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일 미래일터안전보건포럼 자문위원(노무법인 이든 대표노무사)
▲ 권영일 미래일터안전보건포럼 자문위원(노무법인 이든 대표노무사)

지난해 1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된 이후부터 올해 시행할 때까지 1년 동안 정부와 기업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중대재해를 막기 위한 많은 준비와 노력을 해 왔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위험요인을 조기에 발견하고 조치를 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건설업 사망재해는 멈추지 않고 있다. 현장에서 위험 조짐을 가장 빨리 몸으로 감지할 수 있는 사람은 현장 근로자다. 하인리히 1 대 29 대 300 법칙이 “인지되는 위험을 초기에 제거할 경우 하나의 큰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듯 위험을 인지한 근로자의 작업중지권 보장은 위험이 재해로 이어지지 않게 해 주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이 규정하고 있는 작업중지권을 근로자가 행사할 때 현실적 제약 요인을 살펴보고, 현장 근로자의 작업중지권이 실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근로자 작업중지권 행사의 현실적인 제약

2020년 시행된 전부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은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근로자가 믿을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때는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근로자에 대해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부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은 급박한 위험에 대한 판단 주체가 근로자임을 명확히 하고 있고,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법률 주요내용 설명자료’에서는 ‘급박한 위험’의 예시를 들고 있으나, 건설현장에서 근로자가 작업중지권을 권리로서 행사할 때 작업중지권 행사의 기준과 절차의 미비, 작업중지 근로자 개인의 책임문제, 공사중단 또는 공기 지연으로 인한 협력사의 손실문제 등 현실적 제약이 존재한다. 작업중지가 법이 보장하는 권리로서 현장에서 작동될 수 있도록 하는 실효적 조치가 필요하다.

근로자 작업중지권 작동성을 강화하기 위한 제안

첫째, 근로자 작업중지권 행사의 기준과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근로자가 현장에서 위험을 느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과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노사 간 협의체에서 기준과 절차를 의결해 규정화하고 근로자가 그 절차를 준수하면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을 명시해야 할 것이다. 정부 역시 근로자의 작업중지권 행사시 절차에 대한 지침을 마련해 작업중지제도가 현장에서 안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영국 산업안전보건청의 절차 지침 중 하나인 “근로자가 위험을 인식하고 관리자에게 보고하러 갈 때 동료·안전관리자 또는 노조대표자를 동행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제안한다.

둘째, 합리적 이유가 있는 근로자 작업중지권 행사에 대한 사업주의 불이익처우 금지 위반에 대해서는 벌칙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 현행법상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근로자 작업중지권 행사에 대해 사업주의 해고 및 기타 불이익한 처우 금지에 관한 규정은 있으나, 이를 위반해도 벌칙이 없어 유명무실한 규정이 될 우려가 있다. 사용자가 정당한 작업중지권을 행사한 근로자에게 불이익취급시 벌칙 규정을 신설해 실효성을 담보할 필요가 있다. 다만, 근로자 작업중지권 행사 남용을 막고 책임 있는 권리행사를 위한 제도적 보완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프랑스의 “작업중지권 남용시 해고사유로 인정” 또는 독일의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작업중지권 행사시 불이익처우 허용”과 같은 근로자 작업중지권 남용 제한이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근로자 작업중지권 행사로 입은 하도급사의 손실보전 방안이 필요하다. 근로자 작업중지권 행사로 공정이 지연돼 하도급사의 손실이 발생할 경우 원도급사가 이를 보전해 줄 필요가 있다. 공사 입찰 현장설명서 배부시 ‘공사계약 특수조건’에 작업중지로 인한 손실보전 내용을 명문화할 것을 제안한다. 이는 원도급사의 대외 신인도를 높이고 하도급사의 안전시공을 담보하는 기능을 할 것이다.

최근 중대재해처벌법상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보건 확보의무 이행의 일환으로 근로자의 작업중지권리 선포식을 하고 대내외적으로 선언하는 등 근로자의 작업중지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던 건설사들의 생각이 많이 바뀌고 있다. 사업주의 적극적인 수용 노력과 근로자의 책임 있는 권리행사가 조화롭게 이뤄져 건설현장 근로자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안전한 일터’에서 일하는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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