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총과 더불어민주당 노동존중실천 국회의원단 주최로 28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에서 열린 공공기관 거버넌스 혁신 국회 토론회에서 참석 의원들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주영, 우원식, 윤후덕 의원. <정기훈 기자>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기획재정부에서 국무총리실 산하로 이관하고 산하에 공공기관보수위원회를 둔다.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공공서비스 운영평가로 전환한다.”

금융·공공 노동자들이 차기 정부 공공부문 거버넌스 청사진을 제시했다. 한국노총공공부문노조협의회(한공노협)는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국노총회관에서 공공기관 거버넌스 혁신 토론회를 열어 공공기관 운영 방식을 수익성·효율성에서 공익성·민주성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거버넌스 체계를 일신하자고 제안했다. 예산편성 기능을 청와대와 국무총리실로 옮기는 방식으로 기획재정부 폐지하자는 요구까지 나왔다. 이날 토론회는 한국노총과 한국노총 내 금융·공공 산별노조·연맹인 공공노련·공공연맹·금융노조가 참여한 한공노협, 윤후덕·김영진·우원식·박홍근·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더불어민주당 전국노동위원회, 노동존중실천 국회의원단이 함께 개최했다.

기재부, 취약지역 공공서비스 제공 걸림돌

거버넌스 개편의 핵심은 기재부 통제를 걷어 내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공공기관 거버넌스는 기재부의 전면적 통제와 다름 아니다. 기재부가 인력·예산·운영을 비롯해 평가권한을 장악하고 공공기관의 수익성·효율성만 강조한다는 진단이다.

이런 방식은 취약지역에 필요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공공부문의 역설이 발생한다. 수익자 부담원칙에 따라 낙도·오지의 주민에게 전기·상수도를 공급할 때 소요되는 비용이 커 시행하지 못하게 되는 문제다. 경쟁입찰에서 최저가 입찰을 고수해 비용을 낮추면서 종국에는 서비스의 질마저 하락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공공부문 노동자에게는 현실과 관련된 문제다. 최근 고용노동부는 노동계와 업무상 질병 처리기간 단축에 합의했지만 정작 기재부가 관련 공공기관인 근로복지공단에 사업인력을 배정하지 않았다. 공공기관은 공무원이 아님에도 공무원 보수인상률이 사실상의 상한선으로 작용한다. 성과급을 당근으로 한 공공기관 경영평가 때문에 노사 분규조차 쉬쉬하는 곳이 발생할 정도다. 노동계는 “공공기관에는 노사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공공기관을 ‘오용’하는 사례도 있다. 이명박 정부의 이른바 ‘자원외교’에 동원돼 지금까지도 상처를 회복하지 못한 한국석유공사 같은 기관이 대표적이다. 노동자들이 기재부에서 독립을 외치는 까닭이다.

공공기관운영위 강화하고 노동계·시민단체 참여 보장

고려할 점은 세 가지다. 발제를 맡은 이종선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장은 “중앙정부의 어느 부처가 공공기관을 관리할 것인지, 공공기관운영위를 정부조직 중 어디에 소속시킬 것인지, 공공기관 내부 지배구조는 어떤 제도로 운영할 것인지가 쟁점”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의 청사진은 국무총리실 산하 독립행정위원회로 공공기관운영위를 두는 것이다. 형식적인 심의·의결에 그치는 현재의 기능을 강화해 공공기관 인사 검증기능을 부여하고 산하에 사무국, 공공기관보수위, 공공기관 평가센터 같은 조직을 신설하자는 안이다. ‘무늬만 개선’에 그치지 않도록 외부인사 참여도 확대한다. 이 부소장은 “노동계 및 시민사회단체 대표가 민간위원으로 참여해도록 과련 법 개정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방식으로 공공기관운영위를 실질적인 공공기관 운영 거버넌스의 중심으로 삼자는 게 뼈대다.

이미 정부도 개편 필요성을 인정한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아예 공공서비스 운영평가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김성희 정책연구소 이음 이사는 “현행 평가는 예산운영과 경영평가를 기재부가 독점해 사회적 가치를 표방한 것과 달리 재무적 효율성과 예산부처의 공공기관 관리 독점 기능에 매몰됐다”며 “수차례에 걸쳐 고쳐 쓰고 있지만 경영 효율성 중심 평가라는 기본 틀은 불변”이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기관의 특성을 반영하지 않는 평가지표체계와 평가를 통한 기관 통제를 해소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대안은 공공서비스 운영 적절성을 평가할 수 있도록 전환하는 것이다. 김성희 이사는 “각 기관의 설립 목적에 맞는 부가가치 향상을 잣대로 평가해야 한다”며 ‘경영 효율성은 시장성이 높은 공기업에 일부 제한적으로 적용하고, 성과급 보상과 연동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가 주기도 연단위 평가에서 2~3년 중기평가로 전환하고, 운영 개선 협의와 컨설팅 방식 평가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금결정구조는 노동자의 수용성을 높일 수 있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남태섭 공공노련 정책기획실장은 “현행 임금결정구조는 총액인건비 제도 아래 기관별 임금교섭은 분배협상 이상의 의미가 없다”며 “정부가 임금인상률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다 보니 임금체계를 바꿔도 개인 인건비에 변동이 크지 않아 노동자의 수용성이 낮다”고 분석했다. 최근 문재인 정부가 시도한 직무급제가 노동자의 임금에 큰 변동을 주지 않는 가운데 노동자 스스로의 임금결정 권리를 배제하고 있어 성공하지 못했다는 진단이다.

이런 구조를 바꾸려면 노동자가 임금결정체계에 직접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를 위한 거버넌스가 공공기관보수위다. 노정과 민간·전문가 등이 참여한 가운데 공공기관보수위가 사실상의 노정 중앙교섭체계를 이루고 340곳에 달하는 공공기관을 산업과 유형별로 재분류해 일종의 단체교섭 체계를 이루자는 제안이다.

노동계는 이런 제안을 장기적으로 차기 정부의 공공부문 개혁 정책으로 삼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코로나19 같은 예외상황 관리, 공공안전과 공익보호 필요성이 높아진 가운데 이에 상응하는 거버넌스와 정책결정 과정 변화가 요청된다”며 “차기 정부는 코로나19 경험을 바탕으로 공공의 올바른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지속가능한 공공모델을 마련해야 할 역사적 책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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