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지난 13일 토요일은 1970년 11월13일 전태일 동지가 분신항거한 지 쉰한 해가 되는 날이다. 이날 오후 2시 서울 동대문 로터리 일대에서 민주노총 주최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다. 노동자들은 집회를 열고자 했던 여의도·광화문 등에 쳐진 경찰의 사전봉쇄를 피해 간신히 이곳에 모일 수 있었다. 건설노동자들이 맨 먼저 도착하고 이어 금속노동자들이 도착하더니 여러 산업, 여러 지역의 2만여 노동자들이 속속 도착해 동대문을 에워쌌다. 그 외곽을 경찰이 에워쌌다. 집회를 진행하려고 하자 서울 혜화경찰서 경비과장이 방송차 스피커로 “불법집회다” “해산하라” “해산하지 않으면 법에 따라 처벌하겠다”는 경고방송을 계속했다. 그 소음 때문에 집회 연사들의 연설을 잘 들을 수 없었다. 필자는 동대문역 8번 출구쪽에 있었는데 그 건너편에 ‘평화시장’이라는 큰 간판이 보였다. 그 전날은 경찰이 평화시장 전태일 동상이 있는 다리 주변을 에워싸서 비정규 노동자들의 집회를 방해했다. 이들은 “촛불의 명령을 배신하고 재벌 편에서 노동자·민중을 배신한 문재인 정권에 맞서 촛불을 든다”고 말했다.

5년 전 이맘때인 2016년 11월12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3차 민중총궐기 집회에 100만명의 군중이 운집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집회였다. 이날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 일대에는 각계각층이 개최한 사전집회를 시작으로 본집회인 ‘백남기·한상균과 함께 민중의 대반격을! 박근혜 정권 퇴진! 2016 민중총궐기’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박근혜 퇴진’ ‘국민이 주인이다’ ‘박근혜는 하야하라’ 등의 손피켓을 들고 ‘박근혜는 퇴진하라’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했다. 서울시민은 물론 지방에서 전세버스나 열차로 상경한 사람도 많았다. 오후 2시 광화문광장에서 집회가 열렸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 장애인, 장사하는 일반 시민 등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이 자유발언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자유발언에 나선 한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은 “촛불을 들어서 돈이 없어도 모든 사람이 평등한 나라가 되면 좋겠다. 대통령과 친한 사람이나 재벌만 잘사는 나라는 선진국이 아니다”고 주장해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오후 4시 서울광장에서 민중총궐기 집회가 열렸다. 이날 오후 7시30분 현재 주최측 추산 100만명이 모인 것으로 파악됐다.

5년 전 그날과 5년 후 이날 사이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리고 의아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전국노동자대회를 주최한 민주노총은 이날 집회에서 문재인 정부를 겨냥해 “촛불에 배신당한 지난 5년”이라며 “부동산가격 폭등으로 사상 최악의 부익부 빈익빈 시대를 맞닥뜨렸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 약속을 폐기했고 민주노총 위원장을 가뒀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4년 전 박근혜 정권 하야와 퇴진을 요구했던 민주노총은 문재인 정권에 대해서는 그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권이 촛불혁명을 배신했다면, 주택정책 실정으로 사상 최악의 부익부 빈익빈 사회를 만들었다면,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이유로 자신들의 위원장을 구속했다면, 문재인 정권 퇴진을 요구하고 총궐기투쟁을 해야 할 텐데 어째서 그런 요구와 투쟁형태가 나오지 않는지가 의아했다.

기분전환을 위해 지금 지구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하나를 소개하겠다. 지난달 28일자 이코노미스트에 칠레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제목은 “타는 불에 기름을 붓다”이고, “한때 라틴아메리카의 핀란드로 여겨졌던 칠레가 병을 앓고 있다”는 부제가 붙어 있다. “칠레에서는 지금 치열한 계급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몇 주 동안의 시위에서 3명이 사망했다. 복면을 하고 막대기를 휘두르는 남성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37세의 시위자 카탈리나(본명이 아니다)는 ‘우리는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보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그녀는 칠레가 지난 10월 코로나 관련 통행금지를 완화한 이후 정부를 규탄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수백 명의 시위자 가운데 한 명이다. 검은색 방한모를 입은 다른 일부 시위자들은 ‘짭새’라 불리는 경찰에게 화염병을 던졌다. 최근 일주일 동안 수도의 주요 도로는 불에 탄 쓰레기 더미로 가득했다. 시내 중심가는 낙서로 뒤덮여 있다. 한 낙서에는 ‘정부에 죽음을, 무정부 사회 만세’라는 글귀가 휘갈겨 쓰여 있다.”

칠레는 지금 혁명 중이다. 칠레는 남미에서 1인당 국민총생산이 가장 많은 나라다. 칠레는 또 우리나라처럼 부국들의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해 있다. 이 지역에서는 유일하다. 칠레는 또 이 지역에서 빈부격차가 가장 심하다. 이런 계급적 모순으로 2019년 10월 대규모 민중봉기가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수십 명이 죽고 수천 명이 부상했다. 그러나 이 피의 대가로 제헌의회가 소집됐다. 제헌의회에는 제도권 밖에서 노동자·민중의 요구를 대변하며 투쟁해 온 민중대표들이 대거 선출됐다. 제헌의회 의장은 원주민 출신 여성 엘리사 롱콘이다.

한편 이달 칠레에는 대선이 치러진다. 이번 대선에서는 지난 수십 년 동안과 달리 중도우파와 중도좌파가 아니라 좌파와 우파가 대결하고 있다. 민중진영의 대표인 하원의원 가브리엘 보리치와 극우 정치인 안토니오 카스트다. 보리치는 민중진영 내부경선에서 후보로 선출됐다. 카스트는 불법 이민자들의 입국을 막기 위해 북부 국경에 해자를 설치하겠다고 공약하고 있다. 어느 쪽이 승리하느냐가 2019년 봉기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며 제헌 과정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와 같이 칠레는 지금 노동자·민중이 주인 되는 새로운 나라로 변혁하느냐 피노체트 군사독제 시대로 되돌아가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이 나라 안팎의 자본가계급은 칠레가 베네수엘라를 닮아가고 있다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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