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연구원장

많은 사람들이 ‘시대 전환’을 이야기한다. 디지털 전환, 기후위기 산업전환.

주 4일 근무제는 노동체제 그 자체의 대전환이다. 단순히 숫자가 주 5일에서 주 4일로, 8시간 줄어드는 그 이상의 의미와 가치가 담겨 있다. 장시간 노동은 저임금과 한 몸을 이뤄 ‘저임금 장시간 노동체제’라는 후진국 노동체제를 떠받친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시간만 줄이려고 하면 기존 임금·복지·생산체제와 부딪친다. 그래서 주 4일제는 일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일터혁신으로, 노동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될 때 가능하다.

주 4일제는 보건의료 노동자에게 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정신노동, 육체노동, 감정노동, 밤근무 교대노동 등 극한 업무에 시달리는 간호사와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죽지 않고’ 환자 곁에서 ‘오랫동안’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열쇠가 바로 주 4일제 노동시간 단축이다. 현장의 관심은 뜨겁다. 얼마 전 확정한 보건의료노조 대선 3대 핵심 요구 중 하나가 바로 주 4일 근무제다.

보건의료노조가 올해 코로나19가 던진 과제를 해결하는 총파업을 조직하는 과정에서 공공의료 현실과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언론에 많이 보도되면서 국민적 공감을 얻었다. 46만명에 이르는 간호사 면허소지자 중 절반만이 병원에 근무하고 있고, 병원에 들어와도 1년이 채 안돼 사직하는 비율이 45.5%에 이른다는 통계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간호사들의 꿈이 사직이라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얼마 전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던 의정부 모 대학병원은 사직마저 노예계약을 통해 못하게 막았다. 올해 9·2 노정합의에 담긴 간호사 대 환자비율 제도화, 교대제 개편 시범사업 실시는 바로 주 4일제 노동시간 단축과 동전의 양면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주 4일제 시행 5대 추진전략으로 9·2 노정합의 이행의 일환으로 내년 초 시작되는 교대제 시범사업에 주 4일제 모델을 추가할 예정이다. 대선 후보와 정책협약을 통해 차기 정부 국정과제로 만들고, 지방선거에서 기초·광역단체장 후보들과 주 4일제 시범사업 공동협약식을 통해 지역실험 모델을 만들 계획이다. 지역 공공병원 의사·간호사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주 4일제 선 시행을 요구하고, 2022년 산별교섭과 임금·단체교섭에서 주 4일제를 포함 노동시간 단축, 장기휴가 확대 요구를 검토할 것이다. 또한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근로기준법 59조(근로시간 및 휴게시간의 특례)에서 보건업을 포함해 5개 업종만 남은 특례유지업종제도 폐지 투쟁에도 적극 나설 것이다.

물론 우려와 검토해야 될 점도 많다. 하지만 그것은 주 4일제를 미루는 이유가 아니라 같이 풀어 가야 할 숙제일 뿐이다. 간호인력대책 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는 간호사 수급 문제는 2008년 이후 간호학과 입학 증원이 2배 이상 늘면서 거의 해소됐다. 연간 2만5천명씩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중 신규 병원 취업자는 1만명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정부와 사용자는 충분히 재정투자를 통해 추가인력을 뽑아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노동시간 유연화 문제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노동시간주권, 자기 선택권 강화로 풀어야 한다. 노동시간 밖의 시간을 더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새로운 노동문화·여가문화도 고민해야 한다. 주 4일제 시행 과정에서 조직노동과 미조직노동 간의 노동시간 불평등 확대 문제도 짚어야 한다. 5명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과 함께 단시간 노동자의 경우 주 16시간 최소 노동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이제 주 4일제를 할지 말지 논란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이미 많은 나라에서 시작을 하고 있고 한국에서도 일부 기업이 시행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보건의료·청년·여성 같은 교대제 고위험군 노동자부터 먼저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이곳저곳에서 “우리도 주 4일제를 하자”고 외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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