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가을 한창인데 한겨울 옷 미리 껴입은 사람들이 고궁 담벼락에 기대어 줄줄이 앉았다. 농성이야 어디서든 길었으니 낯설지 않았으나, 새벽이슬을 피할 비닐 한 장을 들이는 게 큰일인 것이 서럽더라고 말했다. 지키는 이 많은 그 도롯가에 바스락바스락 낙엽이 뒹군다. 사람이 굶는다. 희망찬 약속 따라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을 바랐지만, 4년여 제자리걸음. 되레 해고 위기라니, 말짱 도루묵이다. 돌고 돌아 도돌이표, 투쟁가는 멈출 줄을 모른다. 파업가에 이른다. 여기저기서 안 해 본 것 없다는 사람들은 이제 저 자리에서 끝장을 말한다. 찬 바닥과 허기와 추위를 견디고, 행진 또 행진해 온 동료들과 아우성치는 일과가 반복된다. 희고 검은 옷 입은 사람들이 피아노 건반처럼 가지런히 앉아 오늘의 행진곡을 연주한다. 마침표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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