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동희 공인노무사 (법률사무소 일과사람)

최근 5년간 정신질환 산업재해 판정을 보면 2017년 신청된 213건 중 126건, 2018년 268건 중 201건, 2019년 331건 중 231건, 2020년 581건 중 396건, 올해 5월까지 294건 중 217건이 승인됐다. 정신질환 산재신청은 2019년부터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인정률은 70% 정도다. 이런 외형적인 신청건수와 인정률 이면에 근로복지공단의 정신질환 산재 조사·판정은 문제가 여전하다.

일단 지역별 인정률 편차가 너무 크다. 자살사건 판정 소요기간은 2019년에 257일로 매우 길었다. 이로 인해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일괄적으로 처리했던 정신질환 사건을 2019년 8월12일 운영규정 개정으로 각 지역질병판정위로 분산했다. 2019년 정신질환 사건 인정률은 69.2%, 2020년 인정률은 67.2%다. 지역별 편차는 상당하다. 지난해 정신질환 산재 인정률은 부산질병판정위 49.3%, 광주질병판정위 53.8%를 기록했다. 부산질병판정위의 경우 뇌심질환 인정률도 전체 38.2%에 비해 낮은 27.4%다. 사건은 분산해 배정했지만 준비는 되지 않았으며, 여전히 이에 대한 개선책이 모색되지 않고 있다. ‘정신질병 업무관련성 조사지침’(2021-05호)과 별도로 정신질환 산재 인정사례(법원 판결 포함)를 분석해서, 정신질환 심의·판정지침을 별도로 만들 필요가 있다.

둘째, 특별진찰 남용 문제다. 공단은 ‘정신질병 업무관련성 조사지침’에서 “진행경과를 파악하기 위해 산업재해보상보험법 119조에 의한 진찰요구를 할 수 있음. 특진의료기관은 소속병원 또는 종합병원 이상으로서 정신건강 임상심리사 1급 자격을 가진 전문가를 보유한 의료기관에서 복수 추천해 선택 가능”으로 규정했다. 공단은 임상심리검사가 없는 경우, 특진의료기관에 해당하는 의료기관에서 실시한 검사가 아닌 경우 특별진찰을 강요한다. 이로 인해 조사 판정기간이 매우 길어지고 있고, 불필요한 검사에 고통받고 있다.

일례로 지난 4월 공단 지사에 우울증으로 산재를 접수한 노동자는 8월에 주치의 소견조회를 받았지만 특별진찰을 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지난달 공단 인천병원에 예약했지만 심리검사는 내년에 진행된다는 통지를 받았다. 언제 심리검사를 할지, 그 검사를 반영해서 언제 판정위원회로 회부될지도 불확실하다. 개인병원이지만 수차례 정신과 전문의가 진료와 검사 등을 통해 진단한 결과를 공단은 신뢰하지 않는다. 임상심리검사는 주치의사의 진단에 보조적 수단으로만 활용해야 한다. 공단 소속 병원의 임상심리검사도 3개월 이상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종합병원 이상의 특진의료기관을 찾기도 어렵다. 산재신청 후 공단 지사 자문의의 자문을 거쳐 진단의 적절성이 문제가 되는 경우에 한해 특별진찰을 진행하는 식으로 변경돼야 한다.

셋째, 정신질환의 판정 틀을 교정해야 한다. 정신질환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업무 관련성이다. 이 관련성은 발병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원인으로서 가능성을 규범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판정위원회를 포함한 판정기관 참여 위원 중 정신질환 판정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다. 대부분 여전히 발병의 원인으로서 의학적 모델로 사건을 접근한다. 정신질환 원인은 다양하다. 그중 생물학적·가족적·유전적 원인을 일차적으로 본다. 물론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산재 승인이 어려운 조현병이 그렇다. 다만 조현병도 생물학적·정신 사회학적인 환경적 스트레스에 의해 증상이 발현할 수 있다고 본다. 우울증도 마찬가지로 내성적인 성격 등 개인적 취약성이 주요 원인이지만, 심리 사회적 스트레스를 배제할 수 없다. 의학적 발병 원인에 집착하고, 업무적 원인으로 인해 이것이 악화·발현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미흡하다. 정신질환 진단이라는 의학적 접근과 업무와 상당인과관계라는 법리적 판단은 다른 것이다. 개인의 취약성이 있다면 업무적 스트레스로 인해 발병이 쉬워야 하는데, 유독 정신질환 산재 사건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넷째, 회사나 사업주에 대한 조사·판단 방식도 문제다. 정신질환의 다수 사건은 사업주 또는 동료와의 갈등, 괴롭힘 등이 쟁점이다. 사업주의 비협조 등으로 개인의 진술 등에 근거해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사업주의 업무지휘 방식이나 인사권에 있어 문제가 없는 경우 노동자의 업무 스트레스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다수 사건에서 인사권 행사가 특별히 문제가 없다고 보는 경우 개인의 취약성 때문이라고 불승인된다. 이는 법리에 위배되는 접근·판단방식이다. 회사의 인사권 행사가 정당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업무상 재해 인정 여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대법원 2010. 4. 25. 선고 2010두710 판결).

마지막으로 외상성 사고가 명확한 사안의 경우 공단 지사의 결정으로 신속한 치료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담당자의 조사로 업무상 정신질환을 유발할 정도의 명백한 외상사고 후 발병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급성스트레스 반응, 적응장애’에 한해 지사 자문의사의 자문을 통해 승인 처리하는 것이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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