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이제 한 달여가 지나면 시행된다. 그러나 아직 시행조차 되지 않은 이 법을 뒤흔들기 위한 반격의 조짐이 보인다. 신호탄은 유력 대선 주자가 쏘아 올렸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기업인들의 경영의지를 위축시키는 강한 메시지를 주는 법”이라며 기업경영에 큰 걱정이 없도록 자신이 집권하면 손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래서일까? 한국경영자총협회는 16일 ‘산업안전 관련 사업주 처벌 국제 비교 및 시사점’ 보고서를 발간했다. 그리고 주요 경제지를 비롯한 보수언론을 통해 “세계에서 제일 센 한국의 산업재해 처벌” “중대재해법 제재 수위 과도 … CEO 형사처벌은 한국이 유일” 등과 같은 공세를 취하고 있다. 경총은 이런 보고서 발간 취지에 대해 “주요 외국과의 사업주 처벌수위 비교를 통해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실효적이고 합리적인 사업안전 정책과 법·제도 개선 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며 무척이나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말하지 않는 것

그러나 이런 ‘사업주 처벌수위’라는 단순 비교는 정확한 사실 비교라고 할 수 없다. 아니,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다. 왜 그렇냐고? 간단하게 말하면 각국의 산재사망을 규율하는 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각국에는 어떤 법이 있고, 어떤 법리로 노동자의 산재사망에 대해 사업주를 처벌하고 있으며, 사업주에게 안전·보건 책임과 의무 이행을 강제하고 있는지는 설명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중대재해처벌법 도입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영국을 보면 이렇다. 영국은 산재사망 사업주 책임을 인정하는 법리에서, 기본적으로 법인을 개인인 사업주와 동일하게 형사책임을 부담하는 주체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산업안전보건법령 위반행위에 대해 곧바로 법인을 대상으로 벌금형의 형사처벌을 하고 있다. 게다가 벌금형은 상한을 정하지 않은 벌금형이다. 즉, 개인인 사업주보다 강한 벌금형을 해당 법인에 부여해서 그 책임을 묻는 것이다. 단적인 사례로 영국의 토목회사인 코츠월드 지오테크니컬은 2011년 근무 중 노동자를 사고사망에 이르게 했고, 연 매출의 250%에 해당하는 벌금을 내고 이듬해 파산했다. 영국은 또한 산재사망 여부와 무관하게 법 위반이 확인되면 무거운 처벌을 한다. 2019~2020년 기간 동안 사건당 평균 벌금 선고형은 11만파운드(약 1억7천585만원)로, 100만파운드(약 16억원) 이상의 벌금형이 선고된 건도 7건이나 된다. (심지어 이런 사례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비하기 위해 경총이 마련한 토론회 때 발표된 내용이다.)

이런 영국의 예만 보더라도 영국이 노동자의 산재사망에 얼마나 엄격한 기준을 갖고 한국보다 강한 책임을 물어 왔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개인인 사업주를 처벌하는 것인지, 법인을 처벌하는 것인지에 따라 결과가 전혀 다른 이야기가 성립하는 것들을 교묘하게 편집해 뒤섞어 놓고 마치 한국만 유독 과하게 처벌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낮은 처벌 관행

중대재해처벌법은 매일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도 회사 경영에 아무런 타격이 없기 때문에 안전·보건 관리에 투자하지 않아도 되며, 정작 경영책임자는 아무 책임을 지지 않고 실권을 갖지 못한 하급관리자만 죗값을 치르게 되는 슬픈 현실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국민대중의 분노와 공감대가 만들어 낸 사회적 산물이다. 지난 7월 대법원이 산업안전보건법의 산재사망 양형기준을 강화하는 등의 제도정비도 동반됐다. 그러나 여전히 현재 우리 사회는 그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뭇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산재사망 사건에 대해서도 관대한 처벌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 25일 이천물류센터 증축현장에서 38명의 목숨을 앗아 간 책임으로 재판에 넘겨진 발주처 한익스프레스 팀장에게 대법원은 최종 무죄를 확정했다. 내년 1월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는 고 이선호님 산재사망 책임자 재판에서 검찰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책임자인 ㈜동방을 기소하며 벌금 500만원을 구형했다. 마찬가지로 내년 초에 있을 고 김용균 노동자 산재사망 관련 1심 선고를 앞두고 책임 회피로 일관하는 한국서부발전에 엄한 책임을 물어 달라고 호소하는 탄원서가 시민사회에서 조직되고 있는 현실은 여전히 암울하다. 한 언론이 올해 전국 법원에서 1심 선고된 산재 사망사고 131건을 분석했는데 사업주 중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벌금도 평균 654만원에 불과했다. 좀체 납득하기 어렵다. 이쯤 되면 엄하게 처벌할 수 없는 법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이 문제라고 외쳤던 그동안의 목소리가 무색해진다. 그동안 산재사망이 ‘기업에 의한 살인’이며 ‘기업의 조직범죄’라고 외쳤던 목소리가 법정에는 미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생각된다. 아니 노동자의 목숨값을 가장 헐값 취급하는 이들에게 판결을 맡겨 온 것이 아닌지도 의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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