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영훈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오늘)

대상판결 : 대법원 2021. 10. 14. 선고 2021두34275 판결

1. 사실관계

원고의 남편인 망인은 1992년 건설공사 현장에서 작업 중 추락사고를 당하면서 하반신 마비 등으로 산재요양승인과 장해등급 1급 결정을 받았다. 이후 망인은 하반신 마비에 따른 욕창으로 10여 차례 입원 치료와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고, 2012년 욕창으로 1차 재요양승인을 받았다. 2013년에는 우울장애 등으로 2차 재요양승인을 받았고, 사망하기 약 두 달 전인 2018년 6월26일까지 신체형장애·불안장애와 우울장애로 지속적인 통원치료를 받았다. 망인은 하반신 마비로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으면 체위 변경이 어려워 욕창이 생겨 아내인 원고가 망인의 체위를 변경하는 등 간병했는데, 원고가 2018년 7월3일부터 같은해 8월11일까지 약 40일간 늑골 골절 등으로 병원에 입원해 치료받느라 망인을 돌보지 못했다. 망인은 이 기간 중 병원에 내원했는데, 경과기록지에는 망인에게 욕창 증세가 생겼다고 기재돼 있다. 망인은 원고가 퇴원하고 약 일주일 후인 2018년 8월19일 자택에서 목을 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원고는 망인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보상 및 장의비 지급 청구를 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며 부지급 처분했다. 이에 원고가 이의 취소를 청구하는 소를 제기해 대상판결에 이르렀다.

2. 원심판결의 요지

원심(서울고등법원 2021. 2. 3. 선고 2020누47535 판결)은 별도의 설시 없이 제1심판결(서울행정법원 2020. 6. 26. 선고 2019구합73697 판결)의 이유를 그대로 인용해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1심판결의 판단요지는 다음과 같다. ① 망인은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꾸준히 받아왔고, 2018년 6월26일 실시한 마지막 진료에서도 상태가 비교적 안정적(stable)이라는 소견을 밝혔다. ② 망인은 약 26년간 하반신 마비 상태에 있었고 수년 전부터 욕창 등의 증세를 겪었으나, 전반적인 상병상태가 사망 무렵 기존과 달리 악화됐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다. ③ 원고는 망인의 사망 직후 경찰 조사에서 망인의 동호회에서의 갈등과 음주운전에 따른 면허 취소를 자살 이유로 언급했으며, 이는 망인이 자살을 선택할 만한 결정적인 동기나 계기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④ 피고 자문의사회 위원들 5명 모두 ‘망인의 자살에는 음주문제, 원고의 입원, 동호회 회장 퇴출 등의 외적인 요인이 더 크게 기여했을 것으로 판단돼 망인의 자살이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소견을 제시했다.

3. 대상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원심판결이 업무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 등에 관한 법리 오해가 있다고 판단해 원심판결을 파기했다. 판단요지는 다음과 같다. ① 망인의 우울증은 추락사고로 발생한 하반신 마비와 그로 인한 욕창 때문에 발생한 것이고, 피고 근로복지공단 또한 업무와 우울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해 망인의 우울장애 등에 대해 재요양승인을 했다. ② 망인의 사망 약 두 달 전 실시한 최종 진료시 특이점이 발견되지는 않았으나 우울증이 악화됐음에도 망인이 이를 숨겼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치의 소견이 있으며, 망인을 간병하던 원고가 40일 간 입원해 망인이 평소처럼 간병을 받지 못해 자살 직전 욕창이 악화됐고 이에 우울증이 유발, 악화됐을 개연성이 있다. ③ 원고는 망인의 사망 직후 이뤄진 경찰 조사에서 ‘동호회에서의 갈등과 음주운전 단속’을 자살 이유로 언급했으나 이는 원고의 추측에 불과하고, 동호회 회장에서 퇴출됐거나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됐다는 사정은 일반인에게는 자살의 동기나 이유라고 보기 어려우며, 오히려 사회활동에서 고립되고 이동이 제한되는 사정은 하반신 마비로 장해가 있는 망인에게 더욱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망인은 업무 중 발생한 추락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됐고, 오랜 기간 하반신 마비와 그로 인한 욕창으로 고통받고 있는 가운데 우울증이 발생했으며, 사망 직전 욕창 증세가 재발해 우울증이 다시 급격히 유발·악화돼 그 결과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낮아진 정신장애 상태에 빠져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봄이 타당하다.

4. 평가

가. 문제의 소재

자살은 고의·자해행위에 해당해 원칙적으로는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산업재해보상보험법 37조2항 본문). 다만 동법 동조항 단서에서 “그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이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한 행위로 발생한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있으면 업무상의 재해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동법 시행령 36조는 “업무상의 사유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이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1호) “업무상의 재해로 요양 중인 사람이 그 업무상의 재해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2호) “그 밖에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했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경우”(3호)를 그 예외 사유로 인정하고 있다.

이상의 설명을 종합하면, 현행 산재보험법은 자살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기 위한 요건으로 ‘업무 → 정신적 이상 상태’(1단계)와 ‘정신적 이상 상태 → 자살’(2단계)이라는 두 번의 인과관계(이른바 ‘이중의 인과관계’) 증명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각주1> 여기서 유족 입장에서 증명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주로 1단계의 증명이다.<각주2> 망인이 사망 무렵 정신건강의학과에 내원해 우울증 등 정신질병 진단을 받았거나 평소와 다른 이상행동을 반복하지 않은 이상 유족 입장에서 망인의 ‘업무 → 정신적 이상 상태’의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정신적 이상 상태 → 자살’의 2단계의 인과관계 증명은 자살 기도자의 상당수가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그중 70-80%가 우울증 환자인 것으로 추정되는 점<각주3> 등을 고려할 때, 우울증 등의 진단이 있다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해석된다.

나. 검토의견

대상판결의 1심과 원심법원은 원고가 망인의 사망 직후 경찰조사에서 ‘동호회에서의 갈등과 음주운전 단속’ 등의 외적 요인을 언급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며 망인의 자살이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위에서 살펴본 ‘업무 → 정신적 이상 상태’(1단계)를 부정한 것이다. 그러나 앞서 사실관계에서 살펴본 것처럼 피고 근로복지공단은 2013년 망인의 우울장애 등에 대해 이미 재요양승인을 한 바 있다. 따라서 기존의 업무상 재해인 우울장애 등이 악화해 정신적 이상 상태에 빠졌고 그 인과의 귀착점인 자살에 이르렀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한편 과거 판례는 ‘업무 → 우울증’의 인과관계를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동종업무 종사자’와 비교해 자살에 이를 정도에 해당하는 ‘업무 → 정신적 이상 상태’의 인과관계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거나(대법원 2008. 3. 13. 선고 2007두2029 판결), ‘업무 → 우울증’의 인과관계는 ‘당해 근로자’ 기준으로 판단하지만 ‘우울증 → 자살’의 인과관계는 ‘사회평균인’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단한 적이 있다(대법원 2012. 3. 15. 선고 2011두24644 판결).<각주4>

대상판결의 1심과 원심법원이 이러한 판례들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론은 ‘업무 → 우울증 → 정신적 이상 상태 → 자살’의 삼중의 인과관계를 요구해 유족에게 지나치게 많은 증명책임을 부담케 하고 있다. ‘우울증 → 정신적 이상 상태’의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이 가능하고 필요한 일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있다. 무엇보다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는 ‘보통 평균인’이 아니라 ‘당해 근로자’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기존 대법원 법리(대법원 2000. 9. 22 선고 2000두3627 판결 등)에 배치돼 ‘업무 → 자살’ 사이의 인과관계를 부당하게 좁히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상판결의 1심과 원심법원이 망인의 자살에 ‘동호회에서의 갈등과 음주운전 단속’ 등의 나름의 이유를 밝히고 있으므로 위 판례들과 직접 관련이 적다고는 하더라도, ‘업무 → 우울증’의 인과관계가 이미 확인된 이상 ‘업무 → 정신적 이상 상태 → 자살’의 순차적 인과를 인정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한편 대상판결은 1심과 원심법원이 망인의 사망 원인으로 인용한 ‘동호회에서의 갈등과 음주운전 단속’ 등에 대해, 이러한 사정이 ‘일반인’에게 자살의 충분한 동기나 이유가 될 수 없다고 설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러한 사정은 ‘일반인’에게 자살의 동기나 이유가 될 수 없으므로 망인의 자살의 원인도 될 수 없다. 반면 망인과 같이 업무상 사고로 하반신 마비와 그로 인해 발생한 우울장애 등으로 수년간 고통받던 이에게는 이런 사정이 사회적으로 더욱 고립되게 해 기존의 우울장애 등을 악화시킬 수 있다. 이는 ‘우울증 → 자살’의 인과관계를 ‘사회평균인’ 기준에서 본 과거 판례(대법원 2012. 3. 15. 선고 2011두24644 판결)를 전복하는 논리다.

<각주>
1) 김유나, “과로자살의 업무상 재해 인정가능성에 관한 검토”, <인권법의 이론과 실제> 제13호, 한양대학교 공익소수자인권센터, 2016. 12. 64면 참조.
2) 전형배, “산재보상에서 업무와 자살의 인과관계와 추정규정의 도입”, <노동법학> 제76호, 한국노동법학회, 2020. 12. 129면 참조.
3) 대상판결문 4면. 1심 진료기록 감정의 의견.
4) 권오성, “업무와 자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의 판단기준”, <노동법학> 제63호, 한국노동법학회, 2017. 9. 136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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