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겨울 새벽 동트기도 전에 통통거리며 작은 배가 항구에 들어왔고, 가자미와 곰치와 도루묵을 내렸다. 씻고 손질하고 분류하느라 사람 손이 바쁘다. 허리 잔뜩 굽는다. 태산의 능선을 닮은 저 이의 노동은 오늘 또 한 끼, 따뜻한 밥을 상에 올리는 힘이다. 줄줄이 딸린 아이를 다 먹이고 입히고 가르친 힘이다. 꼬물거리는 손주 입힐 우주복을 살 돈이 저기 잔뜩 굽은 허리에서 나왔다. 마를 날 없어 한겨울 부르튼 거친 손끝에서 밥이 나왔다. 오늘 서울 광화문 네거리엔, 또 출근길 여의도 길거리에 말쑥한 겨울 코트 차림 사람들이 연신 허리 굽혀 겸손을 칭한다. 출정의 때면, 위기의 순간이면 그 모습 어김없어, 사람들은 선택의 때가 다가왔음을 생각한다. 온갖 말이 넘친다. 성찬이다. 누구나가 잘 먹고 잘사는 세상이 이미 그 속에 있다. 빌딩 숲 사이 된바람길을 뚫고 가느라 일 나선 사람들은 옷깃 여미고 고개를 푹 숙인다. 그 앞 서점 외벽 글판에 겸손은 머리의 각도가 아니라 마음의 각도라고 쓰여 있다. 출입금지. 언젠가 촛불 넘쳐흐르던 그 앞 광장은 지금 공사 중이다. 집합금지. 모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빈틈을 찾느라 비밀 작전을 펼친다. 많은 것이 변했다고, 또 변한 게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 또 일하러 나갔다 죽어 돌아온 이의 유족이 기자회견을 마치고 허리 굽혀 인사한다. 추모하느라 고개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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