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아빠는 수십년간 집 짓는 현장에서 미장 일을 했는데, 정작 가족 살 집은 얼른 마련하지 못했다. 언젠가 살던 반지하 집엔 여름철 홍수 때면 물이 넘쳐 비상이었는데, 방 한 칸을 빌려 여섯 식구가 지내던 때보다는 훨씬 나았다. 아빠 등엔 소금꽃이 사철 피어 시큼한 향기가 집 안에 가득했고, 주야 맞교대 공장 일을 마치고 돌아온 어머니 손가락은 나날이 굵고 거칠었다. 그토록 바라던 새로 지은 아파트에 들어가던 날엔 비가 많이 내렸다. 복이라고 여겼다. 이사 다닐 걱정 없이 늙어 갈 일만 남았다 했는데, 장성한 자식들 집 마련 걱정에 두 분은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로또 번호 추첨하는 날이면, 집 한 채씩 사주겠다고 큰 소리로 웃던 아빠는 그 밤 소주잔 비우며 보태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내게 말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날이 오면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나는 아빠를 닦달했다. 차 한 대도 괜찮다고 했다. 비닐하우스 난로 속에 로또 종이를 던져 넣었다. 50억 클럽이니 뭐니 하며 요즘 드러난 부동산 개발 이익 규모를 듣자니 거참. 사람들은 아득한 로또의 꿈을 꾸며 1등 당첨자 나왔다는 가게를 찾는다. 그저 일하다 죽거나 다치지 않기를 바란다. 오늘 하루 무사히 퇴근하는 걸 구호 삼아 외친다. 기득권과 온갖 고급 정보를 틀어쥔 사람들의 일확천금 욕심에, 일하는 사람의 제집 마련 꿈이 멀고 멀다. 철골조 세우는 건설노동자 뒤편으로 억 소리, 악 소리 난다는 아파트가 멀다. 흐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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