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규 변호사(공공운수노조법률원)

며칠 전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 노동자들이 내년부터 새로이 제기하는 통상임금 소송의 배상금을 공공기관의 예산 항목 중 ‘예비비’ 항목이 아닌 ‘총인건비’ 항목에서 지출하도록 예산편성지침을 개정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제껏 노동자들이 통상임금 소송에서 승소해 받은 배상금은 기재부에 의해 매년 총액과 인상률이 정해지는 총인건비 항목이 아니라, 예비비 항목에서 지급돼 왔다. 당연한 일이다. 통상임금 소송의 배상금은 과거에 위법하게 과소지급된, 즉 체불된 임금을 법원의 판결에 의해 뒤늦게나마 지급하는 것이다. 이를 이유로 현재의 총인건비, 즉 노동자들의 임금이 줄어들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재부 계획대로 된다면, 통상임금 소송의 배상금 액수가 상대적으로 큰 공공기관의 경우 노동자들의 총임금이 동결되거나 심지어 삭감되는 결과까지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총인건비 인상률이 2%인 사업장에서 배상금 액수가 총인건비의 2% 수준에 이른다면 전체 노동자의 임금이 동결되고, 만약 3~4% 수준에 이른다면 전체 노동자의 임금이 삭감되는 것이다. 법 준수에 모범을 보여야 할 국가기관과 공공기관이 오히려 앞장서서 법을 위반하고, 노동자들에게 그 법 위반으로 인한 손해까지 전가하려 하는 셈이다.

통상임금이란 일종의 도구적인 개념이다. ‘임금’이 사용자가 근로의 대가로 노동자에게 어떠한 명칭으로든지 지급하는 모든 금품을 말한다. ‘통상임금’은 노동자가 소정근로시간에 사용자에게 통상적으로 제공하기로 한 소정근로의 대가를 뜻하고, 연장근로수당·야간근로수당·휴일근로수당과 같은 초과근로수당이나 연차휴가수당 등을 산정하는 기준이 된다.

근로기준법에 따를 때 연장근로·야간근로·8시간 이내의 휴일근로에 대해서는 통상임금의 50% 이상을, 8시간을 초과하는 휴일근로에 대해서는 100% 이상을 가산해서 지급해야 한다. 미사용한 연차휴가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1일당 1일분의 통상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그런데 여러 임금 항목 중에 어떤 것이 통상임금에 포함되고 어떤 것이 포함되지 않는지에 대해 오래도록 이견이 있었다. 그러던 중 2013년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통상임금의 판단기준인 정기성·일률성·고정성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시한 바 있다. 이로써 사용자들이 이제껏 통상임금을 산정하면서 조정수당·대우수당·급식비·정기상여금·성과급 같은 항목들을 누락함으로써 초과근로수당 등을 과소하게 지급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후 전국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은 과소지급 받은, 즉 체불된 초과근로수당 등의 지급을 구하는 소송(통상임금 소송)을 제기해 그 체불임금을 지급받을 수 있었다.

초과근로수당 등에 대한 과소지급은 민간 사업장만이 아니라 공공부문에서도 벌어졌기 때문에, 공공기관 노동자들도 소송을 통해 그 배상금을 지급받은 바 있다. 그러나 일부 공공기관들은 법원에 의해 통상임금에 속하는 것으로 명백하게 확인된 임금 항목들을 여전히 통상임금에서 제외함으로써, 전원합의체 판결로부터 8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통상임금 소송이 계속되고 있거나 새롭게 제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공공기관이 스스로 만들어 낸 위법 상태를 바로잡기는커녕 계속해서 유지하면서 노동자들의 소송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공공기관의 예산 등에 관해 사실상 전권을 휘두르고 있는 기재부의 탓이고 책임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재부의 예산편성지침 개정 계획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소송을 제기해 봐야, 어차피 지급받을 예정인 총인건비 범위 내에서 그 배상금이 지급될 수밖에 없으므로) 소송 자체를 제기할 수 없도록 만드는 원천봉쇄 전략일 뿐만 아니라,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무시하고 무력화하려는 시도다. 무엇보다 어제 못 받은 임금을 달라고 하니까 오늘의 임금에서 빼서 주겠다는 해괴한 주장에 불과하다.

공공기관들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기재부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해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밀린 임금이나 정당히 지급할 일이다. 기재부가 계획하고 있는 통상임금 소송 배상금의 총인건비 산입은 위법행위로 인한 피해자의 주머니에서 그 배상금을 꺼내 가겠다는 꼼수 중의 꼼수일 뿐이다. 낯뜨거운 계획을 당장 철회하고 공공기관 노동자들에게 사과부터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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