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두고 ‘기업들 죽겠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기업은 법 적용이 두려워 신규투자나 경영활동을 못하고, 이대로라면 경제가 망한다고 한다. “동네 분식집도 중대재해법 공포 … ‘안전담당 이모’ 둬야 할 판”(매일경제 2022년 1월30일자)이라는 괴이한 기사까지 생산된다.

백헌기(67·사진) 대한산업보건협회 회장 생각은 다르다. 백 회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성격을 “대표이사 마인드가 안전보건에 가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이 안전보건경영시스템과 위험성평가를 제대로 수행해 안전한 일터를 만들도록 하는, 중대재해 예방에 초점을 맞춘 법이라는 얘기다. 협회는 1963년에 설립한 비영리기관으로 노동자 건강진단과 쾌적한 작업환경 조성을 위한 작업환경측정, 보건관리대행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협회는 중대재해처벌법 대응 매뉴얼과 평가시스템을 개발하고 컨설팅을 한다. 컨설팅은 대표이사 처벌을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 예방 활동에 초점을 두고 있다. 위험 요인을 줄이고 사업주가 사고 예방 의무를 다하도록 조언한다.

지난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협회 사무실에서 백 회장을 만났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과 관련한 의견, 협회의 준비 상황, 노사정에 바라는 점을 물었다. 백 회장은 한국노총 사무총장 출신으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을 지낸 안전보건 전문가다.

“중대재해 이어 중대시민재해 예방까지 준비”

- 2020년 7월 회장에 취임해서 올해 마지막 임기를 보내고 있다. 그동안 활동에 대한 소감은.
“새로운 일을 많이 해 보려 시도하고 있다. 19개 지역본부와 센터 등 전국적인 조직망을 구축하고 있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비대면 회의체계를 구축했고, 방송실도 만들었다. 산업보건 관련 동영상 콘텐츠를 만들어서 보급했다. 관련 기관들과 토론회를 개최하면 생중계를 통해 회원사들이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했다. 협회는 작업환경측정을 하고 산업보건 관련 연구 수행 등 종합적인 산업보건 서비스를 제공하는 최고의 산업보건 전문기관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뭘 하는지 모른다. 홍보를 강화하려 한다. 60년간 축적한 협회 데이터를 전산화하는 작업도 들어갔다. 이를테면 협회가 컨설팅한 정보를 온라인으로 손쉽게 파악하고 적절한 대안을 적시에 제시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다. 빅데이터 구축도 추진할 예정이다. 우리 자료를 안전보건 영역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공유하면 좋지 않겠나.”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협회 활동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연초부터 중대재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만 해도 경기도 양주 삼표산업 채석장 붕괴 사고, 광주 현대아이파크 붕괴사고, 현대중공업 끼임 사고, 포항제철소 내 충돌사고, 현대삼호중공업 추락사고 등 잇따라 일터에서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해마다 2천명 안팎의 노동자가 일하다 죽고 10만여명의 노동자가 다치는 산재공화국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중대재해를 줄일 수 있는 작은 단초라고 할 수 있다. 일터에서 황망하게 죽어 가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이기도 하다. 한계가 있는 산업안전보건법을 보완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중대재해법이 제대로 정착한다면 우리나라 산업보건 역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이 법은 산업재해만이 아닌 시민재해를 포괄한다. 특정 원료·제조물, 공중이용시설·공중교통수단의 설계·제조·설치·관리상의 결함으로 발생한 시민재해를 예방하려는 목적이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같이 불특정 시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법이다.”

“법 정착 위해 노사 공동 노력
전문기관 도움 적극 받아야”

- 노사 모두 중대재해처벌법에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노동계는 소규모 사업장에 법 적용이 유예·제외된 점을 한계로 꼽고, 경영계는 ‘기업을 옥죄는 법’으로 바라보고 있다. 경영계는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구체적으로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책임을 피하려면 사전에 어떤 조처를 해야 하는지 모호하다고 우려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가혹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는 점을 되새겨야 한다. 사업주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법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으면 좋겠다. 우선 산업 현장에서 법이 잘 뿌리내리도록 힘을 쏟되, 부족한 부분이 드러나면 보완하면서 실효성을 높이면 되지 않을까.”

- 연착륙하기 위한 방안은 없을까.
“많은 사업장에서 중대재해처벌법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안전보건체계는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지 혼란을 겪고 있다. 두 가지 해법이 있다. 하나는 노사 협력이다. 사람 목숨은 노와 사의 이해관계가 갈리는 문제가 아니라 함께 추구해야 하는 공동 목표다. 노사 공동으로 안전보건체계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둘째는 협회처럼 현장을 잘 알고 현장에서 다양한 사업을 펼쳐 본 단체의 실효성 있는 진단과 컨설팅을 받아야 한다. 중대재해가 중대시민재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사용자와 지방자치단체 등은 유념할 필요가 있다. 2013년 구미 불산 누출 사고로 5명이 죽고 주민 1만2천명이 진료를 받았다. 만약 당시 바람이 아파트쪽으로 불었다면, 정말 끔찍했을 것이다. 이런 사고가 없도록 기업이 준비해야 한다. 죽음은 무조건 예방해야 한다.”

- 기업 역할이 중요해 보인다. 기업에서 특별히 고려하거나 준비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중대재해처벌법은 대표이사 마인드가 안전보건에 가도록 만들어 주는 법이다. 일부 회사에서 처벌을 피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러면 법 제정 의미가 없어진다. 대표가 앞장서 안전보건경영시스템과 위험성 평가 절차를 만들어서 우리 사업장의 위험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야 한다.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기업 풍토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 협회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중대재해처벌법 안착을 위해 사업장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정확한 안전보건 진단을 통해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을 구축하고 안전보건 활동을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중대재해처벌법 대응 매뉴얼 및 평가시스템 개발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 사업장의 유해위험요소가 어디인지 찾아서 투자할 수 있도록 제시한다. 이를 위해 별도 조직을 만들고 있다. 가칭 ‘중대재해예방실’을 신설해 사업장 산업보건시스템 구축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 협회가 우선적으로 고려하거나, 차별화한 지원 대책이 있을까.
“협회에는 6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산업현장에서 쌓아 온 경험과 노하우가 있다. 같은 병이라 할지라도 의사의 경험과 노하우에 따라서 치료 방법이 달라진다. 컨설팅도 마찬가지다. 협회가 진행하는 컨설팅은 중대재해 예방에 초점을 맞췄다. 사업주가 처벌을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 중대재해 예방이 핵심이다. 위험 요인을 줄이고 사업주가 사고 예방 의무를 다하도록 조언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 노사가 안전보건과 관련해 생산적인 논의를 이어 가도록 만들겠다. 사업주의 일방적인 안전보건 관리는 노동자의 믿음을 얻지 못한다. 노사가 함께 안전보건관리체계를 만들도록 조언하고 솔루션을 제시할 것이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노사정, 5명 미만 사업장 산재예방 고민해야”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과 관련해 노사에 조언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현장은 혼란스러운데 노사가 갑론을박 공방만 주고받는다면 어렵게 마련된 중대재해처벌법의 연착륙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사업장 단위 노사의 공동 노력에 더해 국가 차원에서 고민과 해법도 필요하다.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 중대재해법 안착을 위해 선언적 수준의 사회적 합의를 하고, 이를 토대로 지역단위와 사업장 단위 노사의 안전보건예방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노사정 사회적 대화에서도 협회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에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있다. 어떤 논의가 이뤄지고, 어떤 합의가 도출되길 기대하나.
“기업에 안전보건 경영 문화가 정착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김용균 노동자 죽음 이후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개정됐지만 죽음이 이어지고 중대재해처벌법이 나왔다. 이 법도 하루아침에 정착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노사정이 같이 논의·대화·홍보하면서 문화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2024년 1월27일부터 50명 미만 기업에도 적용된다. 이대로라면 엄청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들 기업은 스스로 안전보건 시스템을 만들기도, 안전보건인력을 채용하기도 힘들다. 경사노위가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정부가 지원방안을 내야 한다. 법의 사각지대인 5명 미만 기업의 중대재해는 손 놓고 있을 것인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도 머리를 맞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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