다보며 고민하는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와 전문가에게 의견을 구한다는 소식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여전히 재해조사와 근로감독 등 재해 원인을 파악하고 조치가 필요한 현장을 지적하고 보완하는 과정과 그 결과는 노동자에게 열려 있지 않다.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틀리거나 재해의 원인을 제대로 짚어 내지 못하는 부실한 재해조사, 대대적 감독에도 같은 사고가 잇따르는 실효성 없는 근로감독에는 공통적으로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는 생각을 이제는 제발 해야 한다. 수사와 재판도 다르지 않다. 과연 지금과 같은 조사와 수사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사건의 공소유지가 가능할까. 불행히도 낙관하기 어럽다.

노동부는 2021년 9월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근로감독관이 중대산업재해에 대해 수사하는 것을 전제로 사법경찰직무법을 개정할 것을 국회에 피력했다. 사업주 등과의 유착관계나 감독권 해태·남용 우려에 대해 노동부는 중대재해 수사에 노동계·시민단체·유족의 감시장치가 작동할 것이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이때 제시한 사례가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스물넷 하청노동자 김용균 사건이다. 당시 시민대책위·유족이 추천하는 전문가 등을 포함한 특별조사위원회가 국무총리실 산하에 설치됐고, 사고원인 분석 및 개선과제 도출 역할을 했다. 그런데 노동부가 이후 다른 사건에서 노동자·유족, 또는 이들이 추천한 전문가를 참여하도록 하거나 의견을 구했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

‘삶이 있는 저녁’을 걱정하는 노동자와 그 가족에게는 적어도 이 운동장은 평평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부와 검찰은 노동자의 의견을 듣고, 수사대상이 아닌 노동자로부터 전문성을 찾고 노동자의 신뢰를 받아야 한다. 스스로 밝힌 감시장치를 제도화해 죽음의 일터에 대한 공정한 심판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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