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예슬 기자

20년을 일한 일터였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 없었다. 출근해 기계를 돌렸다. 회사는 폐업을 통보했다. 30년 동안 흑자를 내던 기업의 폐업 소식에 어안이 벙벙했다. 꿈 많던 20대 입사해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아 길렀다. 일생을 함께한 곳이었다.

“진짜 억울하데예. 이레가(이렇게) 끝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송인환(46)씨가 지난해 6월 해고를 통보받은 뒤 500일 넘게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싸우는 이유다.

한국게이츠는 지난 6월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악화를 이유로 노동자에 폐업을 통보했다. 외국계 기업의 폐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147명 노동자는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었다. 현재는 금속노조 한국게이츠지회(지회장 채붕석) 조합원 19명이 남아 ‘고용승계’투쟁을 하고 있다.

“아빠 열 밤 자고 갈게”

지난 4일 해고노동자들이 서울로 올라왔다. 한국게이츠가 서울 구로구 신도림디큐브시티에 있는 대성산업에 부지를 매각했기 때문이다. 지회는 “해고노동자와 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매각절차에 발을 담근 대성산업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며 “해고노동자를 고용승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대성산업은 노동자와 대화를 거부했다. 결국 지회는 9일 대성산업 본사 점거 농성을 택했다. 회사가 본사 사무실이 있는 11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운행을 정지하고, 침낭과 식사 반입을 막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에 필요한 마스크 반입도 막으려 해 승강이가 한 차례 있었다. 경찰의 조정 끝에 마스크를 겨우 반입한 상태다.

사무실 안 농성 중인 동료를 지원하기 위해 밖에 남은 송인환씨는 “아침식사로 김밥이랑 사서 올려 보내려 했는데, 회사가 불법 음식물을 반입하지 말라고 해서 못 보냈다”며 “위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힘들 텐데, 도와준다는 핑계로 같이 있지 못하는 게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송씨는 2년 전 위암과 직장암으로 수술을 했다. 동료들은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송씨를 걱정하고, 송씨는 동료와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에 “마음이 아프다”는 말을 반복했다.

사무실 안을 점거한 노동자들은 9일 저녁부터 배를 곯고 있다. 정민규(50)씨는 “사무실 아래 카펫이 깔려 있어 그 위에서 잔다”며 “침낭이나 이불도 들이지 못해 잠바를 덮고 눈을 붙인다”고 설명했다.

내부 상황은 좋지 않다. 이길우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장은 대구시청 앞 단식농성을 2주 동안 하다 3일 중단했다. 단식 뒤 보식 기간에 다시 강제단식을 하는 셈이다.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기저질환을 가진 노동자가 적잖은데 약도 충분하지 않다. 정씨는 “주머니에 있던 고혈압약 다섯 알을 오늘 아침 나눠 먹었다”며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전했다. 긴장감이 감도는 하루 정씨의 기쁨은 매일 아침 다섯 살 아들과 하는 영상통화다. 아들 이야기를 하자 목소리에 웃음기가 묻어났다. 정씨는 “애기가 ‘아빠 언제 와’하고 물으면 ‘아빠 열 밤 자고 갈게’ 하고 얼버무린다”고 말했다.

‘직접 쑨 죽과 응원 메시지’
냉기 가득 투쟁에 온기 더해

강예슬 기자
▲ 강예슬 기자

투쟁현장에 냉기만 흐른 것은 아니다. 겨울 칼바람 무섭게 때리는 농성 천막 한편에는 죽이 소담하게 놓여 있다. 단식농성 등으로 허해진 해고노동자를 위해 ‘꿀잠’에서 직접 쑤어 가져왔다고 한다.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을 촉구하며 도보행진을 하던 시민 한 명은 “고생하세요. 저도 대구에서 왔습니다”라는 응원을 건넸다.

24년 동안 한국게이츠에서 일하다 해고된 송해유(51) 지회 사무장은 “청와대나 정부기관 어디를 가도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는 곳이 없어 단식까지 했지만, 단식으로 어떤 결론도 얻지 못해 속이 아프다”고 했다. 송 사무장은 “최근 현수막을 들고 선전전을 하는데, 한 시민이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다”며 “관심을 가져 주니 고맙고, 동료랑 ‘서울은 다르구나’ 하고 이야기했다”고 웃었다.

언제 끝날지 모를 투쟁은 고통스럽다. 송 사무장은 “투쟁하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운 것은 잊히는 것”이라며 “19명이 투쟁하는데, 외롭지 않게 해 달라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속마음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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