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내년 ‘노동존중특별시’의 상징 사업이었던 노동자종합지원센터 예산을 대폭 삭감하기로 했다. 취약노동계층 권익개선 사업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센터·시민단체 관계자들이 5차례에 걸쳐 노동자종합지원센터가 갖는 의미를 되짚고 향후 과제를 제시한다.<편집자>
 

임성규 관악구노동복지센터장
▲ 임성규 관악구노동복지센터장

서울시 내년 예산안 중 ‘안심소득’이 눈길을 끈다. 백성을 ‘어여삐’ 여긴 훌륭한 발상이다. 오세훈 시장은 안심소득에 대해 “복지 사각지대, 소득양극화, 근로의욕 저하 등 현행 복지제도의 한계와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긴 우리나라 복지시스템에 문제가 많긴 많다. 특히 복지의 근간인 근로기준법부터가 사업장 규모에 따라 노동자를 복지 사각지대로 몰아 차별한다. 저소득층은 여전히 의료안전망 밖이고, 취약계층은 그대로 늙어 기본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방치된다. 위험한 노동으로 죽어 나가고 불안정한 노동에 고용안전망 혜택을 받지 못한다. 복지정책이 증진하지 못하고 증발하기 일쑤다. 기초연금인가 뭔가를 앞으로 주더니 수급자라며 뒤에서 뺏아 간다. 국가가 노인들을 집단으로 희롱하는 죄를 범하고 있다. 5년간 270억원을 쏟아부어 0.84%의 합계출산율을 기록했다. 복지제도가 있으나 체계성·투명성·통합성·책임성이 빠진 누더기 시스템이다. 얍삽한 정치적 발상에서 비롯된 국지적·임시방편적 땜질식 복지정책이 적지 않다. ‘선별’이란 이름으로 ‘차별’하는 복지이기 때문이다. 위정자들이 공명심 혹은 선거에 대비한 선심성 복지로 수혜를 베풀 듯 시행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현행 복지제도의 한계와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니, 오 시장의 발상은 훌륭함을 넘어 정말 대단하다. 서울시 예산 콘셉트에도 잘 드러난다. 민생과 일상의 회복, 사회안전망 강화, 도약과 성장, 코로나19 팬데믹, 부동산, 구멍 드러난 사회안전망, 비4차산업혁명 시대. 이러저러한 현황과 시대를 잘 버무린 콘셉트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니 그렇게 괜찮은 콘셉트가 순식간에 빛을 잃어 버린다. 하필이면 ‘안심소득’ 예산이다. 유감이다.

훌륭한 발상이라고 해서 그대로 훌륭한 정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훌륭한 발상이 훌륭한 결과를 내려면 여러 경우를 대입해 꼼꼼히 비교 분석한 연후에 시행해야 한다. 훌륭한 발상을 섣부른 시행으로 망쳐서야 쓰겠는가.

오 시장이 노동자종합지원센터 예산 삭감을 위해 사용한 “낭비적 재정지출 구조조정”이라는 말은 심히 거슬린다. 지난 시기 낭비적 재정지출이 있었다면 당연히 그 구조를 조정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오 시장은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을 잊은 듯하다. 마침 올해가 지역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참여 민주주의와 복리증진을 위해 부활한 지방자치제 재시행 30주년이다. 아무리 ‘낭비적 재정지출 구조조정’을 한다지만 지난 시기 독재자처럼 군림하듯 해치우면 안 되지 않는가. 그때 그 시절 그들도 절차와 형식은 갖출 줄 알았다.

기준소득에 못 미치는 가계소득의 부족분을 시 재정으로 채워 주려는, 그 ‘살가운 마음’의 고귀한 ‘안심소득’ 예산을 책정하면서 왜 지자체 부활의 최고가치인 주민참여 민주주의를 완전 무시했을까.

노동권익센터 혹은 노동자종합지원센터는 취약계층의 고충을 상담하고 노동인권을 보호하는 곳이다. 취약계층이 스스로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하며 삶의 의욕과 용기를 북돋아 주는 교육 등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오 시장이 말한 “복지 사각지대, 소득양극화, 근로의욕 저하 등”에 처절하게 노출된 바로 그 취약계층을 위한 사업이다. 그럴진대, 그 취약계층을 위해 ‘안심소득’ 예산까지 밀어붙이는 분이 그 취약계층을 위해 일하는 기관의 예산을 막아 박멸하려 한다?

안심소득을 사전에 민주적으로 충분히 거르지 않은 이유를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불현듯 의구심이 생긴다. 발상이 훌륭하다고 생각했던 ‘안심소득’의 순수성이 퇴색했다. 안심이 되지 않는다. 결국 또 얄팍한 정치적 발상이고, 선별이라는 이름의 차별 정책이고, 선거를 위한 선심성 수혜 복지제도인가.

수도 서울의 시장이라면 그에 걸맞아야 한다. 비효율적이고 낭비 요소 많은 누더기 복지시스템에 또 하나의 천 조각을 덧대는 오류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소득 불평등이 가져다준 양극화 구조는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다. 꼭 서울이 앞장서야 한다면 누더기 복지시스템을 국가적으로 일원화하고 효율화해 중복 낭비와 눈멀어 사라지는 예산이 없도록 해야 한다. 전체 판을 다시 짜는 일을 선도해야 한다. 그게 바로 수도 서울의 시장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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