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아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대상판결 : 헌재 2021. 12. 23. 선고 2020헌마395

1. 사안의 개요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3일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외국인고용법)에 따라 한국 업체에 알선돼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했다(헌재 2021. 12. 23. 선고 2020헌마395).

5명의 청구인들은 모두 외국인고용법에 따라 외국에서 모집돼 고용허가를 받은 국내 업체에 알선된 이주노동자들이다. 이들은 근로계약 위반, 무면허 건설기계 운전 강요, 위약금 예치, 보호장구 미지급, 산재 목격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이유로 사업장 변경을 원했다. 그러나 모두 고용노동부의 ‘외국인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업장 변경 사유’(외국인고용고시)에 해당하지 않아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없었다. 이에 이들은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는 외국인고용법 25조1항, 4항과 외국인고용고시 4조, 5조 및 제5조의 2의 위헌성을 심사해 달라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2. 헌재 결정에 대한 검토

헌재 다수의견은 “외국인 근로자의 사업장 변경에 엄격한 사유를 요구함으로써 제한되는 사익은 결코 적지 않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사업장 변경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사용자의 안정적 인력 확보와 “최근 불법체류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상황”에서의 외국인 근로자의 효율적인 관리 필요성 등의 이유로 입법자의 재량의 범위를 넘어 명백히 불합리하다고 볼 수 없으므로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2인의 재판관(이석태·김기영)은 외국인 근로자는 내국인을 구인하지 못해 외국인 고용이 허가된 사업장으로만 이직이 가능하므로 사업장 변경을 제한함으로써 내국인의 고용을 보호한다는 것은 합리성이 없고, 사업장 변경 사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은 오히려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유력하며, 사업장 변경 제한으로 외국인 근로자들의 근로조건과 작업환경은 더욱 열악해지고, 이로 인해 내국인 근로자의 해당 업종 및 사업장 기피현상이 더욱 심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고, 외국인 근로자가 사용자와 대등한 위치에서 자유롭게 근로조건을 결정할 수 없도록 강제하는 것이라는 등의 이유로 심판대상 조항이 청구인들의 직장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반대의견을 밝혔다.

헌재 다수의견은 이주노동자의 직장선택의 자유는 법률로써 정해지는 외국인력도입 제도의 내용에 의해 비로소 구체화됨을 전제로, 심판대상 조항에 대해 헌법 37조2항에 따른 비례의 원칙이 아닌, “그 내용이 합리적 근거 없이 현저히 자의적인 경우에만 헌법에 위반된다”는 완화된 심사기준을 적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헌재가 내국인의 직업선택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문제된 다른 사건에서 비례의 원칙을 적용해 왔고(헌재 2003. 10. 30. 선고 2000헌마563 등), 직장선택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직업선택의 자유에 대한 제한 중 침해의 정도가 가장 크다는 점을 고려할 때 취업을 위해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에 한정된 완화된 심사기준 적용은 납득하기 어렵다.

외국인력도입 제도는 본디 외국에서 인력을 모집해 국내 업체에 알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알선 과정에서 외국인이 국경을 넘나들게 된다는 점에서 국내에서 이뤄지는 직업소개와 차이가 있고 그에 따른 규율이 필요하나, 그렇다고 해서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외국인은 내국인과 달리 국내 체류 및 활동에 대해 입국의 목적, 정주 여부 등에 따라 여러 가지 제한이 부가될 수 있다. 그러한 제한을 부가함에 있어 입법 또는 행정기관에 상당한 재량이 인정될 수 있다. 또한 외국인의 취업에 대해 업종제한 등 규제를 할 필요성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넓은 입법재량이 인정된다고 해 비례원칙이 위헌성심사 기준으로서 배제된다고 볼 수 없다. 대부분의 제도는 입법재량이 인정되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며, 재량이 많다고 헌법 37조2항 적용을 배제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헌재가 사업장 변경 제한에 대해 헌법 37조2항을 배제한 것은 이주노동자들의 직장선택의 자유가 외국인력도입 제도에 의해 형성되고 구체화된다는 논리에 근거한 것이다. 즉 이주노동자의 경우 직장선택의 자유는 헌법에 의해 직접 보장되는 실질적 내용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헌재의 입장은 국경을 넘는 직업알선 제도에 불과한 외국인력도입 제도의 의의를 지나치게 확장한 나머지 헌법과 법률 간에 주객이 전도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한편, 심판대상 조항들은 직업선택의 자유에 대한 제한 중 침해의 정도가 가장 큰 직장선택의 자유를 가장 극단적 방식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에 청구인들은 해당 제한이 강제노동금지 원칙에 대한 위반으로서 근로의 권리에 대한 침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헌재는 헌법상 근로의 권리에 열악한 근로환경을 갖춘 사업장을 이탈해 다른 사업장으로 이직함으로써 사적으로 근로환경을 개선하거나 해결하는 방법을 보장하는 것까지 포함된다고 볼 수 없고, 따라서 사업장 변경 제한은 근로의 권리와 무관하다고 봤다. 그러나 사업장 변경 제한은 현재 일하는 사업장에서 사용자에 대한 노동자의 협상력을 떨어뜨림으로써 근로조건이나 근로환경이 저하되거나 개선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온다. 근로의 권리에 의거 국가는 건강한 작업환경, 일에 대한 정당한 보수, 합리적인 근로조건을 보장할 의무를 부담한다. 따라서 국가가 되레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고 노동자들의 협상력을 떨어뜨려 그 반대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근로의 권리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헌재는 나아가 한국이 국제노동기구(ILO)의 강제노동철폐협약(105호)을 비준하지 않았고, 설령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는 것이 위 협약에서 말하는 ‘강제노동’에 해당할지라도 그것만으로 곧바로 위헌이라고 볼 수도 없다고 판시했다. 한국이 105호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강제노동협약(29호)을 비준했고, 올해 4월 발효를 앞두고 있다. 따라서 비준한 협약은 언급조차 하지 않고, 비준하지 않은 협약을 언급하며 비준하지 않았음을 근거로 내세운 것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사업장 변경 제한이 ILO협약에서 말하는 ‘강제노동’에 해당할지라도 그것만으로 곧바로 위헌이라고 볼 수 없다고만 하고 더 이상 검토하지 않은 점 역시 의아스럽다. 이는 헌재가 다른 결정(2007. 8. 30. 선고 2004헌마670)에서 유엔 사회권규약의 내용은 헌법의 해석에서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하며 국제법 존중주의를 명시한 점과도 대비된다.

강제노동금지는 노동법의 핵심 원칙 중 하나다. 근로기준법은 일찍부터 위약 예정의 금지(20조), 전차금이나 그 밖에 근로할 것을 조건으로 하는 전대채권과 임금의 상계 금지(21조), 근로계약에 덧붙여 사용자에 의한 강제 저축 또는 저축금의 관리를 규정하는 계약 체결 금지(22조) 등 노동자가 퇴직의 자유를 제한받아 부당하게 근로의 계속을 강요당하는 것을 방지하고, 근로계약 체결시의 근로자의 직장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며 불리한 근로계약 해지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을 둬 왔다(대법원 2004. 4. 28. 선고 2001다53875 참조).

또한 헌법은 근로의 권리(32조1항)와 직업선택의 자유(15조)를 보장하고 강제노역 금지(12조 1항)를 규정하는 외에 37조1항에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고 재확인하고 있다. 따라서 강제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가 헌법상 보장되지 않는다는 취지로도 해석될 수 있는 헌재의 결론은 성급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다수의견은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을 허용하는 것은 안정적 노동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사용자의 이익에 반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용자의 이익을 위해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을 제한할 필요가 있음을 전면으로 내세운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용자와 노동자 간의 힘의 불균형을 전제로, 노동자를 보호함으로써 계약자유의 원칙을 실질적으로 관철함을 목적으로 하는 노동법의 원리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영세한 사업장”들이 한국 경제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불이익을 더 취약한 노동자들에게 전가시키는 것은 적절한 해결책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

다수의견은 사용자의 사익(私益) 외에 이주노동자들의 체류관리라는 “공익상” 필요도 내세우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의 미등록 체류 방지를 위해 사업장 변경이 필요하다고 볼 만한 객관적 근거가 전무하다. 오히려 반대의견도 지적하듯, 관련 통계는 현행과 같은 과도한 사업장 변경 제한이 미등록체류를 유발함을 뒷받침하고 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조차 그러한 주장을 제기하지 않아 헌재의 독단적 주장에 불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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