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잠을 설치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옆지기가 깨지 않게 조심스레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다시 잠을 청해도 잘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꼼짝없이 누워서 온갖 상념만 되뇌는 것보다는 책이라도 집어 들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펴낸 <일하다 마음을 다치다>(나름북스·1만7천원·사진)를 보면서 새삼 알게 됐다. 매일 불면에 시달리는 것이 내 탓만은 아니었구나.

장시간 노동, 성과 압박, 괴롭힘, 성차별은 직장에서 무수히 벌어지는 일이다. 고객의 민원건수로 평가받는 노동자는 오늘도 회사에 나오기가 두렵다. 일하다 마음을 다쳐도 여전히 한국 사회는 노동자의 정신건강을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해 스스로 자책하게 만든다. “왜 나는 멘털이 이렇게 약할까?”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2020년 사무금융노조 조합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절반이 넘는 노동자들이 직무스트레스 고위험군(상위 25%)으로 나타났다. 감정노동에서 조직의 보호 체계를 통해 지지받지 못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90% 이상, 감정 부조화를 겪는 비율은 대략 80%에 달했다.

이렇게 많은 노동자들이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다면 개인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 사실 일터의 노동환경이 노동자의 직무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정신건강에까지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왜 회사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을까? 직무스트레스가 노동자의 몸과 마음을 취약한 상태로 이끈다면 구체적으로 노동자들이 어떤 영역의 직무스트레스를 겪고 있는지, 얼마나 노동자의 마음이 다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그렇다면 노동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물음에 대한 해답이 <일하다 마음을 다치다>에 담겨 있다. 직무스트레스에 대한 분석과 아울러 직장은 어떻게 노동자의 정신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지, 일하다 마음이 다치지 않는 직장을 만들기 위한 경로를 조망하고 있다. 이론에만 머물지 않고 정신질병과 자살에 대한 산업재해 신청방법까지 친절히 소개하고 있다.

김경수 사무금융노조 정책실장
김경수 사무금융노조 정책실장

책에서는 명시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지 않지만, 끝까지 읽으면 독자들에게 무엇을 주문하는지 알 수 있다.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위해 요구하고 투쟁하라고. 어려운 과제임은 분명하지만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성과주의와 경쟁이 가장 일상화한 업종인 금융계에서도 이런 변화가 있었다. 모 증권사에서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문제 제기로 과당경쟁과 불완전판매의 온상으로 지목돼 왔던 KPI(핵심성과지표)가 폐지됐다. 불면과 우울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에게 상담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처럼 실적압박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터의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운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이 책의 메시지인 것 같다.

독일의 법학자 루돌프 폰 예링은 말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이 책은 같이 일어나 우리 스스로 우리의 마음을 지키자고 얘기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