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진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노동안전보건부장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더 이상 노동자의 죽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과 관심이 커지면서 제정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내년 1월27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서울시와 경기도에서는 선도적으로 가능한 노동정책을 계획·실행하고 있다. 노동형태가 다양화하면서 노동정책은 중앙정부 영역이라는 인식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서울시는 국내 최초로 노동정책 관련 조례제정, 행정조직 설치, 정책과 사업, 지원조직(센터), 거버넌스(워원회 등)을 제도화했다. 모범 사용자 역할을 강화하며, 민간부문의 왜곡된 노동시장이나 부당한 현실 개선을 위해 적극행정을 시도해 왔다.

지난달 28일 고용노동부는 17개 광역 지방자치단체 및 행정안전부 등과 ‘지자체 산재예방 협의회’를 2시간가량 개최했다. 그동안 산업안전보건과 관련된 행정은 노동부의 역할이었고, 지자체(지방정부)는 법률 규정이 없어서 산재예방과 관련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러나 올해 5월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면서 지자체도 관할 지역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 산재 예방을 위해 자체 계획, 교육, 홍보 및 사업장 지도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게 됐다.

지방자치단체장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로서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하며, 관내 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안전보건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지원업무 주체가 돼야 한다. 노동문제가 경제나 산업정책의 하위 영역 혹은 고용의 한 파트라는 인식을 넘어야 한다. 지역주민들의 생활과 직결되는 영역으로서 적극적으로 공공행정의 영역으로 확장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됨에 따라 기존 노동안전조례가 포괄하지 못했던 사업장과 민간위탁, 플랫폼 노동자 같은 특수고용 노동자 등에 대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필자가 생활하고 있는 충청북도의 경우에 주민발의를 통해서 노동안전조례가 도의회에 상정됐지만, 도지사의 반대로 수정안이 우여곡절 끝에 통과됐다. 이달 19일부터 시행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충청북도는 노동안전을 전담할 부서도 구성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노동부를 비롯한 노동조합, 노동안전단체 등과 협력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논의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와 경기도를 제외한 다른 지방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를 줄이기 위한 특단 대책으로서 ‘특별법’으로 제정됐다. 그러나 법제정과 시행령 공포 이후 여러 가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중대재해가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는 5명 미만 사업장 적용제외, 50명 미만 사업장의 시행 3년 유예다.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의 약 65%, 중대재해 발생의 81%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이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됐다.

따라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과 책임을 보다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16조에서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다.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시민과 종사자의 안전과 건강을 확보하기 위해 종합적인 예방대책 수립·시행,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위한 지원 등의 책무를 부여하고 있다.

예방에 무게를 둬 중대재해를 감소시키는 노력은, 법에 기대어 법적용을 제대로 하도록 관리·감독하는 것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 법의 사각지대가 명백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하게 함과 동시에 적극적인 행정을 펼쳐야 한다. 중대재해의 81%를 차지하고 있는 5명 미만, 50명 미만 사업장에 대한 구체적인 예방대책을 수립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자임하고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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