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9일 나온 ‘임금 불평등에서 기업의 역할(The Role of Firms in Wage Inequality)’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임금 격차의 3분의 1은 노동자 숙련의 차이가 아니라 기업 간의 임금 격차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기업 간의 격차는 생산성 차이와 임금 결정력의 차이를 말한다. 따라서 교육이나 성인 학습 같은 노동자를 중심에 둔 정책에 더해 기업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추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OECD 20개 회원국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서로 비교 가능한 노동자들의 임금 격차는 고임금 기업과 저임금 기업 사이 2배에 달했다. 기술과 숙련 수준이 같더라도 고임금 기업에 일하는 노동자의 임금이 저임금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보다 2배 높다는 말이다. 구직 비용이나 이주 비용 때문에 노동자들은 쉽게 회사를 옮길 수 없는데, 이 경우 임금은 노동자의 숙련이 어느 수준인지가 아니라 기업이 얼마를 줄 수 있는지에 따라 정해진다.

기업의 지불 능력은 어느 정도 생산성에 의해 결정된다. 생산성이 높은 기업은 성장에 필요한 노동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고임금을 지불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신기술 도입, 디지털 모델 확대, 고성과 경영 시행 등을 통해 실적이 낮은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생산성과 임금 증가를 통한 경제성장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임금 불평등도 줄일 수 있다는 게 OECD의 판단이다.

낮은 노동시장 이동성은 기업의 생산성 격차와 임금 격차 사이의 연관성을 강화한다. 노동자가 나은 기회를 찾아 저임금 기업을 그만두려 해도 기업 간의 이동을 막는 장벽이 높으면 일자리를 바꾸기 어렵다. 보다 나은 일자리를 향한 노동자들의 노동시장 이동성이 높아져야 임금 불평등을 줄일 수 있다. 이동성이 낮은 이탈리아와 이동성이 높은 스웨덴을 비교할 때 임금 불평등에서 15% 정도 차이가 났다. 노동시장 이동성의 증대는 저임금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임금 경쟁력을 높이고 고임금 기업으로 하여금 채용 인원을 쉽게 늘릴 수 있도록 만든다.

노동시장에서 노동력의 집중(concentration)이 심할수록 임금은 낮아진다. 특정 업종이나 직종·직업에 노동자가 집중돼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아지면 임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OECD 보고서는 노동시장 집중도에 따른 노동자의 임금 손해율을 6~7%로 추정한다. 최저임금과 단체교섭 같은 임금 결정 제도의 쇠퇴에 따른 노동자의 교섭력 약화가 노동시장 집중과 결합하면서 임금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국내외 지역으로의 외주화도 임금 하락에 일조했다.

지나친 노동력의 집중은 사용자의 임금 결정력을 높여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임금을 떨어트린다. 노동력 집중이 심한 직업군과 노동시장 영역에서는 사용자들끼리의 경쟁을 촉진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동시에 사업장에서 노동자 대표성을 강화하고 단체교섭을 촉진함으로써 사용자의 지나친 임금 결정력을 규제해야 한다.

기업 간의 임금 격차도 문제지만, 기업 내부의 임금 격차도 문제라고 OECD 보고서는 지적한다. 남녀 노동자 임금 격차의 75%는 같은 기업 안에서 비슷한 숙련도를 가진 남녀 노동자 사이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업 내 남녀 임금 격차의 원인은 남성노동자가 과업과 책임에서 더 중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동일가치의 일에 대한 동일임금(equal pay for work of equal value)’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등의 차별 때문이기도 하다.

남녀 임금 격차의 25%는 기업 간에, 즉 고임금 기업과 저임금 기업 사이에 발생한 것으로 OECD는 분석한다. 남성노동자들과 비교할 때 여성노동자들이 저임금 기업에서 일할 확률은 훨씬 높다. 출산에 따른 경력단절 등의 이유로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시장 상향 이동성도 크게 떨어진다. 노동시장 밑바닥에 자리한 여성노동자들은 국가와 기업에서 제공하는 육아 지원, 유연 근무제, 부성 휴가 등의 지원책을 누리기가 쉽지 않다. ‘동일가치의 일에 대한 동일임금’은 언감생심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OECD는 차별금지법 제정, 임금 투명성 제고, 사회적 대화 활성화 등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OECD 보고서는 코로나19 위기가 노동력 집중도가 높은 노동시장 밑바닥의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한 현실을 지적하면서 이들의 임금 하락을 역전시키기 위한 정책을 시행할 것을 주문한다. 코로나19 위기가 기업 간의 디지털 격차를 확대하고 ‘승자독식’을 확산시킴으로써 임금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OECD는 임금 불평등 정책을 양질의 일자리 창출 및 기업 생산성 향상 정책과 결합시킬 것을 제안한다.

윤효원 객원기자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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