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은영 공공운수노조 국민권익위원회 공무직분회 사무장

평소 다양한 세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쓸모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정부민원안내콜센터(국민콜 110) 상담사가 됐다. 입사 당시 원청은 국민권익위원회이지만 실질적인 관리감독은 외주업체를 통해서 이뤄졌고, 그 관리란 쉽게 말해 상담사들끼리 경쟁을 부추겨 콜을 가능한 많이 받게 만들고 콜수에 따라 임금이 달라지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정부민원안내콜센터는 여느 때보다 강도 높은 감정노동과 폭발적인 업무량에 시달렸다. 원청인 국민권익위원회의 무시무시한 침묵을 등에 업은 현장 관리자들은 비정규직 상담사들의 고통과 신음은 외면하고 평가기준을 끌어올리는 만행을 저지르면서 상담사들을 사지로 내몰았다. 참다못한 상담사들이 헤드셋을 벗어던지고 거리로 나가서 목청이 터져라 처우개선을 외쳤지만 달라진 건 없었고, 지켜지지 않은 약속만 남아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은 한식구가 되면 상담사들의 처우개선에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2021년 국민콜 110 상담사들은 공무직으로 전환되면서 권익위 가족이 됐다.

2021년도 이제 두 달 남았다. 그사이 상담사들의 처우는 과연 약속대로 개선됐을까? 권익위 소속이 되면 우리가 제공하는 상담 서비스는 공공성을 회복하고 사회적 가치를 증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권익위 담당자의 무관심과 방조 속에서 여분의 관리자들은 책임을 지는 대신 상담사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기존과 다름없이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점심시간을 1분만 초과해도 감점, 휴식시간을 1분만 초과해도 감점, 마이너스 처리된 점수만큼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설정된 임금을 깎는 방식으로 말이다.

지난 25일 KT 통신서비스 장애가 발생하자 전화와 인터넷 고장문의 전화가 인입됐다. 일부관리자는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며 콜수를 늘리라고 피드백했다.

어디 그뿐이랴. 행정부와 관련된 민원 상담의 범위는 그야말로 광범위한데 업무의 정확도는 정부24나 위택스 관련 내용으로만 평가한다. 투(to) 부정사만 달달달 외운다고 영어를 마스터했다고 보기 어려운 것처럼 극히 제한적인 업무 평가가 서비스 전반의 품질 향상을 보증하지 않음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이런 시대착오적인 평가 방식이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공공성을 찾아오고, 상담사의 숙련도와 전문성을 높여줄 수 있을까? 비인격적인 대우를 감내해야 손에 쥘 수 있는 몇 푼의 돈은 보상일까 아니면 모욕일까? 결국 콜센터의 성과평가는 어디에도 닿지 않고 누구도 이용하지 못할 다리를 세우겠다고 헛심만 쓰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이유로 권익위 공무직 분회에서 성과평가 폐지를 주장했을 때, 권익위 담당자는 출근해서 전화를 한 콜도 안 받는 사람에게도 월급을 주란 말이냐고 펄쩍 뛰었다. 과연 공공기관 콜센터 상담사들은 공무직으로 전환하면 근무를 태만하게 하고, 성과평가를 하지 않으면 전화를 한 통도 받지 않으려고 몸부림칠까?

사실 올해 상반기에는 성과평가를 받지 않고 모두가 균등하게 임금을 받았다. 이 시기를 성과평가를 받을 때와 비교해 보니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고 오히려 상담 불만에 대한 2차 민원 접수 건수는 줄었다. 그럼에도 권익위는 성과급 균등 지급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하반기부터 다시 성과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새로운 성과평가는 이미 농익은 업무숙련도와 최적화된 효율을 가지고 업무를 하는 상담사들에게 인위적으로 스트레스와 긴장감을 유발하는 등 명백하게 업무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강요된, 무의미한 의례는 강도 높은 감정노동을 하는 상담사를 대상으로 한 2차 가해로 볼 수 있다. 이를 계속 방관하면 어떻게 될까? 상담사들의 건강은 악화되고 자존감은 떨어지고, 업무의 전문성 대신 경직성이 강화되면서 업무의 유연성과 상상력은 와해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정부민원안내콜센터와 같은 공공부문 콜센터 상담사들은 국민의 생명·안전과 사회 기능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필수노동자다. 우리가 하는 일의 공공성이나 사회적 가치가 경제적 가치와 비례하지 않는 점은 애석하지만, 그렇다고 벌을 주는 형식은 곤란하다.

공공부문 콜센터를 보유한 기관의 담당자들은 조직의 행위가 감성 지능 높은 콜센터 상담사들에게 감정의 역할로 작동하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조직이 감성 지능을 탑재하게 된다면 감정의 중요성과 함께 공공부문 콜센터에서 제공하고 있는 노동이 무엇과 비교할 수 없고 환원 불가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제 콜센터 상담사들의 노동가치를 폄훼하고 우리의 노동을 평가나 통제·감시 대상으로만 간주하는 그 무의미한 무례는 그만 거두고, 서비스 공공성을 회복하고 사회적 가치를 증진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해 나가는 그 출발선에 노사가 어깨를 맞대고 함께 서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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