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도로 위를 질주하는 무법자’. 고속도로를 누비는 집체만한 화물차를 마주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장롱면허인지라 운전대를 잡을 일이 없다. 누군가의 차를 얻어 타고 조수석에 앉아 이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화물차가 빠른 속도로 옆을 지나칠 때면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게 된다. 혹여나 화물차가 차선을 변경해 시야를 가리면 답답함뿐 아니라, 저 차량에 실린 화물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겠지 하는 두려움도 때때로 느낀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고 했던가. 마찬가지로 화물차 운전노동자들의 아찔한 질주에도 이유가 있다. 그리고 이런 속도전을 멈출 수 있는, 안전운행의 필수조건 마련을 위해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25일부터 3일간 화물연대가 파업을 진행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빈번한 사고와 피해
과속·과로·과적에 내몰리는 현실

화물차 운전자들의 아찔한 질주는 사고의 가능성을 높인다. 실제 화물차는 사고 빈도가 높다. 경찰의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화물차는 고속도로 통행량의 4분의 1 정도(26.9%)에 그치지만, 교통사고 사망자의 절반(53.2%)이 넘는 이들은 화물차 운전노동자다. 전체 교통사망사고에서 화물차와 연관된 건수는 절반을 훌쩍 넘어 4분의 3에 달하는 75.5%를 차지하고 있다. ‘위험한 운전’의 결과가 고스란히 사고로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압도적인 크기의 차량 자체 무게뿐 아니라 운송하는 화물의 무게까지 고스란히 사고가 발생했을 때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치사율은 승용차와 비해 2.6~3배(한국교통연구원)가량 높은 현실이기도 하다. 이런 화물차 사고는 또 다른 피해로도 이어진다. 사고가 발생하면 실려 있던 물품이 파손될 뿐만 아니라, 교통정체를 야기하고 이를 수습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도로에서 일상의 업무가 수행되는 특성상, 화물차 운전자들이 안전하지 못하면 곧 국민의 도로 교통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야 만다.

이런 현실은 왜 나타나는 것일까. 고속도로에서 발생하는 화물차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운전자의 △졸음(41.9%) △주시 태만(33.5%) △과속(8.2%) 순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 밑바탕에 있는 기저요인이다. 하루 13~16시간에 달하는 장시간·야간노동, 낮은 운임료 때문에 ‘한탕’이라도 더 뛰기 위해 자발적으로 속도를 높이는 현실, 화주들의 화물도착 시간 준수 요구에 맞추기 위해 과속을 해야만 하는 조건 등 말이다. 과로·과적·과속을 해야만 자동차 할부금과 생활비를 겨우 거머쥘 수 있는 노동조건은 ‘졸면서 달리는’ 아찔한 운전을 감수하도록 강요한다.

안전하고 싶다는 목소리 반영한 제도
정착시키고 점검·보완해야

그래서 화물차 운전노동자들은 오랫동안 ‘안전운임제’ 도입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물류운송의 다단계 구조로 인해 중간에서 떼이는 것 없이, 화물자동차 안전운송원가에 인건비를 포함한 적정이윤을 보장해 달라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제도가 안전운임제도다. 화물차 운전노동자들은 ‘화물연대’라는 이름의 노동조합을 2003년 결성하고 줄기차게 ‘표준요율제’ ‘표준운임제’ 등으로 이름을 달리해 도입을 요구해 왔다. ‘안전운임제’는 2020년에 제도화돼 현재 시행 중이다.

그럼에도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를 전면에 걸고 파업에 나선다. 법이 마련됐다고는 하지만 2022년까지 3년간의 한시적 적용 후 폐기될 수 있는 일몰제 도입에 그쳤기 때문이다. 법 통과를 반대하는 재계와 이들을 대변하는 국회의원들에 의해 전 차종, 전 품목이 아니라 특수자동차로 운송하는 컨테이너와 시멘트 품목에만 제한 적용되고 있다. 그마저도 내년이면 사라질 수 있는 상황에서 파업으로 맞서겠다는 의지를 모은 것이다.

물류를 의뢰하는 화주사가 필요인력을 고용하도록 강제하고, 화주사가 운송회사에 지급하는 인건비를 중간에 떼먹을 수 없도록 기본단가를 정하는 제도인 안전운임제 도입 후 그나마 화물차 운전노동자들은 숨통이 트였던 것으로 보인다. 낮은 단가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 한 탕을 더 뛰어야 하는 장시간 노동에서 잠시라도 숨을 돌릴 수 있고, 졸음을 참아 가며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현실에서 잠시 눈을 붙일 여유가 생겼다고 강조하는 화물차 운전노동자들의 언론 인터뷰는 그 자체로 소중하다. 제도는 시행됐지만 이를 흔드는 꼼수도 있다. 법에서 정한 기준보다 낮은 운임을 지급하거나, 수수료 명목으로 돌려받는 방식으로 ‘안전운임제’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행위다. 이런 행위에 대해 과태료 500만원을 부과할 수 있지만 일부 지자체는 신고해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안전운임제 정착과 함께 실질적인 점검·보완이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노동에 기대어 살아 간다. 화물차 운전노동자들의 ‘물류공급’ 노동에 기대어 일상의 삶을 구성한다. 그들의 노동이 더는 ‘아찔한 질주’가 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정착이 그 시작이 될 수 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