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주로 악당이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해 법 집행을 비웃고 조롱하며 내뱉는 대사 중 하나다. 그러나 영화나 드라마만의 얘기가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법이 존재하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법에 기대는 게 사실상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터에서 안전보건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현실이다.

질문을 던져 본다. 일터에서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현실’이 횡행하도록 하는 데 있어 악당은 과연 누구인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우선 구체적인 어떤 대상을 떠올릴 수도 있다. 안전·보건관리를 뒷전에 두고 생산을 우선에 두도록 강요하는 인물 말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런 악당이 ‘법’ 그 자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있으나 마나 현실에서 통용되지 않는 법이라면, 사실상 힘센 이들의 편이 돼 무력한 현실을 받아들이게 하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산업안전보건법이 일터에서 때론 그런 존재가 된다. 무력함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존재 말이다. 노동재해로부터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을 보호·예방하는 기능에 실패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하는 기준으로서 아무짝에 쓸모없다면 더욱 그렇다.

얼마 전 한 20대 노동자가 회사의 지붕 위에 올라가 환풍기를 교체하다가 11미터 아래로 추락해 사망했다. 사고는 지난달 18일 오전 경북 포항의 한 폐기물 재활용 공장에서 발생했다. 작업발판과 추락방망도 설치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안전대 걸이 설비는 마련돼 있었으나 기준에 맞게 적정하게 설치됐는지도 알 수 없는 상태였다. 구명줄조차 추락을 막을 수 있도록 안전대와 연결되지 않았으니, 결국 의지할 것은 개인 보호구인 ‘안전모’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추락하지 않도록 마련됐어야 하는 안전조치도, 혹시라도 추락하더라도 살 수 있도록 설치됐어야 할 보호망도 없었다. 현장에서는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전문업체에 맡기자는 의견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회사의 여건을 핑계로 묵살됐다고 한다.

그런데 필자가 여기서 주목한 것은 다른 데 있다. 바로 ‘작업중지권’이다. 황망하게 목숨을 잃은 재해자의 유족은 언론 인터뷰에서 재해자가 평소 고소공포증이 있었다고 말했다. 작업이 며칠째 계속되며 “정말 회사 가기 싫다. 올라가기 싫다”며 가족들에게 두려움을 호소했다고 한다. 동료들의 인터뷰에는 재해자가 거듭 힘들다고 호소했지만 “계속 작업을 강요받았다”는 내용도 실렸다. 산업안전보건법 52조에는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이 담겨있다. 같은 조 1항은 급박한 위험에서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권리가 노동자에게 있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재해노동자는 이를 행사하지 못했다. 아니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이 있는지 여부조차 알 수 없었을지 모른다. 백번 양보해서 작업중지권이 법에 존재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위험작업을 회피하거나 거부할 수 있었을까?

산업안전보건법 52조3항에는 노동자의 작업중지와 대피 상황이 발생하거나 작업을 중지해야 할 상황을 보고받으면, 회사가 필요한 안전·보건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52조4항에는 산재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노동자가 믿을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때는 작업중지를 한 것에 대해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현실’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의 52조3항과 4항을 근거로 추가적인 안전·보건 조치를 요구하지도, 최종적으로 작업을 거부하거나 회피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여전히 많은 노동자가 법에 명시된 작업중지권을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인 상황, 울며 겨자먹기로 “밥줄을 위해 목숨줄을 내놓고 일하는” 상황, 결국 작업중지권은 법문에만 있는 ‘그림의 떡’이 되는 상황이, ‘법은 멀고 주먹이 강한’ 현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의 발효를 두 달여 앞두고 있는 지금, 대형 건설사를 중심으로 노동자에게 작업중지권 행사 권한을 부여하는 ‘작업중지 요청제’를 잇따라 도입했다는 소식과, 그로 인한 실질적 효과가 상당하다는 내용을 홍보성(?) 언론기사를 통해 접하고 있다. 법에 버젓히 존재해도 최후의 수단으로 노동자가 위험상황에서 작업중지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으니, 건설사들이 나서서 작업중지권을 보장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해당 건설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청취하지 못한 한계는 있으나, 이렇게라도 작업중지권이 발휘돼 노동재해를 예방할 수 있다면 여러 모니터링을 통해 법·제도 보완을 생각해야 한다.

최근 민주노총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과 관련해 ‘노동조합의 작업중지권 보장’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요구로 제시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가 단독으로 작업중지권 행사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작업중지권이 실행되려면 집단적 힘으로, 노동조합 차원에서 행사할 수 있어야 실질적인 행사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런 현실들을 반영해 작업중지권이 더 이상 법문에만 존재하는 공문구가 아닌 실질적인 힘으로 노동자의 목숨을 지킬 수 있는 권리로 실현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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