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하림 변호사(법무법인 이평)

대상판결 : 서울행정법원 2021. 12. 17. 선고 2020구합83430 판결

1. 사실관계 및 이 사건의 쟁점

A안전서비스(용역업체)는 상시 약 390명의 근로자를 사용해 공동주택관리·청소용역업 등을 영위하는 회사다. 속초B주공아파트(이 사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이 사건 아파트 입주자들을 대표하는 비법인사단이다.

용역업체는 2004년 12월1일 입주자대표회의와 이 사건 아파트의 관리사무를 위·수탁하는 내용의 공동주택 위·수탁계약을 체결하고 이를 갱신해 왔으며, 2016년 12월7일 계약기간을 2017년 1월1일부터 2019년 12월31일까지로 해 위 계약을 갱신했다(이 사건 위·수탁계약).

원고는 2013년 7월23일 입주자대표회의 및 용역업체와 사이에 이들을 모두 사용자로 표시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이 사건 아파트의 관리소장으로 근무하면서 매년 근로계약을 갱신해왔고, 2019년 1월1일 계약기간을 2019년 1월1일부터 2019년 12월31일까지로 하여 위 계약을 갱신했다(이 사건 근로계약).

용역업체는 2019년 11월14일 입주자대표회의에 2019년 12월31일자로 위·수탁계약이 종료됨을 통보하고, 2019년 11월27일 원고에게 2019년 12월31일자로 근로계약이 종료됨을 서면통보했다. 그러나 원고가 그 수령을 거부하자 2019년 12월20일 같은 내용을 원고에게 문자메세지로 발송해 원고는 그 무렵 위 문자메세지를 수신했다(이 사건 통보).

원고는 강원지방노동위원회에 입주자대표회의 및 용역업체의 원고에 대한 해고는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구제신청을 했다. 그러나 강원지노위는 ‘입주자대표회의만이 원고의 사용자에 해당한다’는 전제에서 용역업체에 대한 구제신청은 각하하고, 입주자대표회의에 대한 구제신청은 ‘원고는 기간제 근로자로서 근로계약에 대한 갱신기대권이 인정되지 않아 계약기간 만료로 근로관계가 종료됐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이에 원고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으나, 중앙노동위원회는 ‘용역업체만이 원고의 사용자에 해당한다’는 전제에서 입주자대표회의에 대한 구제신청은 각하하고, 용역업체에 대한 구제신청은 ‘해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첫째 이 사건 근로계약상 사용자 확정 문제, 둘째 원고와 입주자대표회의 사이에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돼 있어 원고에게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되는지 여부, 셋째 입주자대표회의의 근로계약 갱신거절이 부당해고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한편 대상판결은 용역업체도 원고의 사용자로 인정했다. 그러나 원고가 입주자대표회의 전보 발령에 응하지 않고 이 사건 아파트에서의 근무만을 희망함으로써 사실상 이미 위·수탁계약 종료로 그와 같은 근무조건을 제공할 수 없는 용역업체와의 근로계약 종료의사를 밝힌 것으로 볼 수 있어, 결국 원고와 용역업체 사이의 이 사건 근로계약은 쌍방 합의에 의해 종료됐다고 판단했으므로 이에 대한 논의는 생략한다.

2. 대상판결의 요지

가. 이 사건 근로계약상 사용자 확정

근로계약서도 그 계약 내용을 서면으로 작성한 이상 처분문서에 해당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문언대로의 의사표시의 존재와 내용을 인정해야 하며, 이 사건 근로계약서에는 입주자대표회의와 용역업체 모두 사용자로 명확히 표시돼 있고 이들의 직인이 날인돼 있으므로, 그 문언대로 이들 모두 원고의 공동사용자로 인정된다.

이 사건 근로계약서는 원고의 명시적인 요구에 의한 것이었는데, 이는 원고가 용역업체뿐만 아니라 입주자대표회의도 근로계약의 상대방인 사용자에 해당한다는 명확한 인식 아래 그와 일치하는 내용의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것이다. 설령 입주자대표회의와 용역업체의 내심의 의사는 오로지 용역업체에게만 단독사용자 지위를 인정하려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입주자대표회의와 용역업체 모두가 원고를 상대로 근로계약 체결 의사를 처분문서로 명확히 표시한 이상 그 문언대로 이들의 근로계약 체결의사를 인정해야 한다.

나아가 ① 입주자대표회의가 원고에게 임금을 지급하고 매월 급여지급명세서를 작성해 관리했던 점, ② 원고를 입주자대표회의에 고용된 고용보험 가입자로 신고하고 입주자대표회의가 매월 고용보험료와 각종 원천징수 대상 세금 등을 납입했던 점, ③ 입주자대표회의가 원고의 임금 동결과 인상 여부 등 근로조건을 결정했던 점, ④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원고의 근태를 관리하고 복무사항에 관해서도 최종 결재권을 행사했던 점 등을 종합하면 원고가 근로계약서 문언과 달리 입주자대표회의를 계약상대방에서 배제하고 용역업체만을 계약상대방으로 해 이 사건 근로계약을 체결했다고 인정하기는 부족하므로, 결국 입주자대표회의와 용역업체 모두 이 사건 근로계약의 사용자에 해당한다(입주자대표회의와 용역업체를 묶어 이하 ‘사용자’ 또는 ‘공동사용자’라고 함).

나. 입주자대표회의 부당해고 인정 여부

용역업체는 원고에게 이 사건 근로계약이 기간만료로 종료됨(갱신거절)을 통보했는데, 이는 사용자들 사이에 합의된 내용으로 단지 용역업체가 공동사용자를 대표해 그 의사표시를 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원고와 사용자들은 최초 이 사건 근로계약을 체결한 이래 총 6차례에 걸쳐 계약을 갱신해 왔고, 이 사건 근로계약 및 이 사건 위·수탁계약은 아래와 같이 규정하고 있어 원고와 사용자들 사이에는 ‘용역업체의 귀책사유가 없는데도 입주자대표회의의 의사에 따라 위·수탁계약이 종료할 경우, 입주자대표회의와 원고 사이의 근로관계는 유지된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됐다고 봐야 한다.

※ 이 사건 근로계약

바. 기타

가) 사업주체 또는 입주자대표회의와 사용자(갑) 간에 계약이 해지된 때에는 본 근로계약도 해지된 것으로 본다. 단, 사용자(갑)의 귀책사유 없이 사업주체 또는 입주자대표회의에 의해 일방적으로 계약이 해지(중도해지 포함)된 경우에는 공동주택 위·수탁관리의 특성상 사용자(갑1)과 근로자(을) 사이의 근로계약과 관련한 모든 책임은 실질적 고용주체인 사업주체 또는 입주자대표회의(사용자 갑2)에게 있으며, 아울러 공동주택 위·수탁관리계약서 제12조 제2항에 따라 근로자(을)의 고용승계 책임 또한 사업주체 또는 입주자대표회의(사용자 갑2) 및 새로운 관리주체에게 있다.

※ 이 사건 위·수탁계약

제12조(계약기간) ② 관리주체가 변경되거나 관리방법(자치관리)이 변경되는 경우 관리사무소에 근무하는 계약상대자의 직원(관리소장 포함)은 공동주택관리업무의 계속성 등을 위하여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새로운 관리주체에게 그 고용을 승계하여야 한다.(입찰공고 시에는 고용승계를 조건으로 명시하여야 함)

이 사건 위·수탁계약은 형식적으로는 용역업체의 계약종료 통보로 종료됐으나, 그 종료의 실질적 이유를 들여다보면 입주자대표회의가 원고와의 갈등을 이유로 갱신거절을 희망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사건 위·수탁계약은 계약갱신을 원하는 용역업체의 의사에도 입주자대표회의의 의사에 따라 종료됐다고 봐야 하고, 이는 근로계약상 입주자대표회의에게 ‘고용승계의무’(계약유지의무)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

즉, 원고로서는 이 사건 위·수탁계약 종료에도 이 사건 근로계약이 갱신될 것이라는 정당한 신뢰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입주자대표회의가 이 사건 근로계약 갱신을 거절할 실질적인 이유는 ‘원고와 입주자대표회의 사이의 불편한 관계’ 때문인데, 위 ‘불편한 관계’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도 알 수 없을뿐더러 그와 같은 추상적이고 막연한 갈등관계가 계약갱신 거절의 합리적 이유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입주자대표회의의 원고에 대한 이 사건 근로계약 갱신거절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

3. 대상판결의 의의

이 사건 근로계약서에는 두 명의 사용자가 명시돼 있다. 본 변호사가 이 사건을 대리해 기록을 검토했을 때 며칠은 앓았던 것 같다. 흔히 언급되는 ‘공동사용자’ 법리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사용자 외에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제3자(예를 들어, 원청업체)에 대해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를 주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두 명의 사용자가 명시적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한 경우로, 명시된 대로 두 명 모두가 사용자임을 주장하는 것과 두 명 중 실질적 사용자에 대해서만 사용자임을 주장하는 것 중 어느 편이 근로자에게 좋은 선택일지 결정 내려야 했다.

그러다가 두 명 모두에 대해 근로관계가 인정되더라도 여러모로 근로자에게 불리하지 않다고 판단돼 공동사용자 주장을 하게 됐다. 그리고 그 근거로 중노위가 인용한 판결 법리(대법원 2010. 7. 22. 선고 2008두4367 판결)가 아닌, 근로계약서를 처분문서로 봐 그 문언대로 해석해야 한다는 법리(대법원 2011. 1. 27. 선고 2010다81957 판결 등)를 인용했고, 그 주장이 받아들여져 입주자대표회와 용역업체가 공동사용자로 인정됐다.

이 사건에서 근로자가 입주자대표회의까지도 공동사용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세 가지 주된 요인이 있었다. 첫째는 근로자가 근로계약서를 체결할 때 적극적으로 요구해 입주자대표회의를 사용자로 포함한 점이고, 둘째는 용역업체 대표가 법정에서 ‘관리사무소 업무와 관련된 모든 결재와 결정은 입주자대표회의가 하고, 용역업체는 수수료를 받고 인력 소개를 해줄 뿐’이라고 진술하는 등 입주자대표회의와 용역업체를 둘러싼 기형적인 인력 고용 구조를 고백한 점이며, 셋째는 근로자가 입주자대표회의를 사용자로 볼 수 있는 증거자료들을 수집해 변호사에게 제공한 점이다.

용역업체가 아닌 입주자대표회의를 실질적인 사용자로 인정할 수 있는 여러 증거자료를 제출하더라도, 입주자대표회의가 근로계약서상 사용자로 명시돼 있지 않은 한 근로계약서의 문언을 뒤집고 입주자대표회의를 사용자로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반대로, 보통의 경우와 달리 근로계약서에 입주자대표회의를 사용자로 명시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뒷받침하는 다른 증거들이 없다면 여전히 불안하다. 1차 및 2차 변론기일에서 재판부가 이러한 문제로 많은 고심을 하던 것이 기억난다.

결국 법원에서의 소송이나 노동위원회에서의 심판도 모두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에 존재하는 근로계약서 등과 같은 자료들을 기초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근로자가 자신의 권리 보호를 위해 자신에게 유리한 자료들을 사용자에게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물론 인사 및 고용에 있어 절대적인 권한을 쥐고 있는 사용자에게 그러한 요구를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러한 차이로 인해 이 사건과 같이 승패가 엇갈릴 수 있다. 그만큼 이 사건이 주는 경각심은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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