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문제를 이해하려면 실제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영원불변하는 보편적 법칙이나 가치가 없음에도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도덕적·종교적 신념을 갖고 북한문제를 다뤄서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21세기 들어 미국이 침략전쟁의 이유로 내세우는 ‘자유’가 그렇고, ‘민주주의’와 ‘인권’이 그렇다. 노동문제를 봐도 그렇다. 노동자의 자유와 자본가의 자유가 다르고, 노동자의 민주주의와 자본가의 민주주의가 다르다. 노동자의 인권은 자본가의 인권과 충돌한다.

국제사회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자유와 미국의 자유가 다르고, 한국의 민주주의와 미국의 민주주의가 다르다. 한국의 인권과 미국의 인권도 마찬가지다. 역사 속에서 형성돼 현실에 존재하는 이러한 ‘다름들(differences)’을 인정하지 않고 중세의 십자군처럼 도덕적·종교적 열정에 심취해 세상을 지배하는 보편적 가치가 존재하며 그것이 지상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믿을 때 인종학살을 동반한 전쟁과 내전이 일어났다. 21세기 들어 이라크·아프가니스탄·시리아·리비아에서 목도한 바다.

반갑게도 도덕적·종교적 신념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 북미관계와 북핵문제를 분석한 글이 10월22일자 미국의 정치매체 ‘내셔널 인터러스트(nationalinterest.org)에 실렸다. 필자는 외교통상부 장관과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를 지낸 윤영관이다. 그의 글에 근거해 지금의 북핵문제를 초래하기까지 지난 30년 동안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자 북한은 경제위기와 재래식 군사력의 약화, 그리고 외교적 고립이라는 3중고에 처하게 됐다. 난관을 타개하고자 북한은 1992년 1월 미국과 고위급 회담을 갖고 양국관계를 개선하고 외교관계 수립을 원한다는 김일성의 의지를 전했다. 미국은 단번에 거절했다. 그 대응으로 북한은 체제 생존을 위해 핵무기 개발에 관심을 돌렸다.

1994년 10월 북미는 양국의 정치적 관계를 개선하는 대신 영변 핵시설을 동결한다는 제네바합의에 서명했다. 하지만 미국 내 반대파들과 의회의 저항으로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다. 2000년 10월 북한의 조명록 차수가 워싱턴을 방문해 빌 클린턴을 만났고, 매들린 울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을 만났다. 적대관계를 끝낸다는 합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그해 11월 대선에서 당선된 조지 부시는 이를 일방적으로 파기했고, 2002년 1월 연두교서에 북한·이란·이라크를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선언했다.

북핵문제를 다자간 협력으로 해결하기 위해 2003년 6자 회담이 열렸다. 미국은 회담장을 주고받는 협상 수단이 아니라 북한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이용했다. 2005년 9월19일 어렵사리 합의가 이뤄졌으나, 미국 내 강경파들이 북한에 금융제재를 가함으로써 물거품이 됐다. 그 결과는 2006년 10월 북한의 첫 핵무기 시험이었다. 이후 북한은 핵무기 능력을 고도화했고, 여기에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능력까지 겸비하게 됐다.

2009년 1월 등장한 오바마 정권은 북한과의 협상을 거부하고 ‘전략적 인내’로 일관하면서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를 추진했다. 미국의 지배층은 북한을 넘어 중국과 러시아를 타격하기 위한 무력 시스템 구축에 속도를 높였다. 미국의 강요로 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와 한·미·일 군사동맹 구축을 위한 정지작업으로 이뤄진 한·일 위안부 합의는 이러한 글로벌 군사전략의 일환이었다.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전략은 트럼프 정권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북미정상회담까지 이뤄졌으나 북한에 대한 군사적·경제적·외교적 압력과 제재는 오히려 강화됐다. “도덕주의에 기반한 강압적 접근법(moralistic coercion approach)”은 요지부동이었다. 미국을 자유와 민주주의와 인권이 충만한 ‘선’으로 칭송하고, 북한을 자유와 민주주의와 인권이 압살당한 ‘악’으로 낙인 찍는 구태의연한 인식은 변하지 않았다. 지난 30년 동안 미국에서 내로라 하는 싱크탱크의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은 곧 망한다”는 희망사항(wishful thinking)에 기초한 보고서를 남발했다. 미국의 싱크탱크는 ‘싱크(think)’가 아니라 ‘탱크(tank)’가 해법이라고 우겼다.

구도를 이렇게 잡으면 “행동 대 행동(action-reaction)”과 “주고받기(give and take)”에 기초한 외교적 교섭의 성공은 기대하기 어렵다. 체제보장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가진 북한의 행동(action)에 대한 미국의 일관된 대응(consistent reaction)은 체제보장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오늘날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에 핵폭탄을 실어 미국의 주요 도시들을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실질적 핵무기 보유국이 됐다.

윤영관 교수는 대국인 미국이 소국인 북한체제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협상의 첫 단추라고 본다.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 때처럼 미국이 상대방(소련)의 인식을 제대로 알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도덕주의적 접근법을 강요하는 매파의 압박 속에서도 케네디 대통령은 현실주의적 접근법을 지지했다. 이로써 3차 대전으로 치달을 뻔했던 핵 위기는 평화롭게 해결될 수 있었다.

세상을 선과 악으로는 나누는 도덕적·종교적 접근법은 “정의롭고 옳은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미국의 이익에 대한 계산을 철저하게 차가운 머리로 할 때”에야 “근본적이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윤 교수의 조언이다.

북핵문제 해법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지난 30년 동안 이뤄진 여러 합의들을 이행하기 위해 미국이 행동에 나설 때 문제를 풀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남한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윤효원 객원기자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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