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사람들 많이 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 글 목록에 지옥 얘기가 많았다. <지옥>을 봤다, 온라인으로 개봉한 연작드라마 얘기였다. 지옥에나 가라, 천수를 누리고 세상 떠난 학살자를 향한 저주였다. 지옥은 흔히 시뻘건 불구덩이 이미지로 재현되곤 하는데, 거기서도 가장 뜨거운 곳이 누구의 자리인가를 두고 많은 사람이 오래도록 상상력을 펼쳐 왔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장소는 도덕적 위기의 순간에 중립을 지킨 이들을 위해 예약돼 있다’는 표현 같은 것이 유명하다. 이탈리아 시인 단테의 신곡-지옥 편에 나오는 문장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 그런 표현은 없다고 한다. 누군가의 필요에 따른 해석이 오랜 시간을 거쳐 사실인 양 굳어진 사례다. 먹구름 짙어 달을 집어삼킨 어느 밤, 언덕 위에 선 지옥의 사자를 떠올려 본다. 온통 잿빛으로 덮인 세상은 한치 앞을 분간하기 어렵다. 실은 이 사진은 한낮 서울 도심의 모습이었고, 저기 선 이는 높은 건물 꼭대기에 올라 집회 취재 중인 기자일 뿐이다. 사진이야말로 오독의 여지가 큰 매체다. 진짜 지옥을 아는 이는 없을 테니, 우리는 그저 상상할 따름이다. 하지만 지독한 불평등과 부조리 탓에 살아 지옥 같은 날을 견디는 사람들이 있다니, 우리가 잘 아는 지옥도 있다. 생지옥이라고들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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