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국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

법이 여러분에게 원칙적으로 직장을 바꿀 수 없도록 정하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또한 직장을 바꿀 수 있더라도 그 변경 횟수를 제한하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마도 여러분은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느냐며 질문자인 필자를 타박할 것이다.

그런데 지난 23일 헌법재판소는 이주노동자 5명이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외국인고용법) 25조1항 등에 대해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에서 재판관 찬성 7, 반대 2 의견으로 합헌결정을 내렸다.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횟수와 사유를 제한하는 외국인고용법 및 관련 고용노동부 고시 각 규정이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선고했다(헌법재판소 2021. 12. 23. 선고 2020헌마395 결정). 불행히도 헌법재판소는 10년 전 결정에서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헌법소원을 낸 청구인들은 비전문취업(E-9) 체류자격을 받아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사장이 무면허로 지게차를 운전하라고 요구해 다른 직무를 요청하니 출신국으로 돌려보내겠다고 협박을 받았다고 한다. 사장이 근로기준법에 금지된 위약금 명목으로 300만원을 갈취하려 들었고, 유해한 유기용제를 다루다 산재를 당했는데도 보호장구 지급요구를 거절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대재해를 당해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도 그 회사에서 일했다고 한다. 이들은 외국인고용법과 노동부 고시에 나열된 ‘사업장 변경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같은 사업장에서 계속 일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이들은 고용허가제가 헌법상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 평등권, 신체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근로의 권리를 위반한다며 지난해 3월 헌법소원을 냈다.

외국인고용법은 이주노동자가 특정 사업장과 근로계약을 맺는 것을 전제로 대한민국에 입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는 특정 사업장에서만 일을 할 수 있으며 사업장 변경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그러다 보니 사용자가 근로계약을 위반하거나 폭행·학대·강제노동·인종차별 등을 저지르는 경우에도 계속해서 이주노동자는 근로를 제공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고용법은 예외적으로 ‘사용자의 근로계약 해지와 근로계약 만료 후 갱신거절, 사업장의 휴폐업 또는 고용허가가 취소된 경우, 사용자의 근로조건의 위반이 있을 때’에만 이주노동자가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있도록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변경하고 싶으면 (계약해지에 대해) 사용자의 동의를 얻거나 노동부 고시에 열거된 사용자의 위반사유를 노동자가 입증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이주노동자는 사업주의 명백한 불법이나 부도·폐업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업장을 변경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이주노동자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 폭언이나 폭행, 성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직장을 옮기지 못한 채 노동을 강요당하게 된다. 이런 현실은 사업장 이탈을 부추겨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양산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주노동단체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업장 변경 제한을 강제노동의 주범으로 지목해 오고 있다.

그럼에도 헌법재판소는 “외국인 근로자가 근로계약을 해지하거나 갱신을 거절하고 자유롭게 사업장 변경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한다면, 사용자로서는 인력의 안정적 확보와 원활한 사업장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최근 불법체류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상황에서 외국인 근로자의 효율적인 관리 차원에서도 사업장의 잦은 변경을 억제하고 취업활동 기간 내에서는 장기 근무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판결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해야 할 헌법기관이 사업주의 사업적 희망사항을 사업장 변경 제한의 필요성으로 둔갑시키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처우 및 작업환경 개선으로 장기간 고용관계를 지속하도록 제도개선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강제노동을 초래할 수 있는 사업장 변경 제한을 장기 근무의 방법으로 두둔한 것은 참으로 충격이다.

우리 헌법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근로조건의 기준을 법률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모든 형태의 강제노동 사용을 금지하는 강제노동협약(29호)을 비준한 상황에서, 직업선택의 자유 침해를 넘어 강제노동 위험성이 다분한 사업장 변경 제한을 옹호하는 헌법재판소의 인권지수는 도대체 어떤 수준인가. 헌법재판소의 반인권적 다수의견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