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동희 공인노무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

2020년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불인정(일부 인정 포함) 사건 7천474건 중 불과 23.3%만이 심사청구 및 재심사청구를 제기했다. 산업재해재심사위원회에서 기각되면 이미 2~3번이나 불승인 판정을 받은 절망적 상황이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 소송을 포기한다. 경제적·정신적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초래하는 것은 업무상 질병 불승인이다. 이를 해결할 마지막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행정소송과 실무적 대응 방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우선 판정기관별로 업무상 질병의 판단 기준이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근로복지공단과 산재재심사위는 고용노동부 산하·소속기관이기 때문에 판단의 방식이나 기준이 비슷하다. 그러나 법원은 노동부의 고시나 공단의 지침 등에 구속되지 않는다. 이로 인한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2020년 공단의 소송상황 분석보고서를 보면, 보험급여에 대해 2천228건의 소송이 신규로 제기됐다. 이 가운데 확정된 1천842건 중 공단이 패소한 사건은 247건으로, 패소율은 13.1%다. 다만 소송 중 취하된 사건 가운데 산재인정 취지로 처분을 변경한 사건은 386건이다. 이를 반영하면 공단의 실질 패소율은 33% 정도다. 소송 상황을 종합하면, 업무상 질병 및 이로 인한 사망사건의 경우 공단 패소율은 매우 높다. 이런 차이를 인식하고 불승인 처분에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조건 공단과 산재재심사위의 처분에 승복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둘째, 뇌·심장 질환 및 유족(사망) 사건의 경우 사건은 공단의 패소율이 특히 높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조정 취하사건을 반영하지 않더라도 뇌·심장질환의 경우 공단 패소율은 2020년 21.5%, 2021년 8월 18.4%다. 사망 사건인 유족급여 소송사안은 2020년 25.3%로 다른 사안에 비해 공단 패소율이 높다. 이런 이유는 공단·산재재심사위가 노동부 고시(2020-155)를 예시적 기준이 아닌 사실상 절대적 기준으로 적용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법원은 노동부 고시를 대외적으로 국민과 법원에 대한 구속력이 없는 내부 지침이나 행정규칙에 불과하다고 일관되게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기초적 사실관계 판단이 달라질 수 있는 사안, 업무시간 계산에 오류가 있는 사안, 고시 기준에 근접한 사안, 돌발적 상황 및 이로 인한 스트레스에 대한 판단이 부재한 사안, 복합가중요인에 대한 판단이 부재한 사안, 단기과로 해석의 오류가 있었던 사안, 질병판정위원회 또는 산재재심사위 소수의견이 기재된 사안, 정신적 긴장이나 스트레스에 평가가 없었거나 낮았던 사안 등은 행정소송 제기를 고려해 볼 수 있다.

셋째, 소송시 증명책임은 원고(노동자)에게 있기 때문에, 공단 처분의 법적·의학적 판정 근거를 깨뜨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증거신청을 해야 한다. 사측이나 제3의 기관(부검기관이나 경찰 등)에 대한 사실조회 또는 문서송부 촉탁신청, 유리한 증인이 있는 경우 증인신청, 필요하다면 원고 본인이 증인이 될 수 있는 당사자증인신문 등을 요청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업무관련성을 증명하기 위한 진료기록감정이다. 대부분의 산재노동자·유족은 직업환경의학과에 진료기록 감정신청을 한다. 진료기록감정을 위해 사실조회나 문서송부 촉탁신청을 해서 추가 증거나 자료를 수집하고, 충분한 자료가 확보되기 전까지 진료기록감정을 미루는 것이 좋다. 통상 공단 소송수행자는 과로성 재해 사건에서도 직업환경의학과의 감정을 배척해 달라고 요구하고, 일부 재판부는 이를 수용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근골격계질환에 있어 업무관련성에 대한 감정도 피고 소송수행자는 직업환경의학과가 아니라 정형외과나 신경외과에 감정을 요청한다. 변론시 업무관련성에 대한 의학적 평가는 직업환경의학과 과목이라고 판사를 설득해야 한다. 부득이 판사가 각각 진료기록감정을 명한 경우(원고는 직업환경의학과, 피고는 신경과·심장내과 등) 피고의 진료과에 대한 의견서나 질의서를 적극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직업성 암 사건에 있어 전문조사보고서의 문제점을 면밀히 분석한 준비서면을 제출하거나, 전문조사기관인 산업안전보건연구원·직업환경연구원 등에 사실조회 신청을 해 역학조사의 문제점을 부각한 이후 진료기록감정을 하는 것이 좋다. 실제 소취하로 산재가 인정된 사건 대부분은 유리한 감정결과를 반영한 사건이다.

넷째, 산재소송은 ‘나 홀로 소송’이 어렵기 때문에 좋은 대리인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과다한 광고와 선례로 현혹하는 대리인을 경계하고, 차분하고 종합적으로 산재 사건을 분석하고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직접 만나 따져 봐야 한다. 이를 위해 공단의 사실조사에서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 공단 처분의 근거와 지침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법원 판례가 무엇이고 이 사건에 적용 가능한지, 소송시 어떤 계획으로 증명할 수 있는지 등을 면밀히 듣고 신중히 선임해야 한다. 좋은 판사를 만나는 것은 운이지만, 좋은 대리인을 만나는 것은 노력이 필요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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