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하림 변호사(법무법인 이평)

대상판결 : 대법원 2021. 11. 11. 선고 2021다257903 판결

1. 사실관계 및 이 사건의 쟁점

원고들은 서울의 한 대형병원의 시설팀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이다. 원고들은 5조5교대제로 근무하는데, 2017년 2월1일 이전까지는 주간(8시간)-주간-주간-당직(21시간)-비번으로, 2017년 2월1일부터는 주간(8시간)-주간-주간-야간(13시간)-비번으로 근무했다.

2017. 2. 1. 이전의 당직근무(이하 당직근무)시 근무시간은 오전 8시30분부터 다음날 오전 8시30분까지인데, 이 중 휴게시간을 제외한 근로시간은 21시간이다. 피고는 당직근무시에 하는 업무는 전부 통상근무가 아니나, 오전 8시30분부터 밤 10시까지 휴게시간을 제외한 총 12시간에 대해서는 시간외근로수당을, 나머지 9시간에 대해서는 당직비를 지급했다.

2017년 2월1일 이후의 야간근무(이하 야간근무)시 근무시간은 오후 5시30분부터 다음날 오전 8시30분까지인데, 이 중 휴게시간을 제외한 근로시간은 13시간이다. 피고는 야간근무시에 하는 업무는 전부 통상근무임을 인정하고 시간외 근로수당을 지급하였다.

피고는 자체 방식에 따라 연장근로수당을 산정했는데, 매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중 휴일을 제외한 날의 일수에 8시간을 곱해 ‘소정근로시간’을 산정하고, 원고들의 실근로시간에서 소정근로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을 ‘연장근로시간’으로 봐, 그 연장근로시간에 통상시급의 1.5배를 곱해 지급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첫째 당직근무가 통상근무에 해당하는지 여부, 둘째 피고의 자체적인 연장근로수당 산정 방식이 근로자대표와의 2015년 1월1일자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관한 합의를 근거로 했을 때 유효한지 여부다.

한편 근로자대표와의 2015년 1월1일자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관한 합의에는 대상 근로자는 전체 근로자로, 단위기간은 3개월로, 근무일과 근무일별 근로시간은 피고가 부서별 근무표를 작성해 사전 공지하기로, 유효기간은 1년으로 각 정했고, 별도 의견이 없으면 자동 갱신한다는 것 외에는 정한 것이 없다. 참고로, 이때 근로자대표는 피고 사업장에서 존재하는 5개 직종별로 선출된 5명의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들이었다.

2. 대상판결의 요지

가. 당직근무의 성질

대상판결은“당직근무자들이 야간에 수행하는 운전감시·고장처리·순찰·유선 고장접수 업무는 대형병원이라는 근무지의 특성상 환자들의 생명 및 건강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서 부서운영계획서 및 직무기술서상으로도 시설팀에 부과된 업무로 돼 있고, 시설팀 근로자 5개조 중 1개조(당직근무조)에 의해 주간 및 야간에 24시간 동안 동일하게 연속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업무일 뿐만 아니라 시설팀 근로자라면 5일에 한번씩 돌아가며 누구나 수행해야 하는 업무”라고 판단했다.

또한 “운전감시업무의 경우 그 업무의 태양 및 내용, 빈도에 비춰 보면 이는 단순한 감시·단속적 업무라기보다는 상당한 정도의 정신적·육체적 피로도를 동반하는 업무 강도로서 일부분은 유지·보수업무의 성격도 겸하고 있고, 고장처리업무 및 유선 고장접수 업무, 순찰업무 역시 그 구체적 업무 내용이 시설팀 당직근무자들이 아닌 주간근무자들이 처리하는 주요설비의 점검·유지·보수 업무와도 상당히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고 판단해, 원고들의 당직근무는 시설팀 부서 운영계획에 따른 교대근무에 불과할 뿐 그 내용과 질에 있어서 통상근무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

나.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적용 여부

대상판결은 “피고가 근로자대표와 사이에 2015년 1월1일자로 전체 근로자를 대상으로 3개월 단위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적용하는 유효기간 1년의 합의를 한 사실이 인정되지만, 시설팀 근로자들인 원고들에 대해서까지 위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적용하기로 합의했다거나 그에 기해 원고들에게 시간외근로수당 등을 산정·지급해 왔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 근거로는, 피고가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적용됐다고 주장한 시점을 전후로 근로자들의 근무형태나 근무시간, 그리고 시간외근무 산정 방식이 변경되지 않았던 점, 근로자대표와 합의 당시 단위기간을 ‘매분기 초일부터 매분기 말일까지(3개월)’로 정한 것과 달리, 기존과 마찬가지로 1개월 단위 교대근무제 방식의 근무스케줄표를 공지하고 그에 따라 시간외근로수당 등을 산정 지급해왔던 점 등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피고는 3개월 단위 탄력적 근로시간제보다 1개월 단위로 적용했을 때 근로자들에게 더 유리하므로 원고들에게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적용되지 않았다고 볼 이유가 없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피고와 근로자대표 사이에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1개월로 축소하는 변경 합의가 없었던 이상 기존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관한 합의는 그 자체로 원고들에게 적용이 없었던 것이고, 그러한 단위기간 변경이 단지 근로자측에 유리하다는 이유만으로 기존 합의 내용이 일부 변경되어 원고들에게 적용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해, 피고의 항변을 배척했다.

3. 대상판결의 검토

이 사건에서 피고는 근로기준법 51조2항에 따라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한 이상 그 자체로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따른 법률 효과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즉, 사용자가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에 따른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근로자들에게 적용하지 않았더라도 연장근로수당 지급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대상판결은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따른 법률 효과가 발생하기 위한 요건으로, 근로자대표와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관한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사용자가 대상 근로자에게 이를 ‘적용’해야 했는지에 대한 명시적인 판단은 하지 않았다. 참고로, 피고는 대법원 상고심에서 위 주장을 상고이유로 지적했으나 결국 심리불속행으로 상고가 기각돼 대법원의 판단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피고의 위와 같은 주장은 어떠한 규범을 ‘제정’하는 것과 제정된 규범을 ‘시행 또는 적용’하는 것을 혼동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입법권자가 어떤 법령을 제정하면 그로써 국민을 구속하는 법규범은 마련된 것이지만, 그 법령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시행되거나 적용될 것이 필요하다. 제‧개정된 법령의 조항이나 부칙에서 시행일을 따로 정한 경우를 많이 봤을 것이다.

결국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관한 합의를 한 것만으로는 개별 근로자에게 그에 따른 법률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개별 근로자에게 그 합의 내용이 시행되거나 합의 내용을 적용하여야만 법률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피고와 근로자대표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관한 합의 당시 대상 근로자에게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적용할 ‘시점’을 정하지 않았다. 또한 피고는 원고들에게 서면 합의에 따른 3개월 단위 근무스케줄을 공지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피고가 근로자대표와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관한 합의를 했더라도 그 합의가 원고들에게 시행되거나 적용됐다고 볼 수 없으므로, 원고들에게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따른 법률 효과가 발생하기를 기대할 수 없다.

4. 대상판결의 의의

노동시간이 1주 40시간으로 정착된 데에 대한 대응으로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부각되고 있는데, 현장에서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대한 이해나 그에 따른 법률적 리스크의 예방은 미진해 보인다. 그리고 가장 큰 원인은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대해 규율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51조의 내용이 부실하다는 데에 있다.

여러 단체협약을 검토하다 보면 노동조합이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관해 합의한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는데, 그 합의 내용이 부실한 경우가 많았다. 이 사건도 졸속으로 선출된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이 근로기준법 51조2항에서 정한 요건에 맞춰 매우 형식적으로 합의한 경우였다. 심지어 단위기간의 근로일과 근로일별 근로시간은 사용자가 정하기로 했고, 자동 갱신 조항에도 합의했다.

위와 같이 부실한 서면 합의를 하게 되면, 사용자는 본인의 입맛대로 근무일과 근로시간을 정하면서도 임금지급 의무를 회피할 수 있게 된다. 이 사건은 사용자가 근로자들에게 서면 합의에 따른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적용하지도 않았으면서 서면 합의를 핑계로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경우이다.

대상판결은 사용자가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에 따른 근무형태·근무시간을 적용하지 않았다면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관한 서면합의의 효력을 주장할 수 없다고 판단해, 근로자대표와의 형식적인 서면합의를 근거로 근로자의 근로시간과 임금을 좌지우지하려고 했던 사용자에 대해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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