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이 불안정하고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일수록 건강이 나쁠 우려가 크다는 분석이다. 산업안전보건 제도를 개선하고 사용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조항을 개선해 안전사고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불안정 고용 노동자 정보 수혜율 53.6%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7일 이 같은 내용을 뼈대로 한 ‘고용형태 및 사업체 규모에 따른 노동자 건강 불평등 현황과 정책과제’ 보고서를 발간했다. 연구원은 고용형태, 노동제공 방식, 노동시간 같은 고용조건과 관련한 불안정 요소를 내포한 고용을 불안정 고용으로 정의해 분석했다. 임금노동자 가운데 정규 상용직을 안전 고용직으로 분류했다.

이 결과 기계 진동이나 소음, 고온·저온, 연기, 가스 먼지 같은 물리적 유해 요인에 노출되거나 장시간 노동을 하는 비율이 안정 고용과 비교해 불안전 고용에서 높게 나타났다. 불안정 고용 노동자 49.3%가 물리적 유해 인자에 노출됐고, 15.2%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우울감을 경험하는 비율도 불안정 고용 노동자가 많았다. 11.8%로 안정 고용(7.1%)보다 4.7%포인트 높다. 최근 1년 동안 2주 내내 일상생활을 중단할 정도로 슬프거나 절망감을 느낀 경험을 가진 노동자 비율이다.

이와 달리 일과 관련한 건강 및 안전 위험요인 정보 수혜율은 안정 고용 노동자가 더 높았다. 안정 고용 노동자의 정보 수혜율은 69.8%였다. 불안정 고용 노동자는 53.6%에 그쳤다. 스스로 “건강하다”고 느끼는 주관적 건강 수준도 안정 고용 노동자가 높았다. 79.6%가 “건강하다”고 응답했다. 불안정 고용 노동자는 62.1%다.

‘저임금·장시간 노동’ 건강 불평등 원인

고용형태에 다른 건강 불평등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단적으로 불안정 고용 노동자가 저임금 노동자인 비율(62%)이 높고, 이들의 고용보험 가입률(44.9%)은 저조하다. ‘고용이 안정됐다’고 느끼는 주관적 고용 안정성 비율은 불안정 고용 노동자 65.3%, 안정 고용 노동자 99.2%로 현격한 차이가 있다.

정연 보건사회연구원 건강정책연구센터 부연구위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줄곧 높은 순위를 기록한 국내 중대재해 발생률은 비정규직, 하청업체, 소규모 영세사업장 노동자에 집중됐다”며 “이런 격차의 상당 부분은 예방 가능하고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정당화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위험의 외주화가 심각하다는 얘기다. 정연 부연구위원은 “노동환경과 노동조건은 노동자가 일상적으로 노출되는 환경이라는 점에서 건강의 중요한 사회적 결정 요인”이라며 “택배 물류센터와 콜센터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집단감염, 택배노동자들의 잇따른 과로사는 코로나19 상황이 강조하는 거리 두기나 아프면 쉬기가 어떤 노동자에게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냈다”고 강조했다.

“법령 적용은 배제되거나 유보”

이런 사례를 일부로 치부하기도 어렵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 50명 미만 소규모 사업장은 전체 사업장의 98%에 달한다. 이곳에 종사하는 노동자수는 전체 노동자의 63.8%다.

게다가 이 가운데 노동관계법에서 완전히 배제된 5명 미만 사업장은 전체 사업장 61.5%이고, 이곳 노동자수는 전체 노동자의 19%에 달한다. 정연 부연구위원은 “국내 노동권 보호 정책이 대기업을 중심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소규모 사업장은 해당 정책에서 예외대상으로 간주되거나 후순위로 밀렸다”고 설명했다.

결과는 악순환이다. 앞선 물리적 유해 인자 노출 비율과 장시간 노동 비율을 사업장 규모로 다시 줄 세워보면 5명 미만 사업장 비율이 각각 50.2%와 20.8%로 가장 높다. 반대로 건강 및 안전 위험 요인 정보 수혜율은 51.3%로 가장 낮다.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의 2019년 산재 발생 현황을 다시 분석한 업무상사고발생률은 115.2%로 60.2%인 50명 미만 사업장의 두 배에 이른다. 당연히 스스로 “건강하다”고 느끼는 비율은 꼴찌(60.5%)다.

제도는 이런 현실을 비껴간다. 사업장 산업안전보건을 노사가 함께 심의·의결하도록 한 산업안전보건법상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구성도 50명 미만 사업장에는 의무가 없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적용도 3년간 유예하고, 5명 미만 사업장은 아예 대상에서 빠졌다. 50명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근로자건강센터도 노동자 개인의 상담·교육 위주라 작업장 환경 개선 기능은 약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정연 부연구위원은 “작업환경 문제와 건강 위해 요인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현장 노동자”라며 “하청업체 노동자 같은 취약노동자가 산업안전보건 활동에 참여하고 의견을 개진할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아픈 노동자가 산재보험 같은 보편적 보장 체계의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고, 근로자건강센터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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