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진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노동안전보건부장(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지난해 4월 이 지면을 통해 대양그룹 노조파괴 사건과 관련해 ‘노조파괴는 노동자를 병들게 한다’는 글을 쓴 지 1년7개월이 지났다. 당시 사건은 우리나라 굴지의 제지사에서 벌어졌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2020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권택환 대양판지 대표이사는 노동조합에 개입하거나 부당노동행위를 하지 않았다며, 만약 불법행위가 있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호언장담했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고용노동부와 검찰의 수사가 진행됐다. 그리고 노동부의 기업노조 직권취소 결정이 나온 데 이어 광주지법은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임직원 6명에 대한 집행유예와 벌금형 등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용자의 우월적 지위와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악용해 1년 넘게 2노조(금속노조)의 단체교섭 기회를 봉쇄했으며, 회사에 우호적인 3노조 설립에 개입하고 허위 설립신고로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획득하게 해 노조의 교섭을 약화함으로써 노동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고자 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근본 취지를 몰각했으며,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을 양형 이유로 들었다.

화병을 만드는 현실

‘화병’이라는 단어는 일상에서 사용해 익숙하지만, 정신과에서 정식으로 사용하는 진단명은 아니어서 개념이 다소 모호할 수 있다. 화병은 분노를 장기간 참으면서 화열감·억울함·증오를 보이고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기분이나 가슴의 응어리·답답함·두근거림을 호소한다. 입마름·한숨·잡념·하소연 등의 특징을 보인다고 한다. 분노를 드러내거나 자기 주장을 할 수 없는 문화, 상대적으로 빈번하게 참을 수밖에 없는 집단에서 발생하기 쉽다.

대양판지 노동자들은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말하기 위해서 노조를 결성했지만, 2년간 끊임없이 자행된 회사의 불법적인 행태와 노골적인 차별에 그대로 노출됐다. 더욱이 1년 만에 기업노조가 직권취소 되고, 임원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노조파괴가 드디어 끝났다”고 생각했다. 노사관계도 정상적인 구조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대양판지 사측은 보란 듯이 4노조(기업노조)를 만들고 그들과 신속하게 교섭을 진행하고, 합의했다. 게다가 유죄판결을 받은 임원이 버젓히 회사측의 교섭대표로 나서며, 금속노조와의 교섭은 형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노동자들 입장에선 수많은 법과 제도가 있더라도 피해자인 자신들에겐 아무런 보호장치로 기능하지 않고 가해자에겐 오히려 관대해 재발 방지는커녕, 제대로 처벌도 되지 않는 현실을 절감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에게 화병이 생기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까.

노동자를 병들게 하는 기업은 주민도 아프게 해

노조가 설립된 후 수 차례 대양판지의 환경 관련법 위반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영산강유역환경청은 지난달 18일부터 22일까지 대양판지의 폐수 무단방류 의혹에 대한 현장점검을 실시했다. 폐수 방류 및 미신고 대기 배출, 미신고 폐기물처리시설 설치·조업 등 3건의 사실을 확인했다. 영산강유역환경청은 적발된 사항 중 사법조치가 필요한 경우 검찰청에 송치하고, 과태료 등 행정청분 대상에 대해서는 관할 지자체에 통보해 즉시 개선토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대양그룹은 국내 골판지 공급량의 23%를 차지하는 큰 기업이다. 그러나 그에 걸맞는 어떤 사회적 책임도 지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의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 온갖 탈법과 불법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우리 법과 제도가 이들의 행위에 대해 너무 관대한 나머지, 이런 범죄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대양판지 사례는 노동자가 병들고 다쳐도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는 조건이라면, 이런 피해가 공장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역주민들의 삶도 파괴하는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더 이상 용납해선 안 된다. 대양판지에서 자행된 탈법과 불법에 대해 제대로 책임을 묻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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