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장애인의 노동은 평가절하되는가. 이 물음에서 시작한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의 장애인노동권담론모임이 3년간의 연구와 조사를 이어 가고 있다. 올해는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으로 연구와 조사를 했다. 장애인노동권을 고민하는 담론모임 활동가들은 생산성 중심 평가의 한계를 넘어 담론을 재구성하자고 제안한다. 이들의 주장을 5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고태은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운영위원
고태은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운영위원

우리 사회에서는 장애인 노동자의 존재가 지워진다. 주변에 노동하는 장애인이 없다면, 아마 진짜로 없다기보다는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그들의 존재가 완전 유리됐거나, 그들의 ‘노동’은 ‘진짜 노동’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당신의 렌즈에 가려졌을 확률이 높다. 나는 장애인 노동자의 노동을 지우는 질문들을 몇 가지 가져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장애인 노동자가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이 받는 건 불공정하지 않아?

이 질문은 생산성이 떨어지는 장애인 노동자들에게 비장애인과 동일한 임금을 주는 게 납득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임금은 생산성을 기준으로만 하지 않는다. 같은 자동차공장에서 같은 라인에 일하는 두 사람을 떠올려 보자. 한 사람은 파견노동자로서 비정규 노동자고, 한 사람은 직접고용된 정규직 노동자다. 두 사람이 하는 일(직무)이 같을 수는 있지만, 두 사람의 임금수준은 다를 것이다. 임금수준뿐이겠는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고용계약상 명칭과 그에 따른 교섭권이나 복지 등의 권리 측면에서도 매우 다른 처우를 받을 것이고 이 사람들이 퇴직 이후 받게 될 퇴직금이나 연금과 같이 사회보장 차원에서도 수준이 매우 다를 것이다. 노동자 집단 안에서의 생산성 차이는 노동자 간 임금 차이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

우리의 임금을 결정하는 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기준이 또 있다. 바로 최저임금 혹은 생활임금 보장이다. 임금과 생산성의 관계가 기여에 따른 보상의 논리였다면, 이 기준은 노동자들의 삶을 보장하는 권리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매년 최저임금위원회의 논의 내용에 따라 결정되는 최저임금은 아주 큰 사회적 통증을 유발하는데 이는 최저임금이 가지는 중요성 때문일 것이다. 노동자들, 특히 불안정한 노동시장에 머무는 노동자일수록 최저임금 갱신에 따라 딱 최저임금에 맞는 임금 상승률을 경험하게 된다. 이들에게 최저임금은 생존과 직결된 것으로, 삶을 이어 나갈 수 있는 조건이다. 법적으로 최저임금제도의 목적은 ‘노동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으로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규정돼 있는데, 이 법은 노동하는 노동자면 누구나 일정 수준 이상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야 비로소 법의 목적이 달성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최저임금법은 ‘최저임금 적용제외’ 조항을 통해 수많은 장애인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주도록 ‘허락’한다. 실제로 2011년 보호작업장 내 장애인 노동자들에 관한 판결은 이들의 근로자 지위를 확인함과 동시에, 장애인이므로 최저임금 적용을 제외해도 된다고 판시했다. 장애인 노동자에게 ‘근로자’임을 확인하는 과정은 장애인 노동자들을 더욱 열악한 위치로 떨어뜨린다. 또한 이 근간이 되는 작업능력평가는 자신의 노동을 평가하고, 언제든 독립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임금체계에서 이들을 솎아 내려는 키질 같다. 장애인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법은 어쩌면 ‘열등한 시민’임을 상기해 주는 이상한 법인 것이다.

최저임금 적용제외는 장애인 노동자에게만 불이익을 가져오는가?

이 질문에 짧게 답변해 보자면, 그렇지 않다. 이 법은 적용제외 조항을 둠으로써 법에 적용받는 모든 시민은 노동자의 삶의 수준을 보장하는 권리보장적 제도인 최저임금제도가 아니라, 누구든지 최저임금을 보장받지 않을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불완전한 권리보장법이 된다.

사회안전망이라고 하는 ‘망(net)’은 정말로 그물망 같아서 어느 한 곳에 커다란 구멍을 내면 누구든 그곳으로 떨어질 수 있다. 뚫린 망을 그대로 쓰는 것은 결국 망을 설치한 이유를 상실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한 망은 원래부터 망에서 떨어질 리 없는 사람들을 보장하는 데 그치고, 그 망으로 보호받아야 했을 수많은 이들이 당장은 아니더라도 생애의 언젠가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게 한다. 그것만으로도 사회보장제도가, 노동권보장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가 아니라고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 중증장애인의 최저임금 적용제외 조항의 폐지 운동은 결국 우리 사회의 구멍 난 안전망의 구멍을 메우는 중요한 일을 이들에게 빚지고 있는 것이다. 비장애인 노동자들 또한 결국 이에 빚을 지고 더욱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게 된다고 생각하면 비단 장애인 노동자들만의 의제는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결국 비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시민의 일이다.

장애인 노동자들은 왜 노동하려 할까?

장애인 노동자들의 노동경험을 들여다보면 ‘마이너스 임금’과 같이 일을 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차비와 식비, 기타 생활비 등이 오히려 보호작업장에서 받는 임금을 훨씬 웃도는 상황이 일반적으로 발생하곤 한다. 이를 보면서 차라리 장애인수당이나 연금을 받는 게 낫지 왜 굳이 일하려 하냐고 묻는 비장애인들이 있다면 ‘노동의 가치’를 이야기해야 할 거 같다. 고리타분하게 ‘노동이 신성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중증장애인 노동자들이 노동으로 만들어 가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장애인 노동자들의 노동이 만드는 것은 자기 확장의 힘이다. 노동은 장애인 노동자들의 사회적 관계와 자기 자신을 확장할 수 있는 삶의 중요한 요소다. 그리고 이를 통해 확보하는 물질적·사회적 관계는 결국 장애인 노동자의 삶에서 자신이 자신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자원이 된다. 노동은 ‘임금을 버는 것’ 이외에도 개인의 삶에서 세계를 경험하는 큰 통로가 된다. 장애인 노동자들의 노동경험은 이러한 확장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의 성취는 시설 안에 고립됐던 장애인 노동자들이 사회 안에서 연결되고, 세계의 한 구성원으로 존재함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심리적·사회적 변화도 내포하고 있다.

장애인 노동자의 노동은 한 사람 개인의 변화만을 가져오지 않는다. 장애인 노동자의 노동과 이를 수용하는 노동의 변화는 사회 안에서 의미 있는 변화들을 이끌어 내고 있다. 특히 중증장애인 노동자들의 권리중심형 일자리 경험은 근로지원인과 장애에 대한 감수성 있는 일터가 장애인 노동자들의 노동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기계의 속도에 맞춰서 소비자 주문 이후 바삐 돌아가는 타이머에 맞춰서 생산에 집중했지만 장애인 노동자들의 경험은 ‘노동하는 사람’에 집중하는 일터를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이를 마주하는 동료들과 직장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실마리도 준다.

중증장애인이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이야기해 왔던 것은, 그리고 장애인들의 노동경험이 고통스러웠던 것은 비장애인 중심의 생산성 굴레 안에 가장 생산성 낮은 노동을 보호작업장에 할당해 왔기 때문이 아닐까. 이들에게 더 많은 장애지원이 있다면, 그리고 이 노하우가 쌓여 장애인 노동자들이 쌓는 공로가 사회적으로 발휘된다면 어떠한 사회가 될까? 장애인노동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라면 진정 궁금해질 질문일 것이다.

노동시장 변화를 위한 여러 논의가 필요한 시기에 도달했다. 4차 산업혁명, 정의로운 전환 같은 말들은 기존과 다른 노동의 미래가 올 것이라 이야기한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인식 속의 노동은 과거 먹고살기 위해서 했던 것 그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래서 마치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아무도 가치 있는 일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그 언제보다도 풍요로운 사회임에도 여전히 인류는 가난과 불평등에 허덕인다. 나는, 우리가 이 세계를 제대로 바꾸기 위해서 ‘다른 분배, 다른 노동’을 상상해 볼 시기에 도달했다고 주장하고 싶다. 장애인 노동자들이 공유하는 노동은 비장애인중심성이나 여전히 생산성 중심의 담론을 벗어나지 못하는 세계에 균열을 내는 사회적인 가치를 함의하고 있다. 사회적 가치라는 의미는 결국 많은 이들이 주목할 때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뜻이다. 결국 당신의 합류 또한 이들 노동의 가치를 높이는 데에 한몫할 것이다. 함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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