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판결 : 헌법재판소 2021. 8. 31. 선고 2018헌마563 전원재판부 결정

▲ 문성덕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
▲ 문성덕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

Ⅰ. 사건의 개요

청구인은 2017년 8월25일부터 같은 해 10월14일까지 ‘○○한우농장’에서 소 관리, 사료 제공, 분뇨 정리 등의 업무를 맡아 사용자가 제공하는 농장 숙소에서 생활하며 일하던 노동자이다. 청구인은 토요일과 공휴일을 포함해 계속 근로를 제공했음에도 자신이 예상한 연장근로 및 휴일근로에 대한 임금을 지급받지 못하게 되자, 축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에 대해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근로시간·휴게·휴일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도록 규정한 구 근로기준법 63조2호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을 권리 및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면서, 2018년 6월1일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Ⅱ.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 결정 내용

이 사건에서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의견은 기각 1인, 헌법불합치 5인, 각하 3인으로 나뉘었다. 헌법불합치의견이 재판관 9인 중 5인으로 다수였다. 하지만 헌법 113조1항, 헌법재판소법 23조2항 단서 1호에서 정한 헌법소원심판 인용 결정을 위한 심판정족수에는 이르지 못한 이유로 헌법재판소의 법정의견은 ‘기각’이었다.

각하의견(재판관 3인)은 헌법재판소법 69조1항에서 정한 청구기간(기본권 침해가 있음을 안 날부터 90일)을 도과했다는 것이어서 별도로 상세한 소개를 요하지 않는다. 법정의견과 다수의견의 요지는 아래와 같다.

1. 법정의견(재판관 1인)

법정의견은 “축산업은 가축의 양육 및 출하에 있어 기후 및 계절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므로, 근로시간 및 근로내용에 있어 일관성을 담보하기 어렵고, 축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경우에도 휴가에 관한 규정은 여전히 적용되며,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근로시간 및 휴일에 관한 사적 합의는 심판대상조항에 의한 제한을 받지 않는다. 현재 우리나라 축산업의 상황을 고려할 때, 축산업 근로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을 전면적으로 적용할 경우, 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경제적 부작용이 초래될 위험이 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볼 때, 심판대상조항이 입법재량의 한계를 일탈해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근로조건을 마련하지 않은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축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의 근로시간·휴게·휴일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더라도 근로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봤다.

한편 “축산업 근로자의 경우 계절과 기후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특성이 뚜렷하다. 일본·유럽연합·스위스 등 많은 국가들과 국제노동기구(ILO)에서도 축산업 근로자에 대해서는 근로시간 및 휴일에 관한 법령의 전면적 또는 부분적 적용 제외를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사업’을 기준으로 축산업 근로자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및 휴일 조항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와 달리 취급하는 것의 합리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이유로 타 사업과 달리 축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의 근로시간·휴게·휴일에 관한 규정을 배제한 것이 평등권 침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2. 다수의견(재판관 5인)

반면 헌법재판소의 다수의견은 “축산업은 주로 근로자의 육체 노동력에 의존하고, 일단 근로에 임하게 되면 장시간 근로가 불가피하다. 현재 우리나라 축산업은 지위가 불안정한 일용직 내지 임시직 근로자가 다수를 차지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 사적 합의를 통해 합리적인 근로조건을 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위와 같은 점에서 축산업 근로자들에게 육체적·정신적 휴식을 보장하고 장시간 노동에 대한 경제적 보상을 해야 할 필요성이 요청됨에도 불구하고, 심판대상조항은 축산 사업장을 근로기준법 적용 제한의 기준으로 삼고 있어 축산업 근로자들의 근로환경 개선과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따라서 이 조항은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근로조건 마련에도 미흡하다”며 해당 조항이 축산업 노동자들의 근로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봤다.

다수의견은 평등권과 관련해서도 “심판대상조항은 산업의 발전이나 기술화의 진전, 축산 사업장 내 업무 분업화 등으로 인해 일반 근로자와의 차별이 불합리해진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근로시간 및 휴일에 관한 근로기준법 규정의 적용대상에서 축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을 제외함으로써, 근로시간 및 휴식시간의 불규칙성을 수반하는 타 사업 종사 근로자들과 비교할 때 합리적인 이유 없이 축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을 차별하고 있다”고 해 평등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규정이라고 봤다. 다만 단순위헌결정을 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우려해 헌법불합치 의견을 내고 개선입법을 촉구했다.

Ⅲ. 검토

1. 한 끗이 모자라 위헌의견을 내지 못한 헌법재판소

헌법 113조와 헌법재판소법 23조2항은 ‘법률의 위헌 결정, 헌법소원에 관한 인용 결정을 할 때에는 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반 다수결이 아닌 3분의 2 이상을 요구하는 ‘가중 다수결’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로 인해 재판관의 다수, 즉 5명이 위헌의견(단순위헌, 한정위헌, 헌법불합치)을 냈음에도 6명을 넘지 못해 법정의견은 합헌이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올해만 하더라도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 조항(헌법재판소 2021. 2. 25. 선고 2017헌마1113 결정)’ ‘변호사에게 세무사 자격 자동부여 폐지 조항(헌법재판소 2021. 7. 15. 선고 2018헌마279 결정)’ ‘강제징병 조선인 전범 방치(헌법재판소 2021. 8. 31. 선고 2014헌마888 결정)’ 등 사건에서 재판관 다수인 5인의 위헌의견에도 불구하고 법정의견은 합헌 내지 각하였다.

헌법재판소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권력(국회)의 입법 결과를 헌법 해석으로 뒤집으려면, 적어도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가능하도록 정한 것이다. 입법권자에 대한 존중과 법적 안정성을 고려할 때, 헌법적 정당성을 쉽게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사건의 경우 문제의 조항이 합헌이라고 밝힌 재판관은 ‘단 1명’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해당 재판관의 의견이 법정의견이 됐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위헌결정의 정족수나 헌재 평결 방식의 불합리함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 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 사건에서 각하 의견을 낸 재판관 3명은 본안 판단을 하지 않았는데, 청구 기간을 준수한 다른 사건이 접수되는 경우, 이들은 본안 판단에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만 다수의견에 동조한다면, 근로기준법 63조2호는 위헌 내지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 끗이 모자라 이번에는 합헌으로 결정됐으나, 향후 다른 축산업 노동자가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경우 위헌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2. 국회, 헌법재판소 제시 기준따라 개선입법해야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다수 재판관의 의견은 ‘인간의 존엄에 상응하는 근로조건 확보’를 명하고 있는 헌법(32조3항)에 충실히 부합한다. 특정 산업(축산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이유로 육체적·정신적 휴식에 관한 최소한의 법률적 보장도 받지 못한 채 저임금·장시간 근로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이에 대한 경제적 보상(연장근로·휴일근로에 대한 가산임금)마저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은 헌법적으로 용인되기 어렵다. 이는 최소한의 근로조건도 규정하지 않은 것이므로 아무리 입법권자의 재량을 넓게 인정하더라도 그 범위를 한참 일탈한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다수 재판관의 의견은 ‘현재의 축산업 현실’을 훨씬 잘 반영했다는 점에서 시대적 타당성도 확보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63조2호에 축산업이 포함된 것은 1953년이다. 당시의 축산업은 자연조건의 영향을 강하게 받기 때문에 다른 여타의 노동자들과 동일하게 근로시간 등을 규율하기 곤란하다는 점이 고려됨 직하다. 그러나 현재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자연적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을 수 있는 영농기술이 출현하는 등 축산업의 특성 및 근로 여건에 있어서도 많은 변화가 발생했다. 사회가 발전했다면, 법도 이에 발맞춰 변화하는 것이 당연하다.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다수 재판관들은 개선입법 방향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축산업의 특성은 고려하되, 아직도 한 달에 26일 넘게 일하는 축산업 종사 노동자들의 몸과 마음에 최소한의 휴식을 보장하는 입법이 이뤄지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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