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삼우 서울교통공사노조 정책실장

서울교통공사노조는 지난달 예정됐던 파업을 노사 잠정합의로 철회했다. 핵심쟁점인 구조조정과 관련해 ‘재정 위기를 이유로 강제적 구조조정이 없도록 하고, 노사 공동협의체를 구성해 안전 강화 및 재정 여건 개선방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지난해 1조1천여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 1조6천억원대의 적자가 예상되는 등 사상 초유의 재정 위기에 놓였다. 노인·장애인 같은 교통약자에게 제공하는 무임승차 비용이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데다 코로나19 사태로 운수 수익이 큰 폭으로 줄어든 탓이다. 게다가 노후시설 교체비용까지 급증해 적자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공사는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채무 불이행 등 부도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정부, 서울시는 ‘폭탄 돌리기’하듯 책임을 미루다 되레 공사에 자구책을 내놓으라고 압박했다. 이에 공사는 대규모 감원과 안전업무·필수유지업무 외주화 등으로 비용절감을 꾀하겠다는 구조조정안을 끄집어냈다. 지하철 재정 위기가 노사 대립 격화의 이유였다.

노사가 가까스로 합의했지만 문제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 조 단위의 적자와 이로 인한 운영 위기는 노사가 골몰한다고 해결책이 나올 리 만무하다. 지난 노사합의는 도시철도 재정 위기에 대해 정부·서울시가 책임지고 해법을 내놔야 한다는 점에 명토를 박은 것이었다.

이제 정부가 응답할 차례다. 해결책이 없는 것도 아니다. 노조는 도시철도 운영 정상화와 안전 투자가 적기에 이뤄지도록 공익서비스(PSO) 비용 정부 지원책 마련을 주장하고 있다. 현 재정 위기가 ‘안전 위기’ ‘공공교통의 위기’로 이어지지 않도록 서둘러 지원책을 제도화해야 한다. 공사의 경우 무임승차제도에 따른 비용은 당기순손실 대비 70%에 육박한다.

사실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PSO 지원 법안은 입법 문턱을 넘어설 기회가 있었다. PSO 국비 지원을 명시한 도시철도법 개정안을 여야 다수 의원이 발의했고,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까지 통과했다. 그러나 법안 통과를 끝내 반대해 절호의 기회를 뭉개 버린 자들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기획재정부였다. 당시 기재부는 도시철도 운영의 최종 책임은 지자체라며 정부에게 부담 지우는 법안을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고 군색한 주장을 폈다. 2005년부터 시작된 도시철도 PSO 비용 지원에 대한 건의에 16번째 퇴짜를 놓는 순간이었다. “여기 와서 뒤집으면 어떡하냐”는 국회의원들의 항의가 나왔지만 안하무인이었다. 전국 각 도시철도의 무임제도는 해당 지역 주민에게만 한정된 교통복지가 아니다. 수도권 전철만 따져 봐도 강원도·충청권까지 확대된 광역 교통망이 된 지 오래인데, 기재부는 애써 눈감았다. 더구나 무임승차제도는 지방자치제 시행 이전인 1984년도부터 교통복지 차원에서 정부가 제정한 것이다.

개정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지만 올해도 녹록지 않아 보인다. 기재부는 한편으론 운임 인상, 무임승차제도 축소에 군불을 때며 시민에게 부담을 떠넘길 궁리만 하고 있다. 이에 도시철도기관은 노후시설·전동차 교체 등 안전 재투자 비용 조달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쯤 되면 부도 위기를 방치해 노동자·시민 부담으로 전가해 온 설계자는 기재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단 도시철도뿐만이 아니다. 코로나19 재난 이후 기재부는 사회적 약자 지원은 물론 의료·돌봄·주택·교육·사회보장 등 필수 공공서비스에 대한 예산 증액과 대책 마련에 인색하기 짝이 없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하위권을 맴돌고 있는 점은 이를 방증한다. 예산권을 독점하고 무소불위로 군림하고 있는 기재부를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곳간지기’를 자처하고 있지만, 실상 민생에 대한 국가 책임을 방기하고 재벌 대기업에 편중된 재정정책을 ‘상왕’처럼 휘두르고 있다.

공공성 확대 요구에 귀 닫고 공공부문에 대한 관료적 통제의 정점에 서 있는 기재부야말로 적폐이자 개혁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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