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장 휴게시설 설치를 의무화한 산업안전보건법이 8월 시행된다. 정부는 시행대상과 휴게시설 설치 기준 등을 하위법령에 담기 위해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현장 노동자와 전문가들이 구체적인 제안을 해 왔다. 5회에 걸쳐 게재한다.<편집자>
 

정혜림 철도노조 서울기관차승무지부 여성부장
▲ 정혜림 철도노조 서울기관차승무지부 여성부장

저는 한국철도공사 서울기관차승무사업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16년차 기관사입니다. 새마을·무궁화·화물열차 등 일반 열차의 운전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열차 운전실에 추가로 노동자들을 위한 휴게공간이나 화장실을 갖춘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입사 이후, 16년이 지난 지금도 기관사들의 화장실 이용에 관한 환경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4~5시간을 운행하는 동안 화장실에 가지 못합니다. 한 번쯤 하늘이 노래지는 상황이 생길 땐 무전기에 대고 저는 지금 숨이 넘어갈 지경이니 차를 세워놓고 화장실을 다녀오겠노라고 광고를 하고, 가장 가까운 화장실을 찾아 전속력으로 뛰어야 하는 굴욕을 겪습니다. 휴식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운전업무가 끝나고 나서야 합숙소에 들어가 자는 순간이 곧 휴식시간이 됩니다.

기관사들은 열차시간에 맞춰 근무 스케줄이 정해지는 이른바 ‘불규칙 노동’을 합니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출근을 하고 주말과 공휴일도 우리의 쉬는 날과 상관이 없습니다. 식사시간과 휴식시간조차 열차 일정에 따라 매일 달라집니다.

여객열차를 운행하는 경우 정차역 정차시간은 평균 2~3분입니다. 장거리 운행 도중에 화장실을 다녀와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는데 정차시간 안에 객차에 있는 화장실을 다녀오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승무원을 위한 화장실을 마련해 놓은 역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화물열차의 화장실 이용은 더욱 어렵습니다. 다른 열차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기관사의 생리현상을 해소해 주는 시스템은 먼 나라 이야기입니다.

이런 환경은 여성 기관사에게 더 열악합니다. 여성노동자의 ‘그날’은 곤란할 수밖에 없습니다. 화장실을 자주 이용할 수 없어서 각자의 방법으로 ‘그날’을 버텨 냅니다. 탐폰이나 생리컵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열차를 운전해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하는 일이므로 짐을 많이 챙길 수도 없습니다. 차량기지 내에서 급하게 화장실을 찾기도 하는데 여자화장실이 따로 마련돼 있는 건물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근거리 화물열차를 운행하는 날은 운전실에서 7~9시간 머무는데 그사이에 식사와 화장실을 해결해야 합니다. 대기시간이 길지도 않고, 휴식시간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 유동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역사 내에 있는 시설을 이용하는 일도 어렵습니다. 어차피 각 역에 설치된 스크린도어로 인해 선로에서 승강장으로 이동할 수 없어 운전실 공간이 전부입니다.

전동열차란 보통 지하철이라고 많이들 알고 계시는 열차인데요. 전동열차 기관사들은 열차 지연이 업무성과와 직접 관련 있어 촌각을 다투다 보니 운행 중 이동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화장실 문제와 관련해 운전실 내에 비상시 사용할 수 있는 간이 변기가 마련돼 있는 경우도 있지만, 내부가 보이는 운전실에서 간이 변기를 펼치는 용기를 내는 기관사는 흔치 않습니다. 3~4시간의 운행시간 동안 화장실조차 갈 수 없고, 숨 돌릴 틈도 없습니다.

기관사들은 업무 특성상 다른 지역으로 이동이 잦습니다. 해당 구간까지 운행을 마치면 타 승무원과 교대를 하고 합숙 시설로 향합니다. 밤에 도착해서 다음날 돌아오기도 합니다. 그렇다 보니 합숙시설에는 기본적으로 숙박을 위한 방이 마련돼 있습니다. 보통 6.6제곱미터(2평) 남짓의 방에 침구가 마련돼 있습니다. 지어진 시기에 따라 합숙시설의 환경이 많이 다릅니다. 방에 화장실이 딸려 있기도 하고 공용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열악한 곳은 여자화장실이 따로 없습니다. 남녀공용 화장실에서 편하게 볼일을 보기는 사회 통념상 어려운 일입니다. 합숙시설에 기본적으로 방이 제공되다 보니 휴게실 설치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낮습니다. 휴게실이 있다 하더라도 좁거나 남녀공용 휴게실이 대부분입니다.

철도는 과거부터 남성노동자 비율이 지배적으로 높았습니다. 환경이 이렇다 보니 여성노동자 화장실을 비롯한 휴게실, 합숙 시설 등 기본 시설들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여성 기관사가 다른 사업소로 전보를 신청하기 어렵게 만드는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많은 여성을 수용할 전반적인 시설이 준비돼 있어야만 합니다.

지금은 과거에 비해 ‘쉼’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잠깐 서서 신호를 기다리는 공간에도 햇볕을 피하는 천막이 설치되기 시작했습니다. 노동자의 휴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업주가 노동자들에게 휴게시설을 마련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도록 법이 개정되고 올해 시행령이 개정된다고 합니다. 노동조합에서 휴게공간에 대해 요구를 할 때 가장 많이 돌아오는 답변이 비용 문제입니다. 노동자들은 편안하게 쉴 권리가 있으며 생리현상을 해소하는 일에 불편을 감수하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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