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노동자와 화물노동자들이 25일 파업을 예고했다. 철도노조는 수서고속철도(SRT) 전라선 투입 중단과 고속철도 통합을,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적용 대상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두 사안 모두 국토교통부가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8년간 유지한 삼류 코미디를 마감하자
백남희 철도노조 선전국장

백남희 철도노조 선전국장
백남희 철도노조 선전국장

기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그 기자는 파업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습니다. 아마도 철도노조가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하면서 파업 얘기가 회자되는 모양입니다. 최근 철도 관련 기사도 부쩍 늘었습니다.

파업의 이유는 단명합니다. 시기적으로 본다면 전라선 쪼개기를 멈추라는 겁니다. 지역민의 편익을 위한 것이라면 대안으로 수서행 KTX를 운행하라는 것입니다. KTX면 전라선만이 아닌 동해선·경전선까지 600만 지역민의 고속철도 이용권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수서행 KTX를 운행하면 우리나라의 고질병인 동서차별이라는 난제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반면 국토교통부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그동안 국토부는 ‘전라선 쪼개기는 철도통합과 무관하다’는 주장만 고집스럽게 반복해 왔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제물포 개항과 일제 침탈은 별개’라던 구한말 관료들의 궤변과 뭐가 다른지 철도노동자는 묻고 싶습니다. 여전히 국토부는 작년 5월 시운전 중 추돌사고를 낸 고속차량의 수리를 마치면 12월께 투입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철도노동자에게는 정권 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철도 쪼개기를 강행하려는 것으로 읽힙니다.

철도노조는 부득불 25일 파업을 예고했습니다. 지난 1945년 철도노조를 창립한 이후 지금까지 76년 동안 철도는 국가 대동맥으로 언제나 시민의 안전한 이동권을 책임져 왔습니다. 철도노동자는 철도를 쪼개 민영화하려는 세력에 맞서 주저 없이 투쟁했습니다. 구속과 수백 명의 해고, 심지어 파업 참여 조합원 전체가 징계를 받아도 철도노동자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국토부가 철도 쪼개기를 강행하려는 지금 철도노동자의 파업은 지극히 당연한 역사적 수순입니다. 철도의 가치는 공공성이고, 철도 쪼개기는 공공성을 파괴하고 민영화의 길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국토부의 철도 쪼개기는 철도노동자가 목숨 걸고 지키려는 철도의 소중한 가치와 맞지 않습니다. 철도노동자는 선배노동자가 일궈 온 철도의 가치를 지키고 보존해 후손에게 물려줄 의무가 있습니다.

철도에서 유일하게 흑자를 내는 노선은 고속철도입니다. 서민이 즐겨 이용하는 새마을-무궁화호 심지어 수도권 전철과 화물열차까지 운행하면 할수록 적자 나는 구조입니다. 철도공사는 고속철도 수익으로 이런 노선을 보조해 운영합니다. 만약 국토부의 계획 그대로 철도 쪼개기를 확대할 경우 철도공사의 적자는 늘어날 것이고, 적자 공기업이라는 굴레는 철도노동자에게 구조조정 압박과 노동조건 개악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누적적자를 빌미로 한 일반 열차를 줄이는 일입니다. 실제로 국토부와 철도공사는 지난 8월1일 일반열차 14개 편성의 운행을 중단했습니다. 그 결과 전남 화순에서 용산까지 한 번에 오갈 수 있는 일반열차가 사라졌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국토부는 전라선을 넘어 강릉의 강경선, 부산 부전의 중앙선, 거제의 중부내륙선까지 SRT을 투입해 철도를 영원히 쪼개려는 야심 찬(?)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이루려다 국민 저항으로 실패했던 철도 쪼개기를 확대해 고착화하겠다는 음모입니다. 철도 쪼개기의 종착역은 철도 민영화입니다. 저들은 그 꿈을 여전히 간직하며, 내년 민영화에 우호적인 정권이 들어서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이제 차량을 빌려주면 빌려줄수록, 고쳐 주면 고쳐 줄수록, 시설을 유지보수해 주면 해 줄수록, 승차권을 팔아 주면 팔아 줄수록 철도공사에게 적자가 되는 이 웃지 못할 삼류 코미디의 막장 드라마를 마쳐야 할 시간입니다. 이제 철도노동자의 길은 정해졌고 공은 국토부로 넘어갔습니다. 철도노동자는 국토부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화물운송산업의 질서가 절실하다
박연수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정책기획실장

박연수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정책기획실장
박연수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정책기획실장

최근 한 재단에서 “오징어게임의 456억원을 독식할 것인가, 1억원씩 나눠 가질 것인가?”라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흥미로운 결과를 확인했다. 한국 청년들의 70%가 1억원씩 나눠 갔겠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심해지는 양극화 속에서 보편의 이익에 대한 열망일 것이다. 화물연대의 이번 총파업 역시 지속적이고 보편적인 사회안전망을 바라는 노동자들의 열망이다.

코로나19가 휩쓸고 간 한국 사회의 화두 역시 단연 양극화다. 화물운송산업도 양극화 심화가 두드러지는 산업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생산과 소비 사이를 담당하는 물류산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2020년 코로나 첫해 15년을 통틀어 전년 대비 항만 물동량은 가장 높은 수치로 하락했다. 철강·자동차·컨테이너·시멘트 등 주요 품목에서 대부분 물동량이 하락했고 지금까지도 수치의 회복은 더디다. 반면 택배와 유통은 물동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전년 대비 30% 증가에 육박하는 물동량을 감당하지 못해 장시간·고강도 노동으로 산업재해가 발생하고 있다. 안전운임을 적용받는 컨테이너와 벌크시멘트트레일러(BTC) 화물노동자들의 운임 수준이 안정화되고 인상된 것에 비해 대부분 품목에서는 운임이 하락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선별적으로 화물노동자들을 관리하고 있다. 안전운임제와 산업재해는 일부 품목에 제한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특히 전속성과 종속성이라는 기준으로 화물노동자 일부만 제도 안으로 포섭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도입된 ‘지입제 양성화’ ‘노동기본권 박탈’ ‘운임제도 개악’은 화물현장의 고착화된 질서다. 다중착취구조가 만연한 화물운송산업에서 정부의 선별적인 관리로 화물노동자의 집단적인 대응력은 약화됐다. 이 틈을 탄 기업의 비용 전가와 무한착취 역시 심화하고 있다.

물류는 자본주의의 핵심산업이다. 자본주의의 발전과 밀접하게 물류산업 역시 변화해 왔다. 산업재편 과정에서 가장 최첨단의 정책과 기술이 도입됐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점점 더 노동자들의 권리를 박탈하고 단결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산업이 재편됐다는 것이다. 이제 또 한 번 물류산업의 재편이 다가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역할은 무엇이 돼야 할까?

드론과 무인배송의 도입을 논의하지만 자본주의 시장질서에도 어긋나는 지입제는 유지되는 산업, 한쪽에선 일방적인 계약해지와 물동량 하락으로 적자를 보는 노동자가 있고 반대쪽엔 넘쳐 나는 물량으로 과로사하는 노동자가 있는 현실, 똑같은 일을 하지만 정부가 임의대로 그은 법 조항에 따라서 운임이 다른 제도, 노동기본권을 박탈해 놓고 한 기업에서 안정적으로 물량을 받아야만 산재보험을 적용해주겠다는 기만. 다가오는 포스트 코로나 사회에서는 화물운송산업의 이 모순적인 구조를 바꿔야 한다. 화물노동자 전체를 위한 법·제도적 안전망의 확보가 절실하다.

화물연대는 기존 현장의 질서를 거부하고 화물노동자 모두를 위한 법·제도를 만드는 파업투쟁에 나선다. 이번 파업 요구는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안전운임제 전차종·전품목 확대 △산재보험 전면 적용 △운임 인상 △지입제 폐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 개정이다. 화물운송산업의 체질을 바꾸는 요구들이다. 파업 돌입 이후 정부와 보수언론이 씌우는 불법 프레임이 우리 요구안의 내용을 가리는 장막이 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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