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하경 변호사(법률사무소 휴먼)

학교에는 불량학생·보통학생·모범학생이 섞여 있다. 제 이익과 편의를 위해 동료학생을 괴롭히는 학생은 불량학생이다. 선생님은 불량학생의 불량한 행동을 발견한 경우 꾸짖고 교화할 의무가 있다. 통상의 선생님들은 그렇게 한다. 학교의 규칙과 사회의 도덕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학생들이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서는 노동조합을 이렇게 정의한다. “근로자가 주체가 돼 자주적으로 단결해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단체를 말한다.” 이에 우리 법원은 노동조합이 자주성과 독립성을 갖추지 못하면 노동조합이 아니라고 판결한다. 이를테면 이른바 ‘어용노조’라고 해 사용자의 수족 또는 회사의 하부기관에 불과한 노동조합이 이에 해당한다. 법원은 구체적으로 ‘노동조합설립 무효 확인의 청구’를 인용하는 방식으로 해당 노동조합의 존재자체를 부정한다. 자격을 박탈해도 될 정도로 ‘불량노동조합’이라는 것이다. 학생으로 치면 퇴학이다.

지난 8월26일 법원은 삼성에버랜드에 설립된 한국노총 소속 ‘에버랜드노동조합’ 설립이 무효라고 판결했다. 그 근거로 ① 노조가 삼성의 비노조 경영 방침을 유지하고 향후 자생적 노조가 설립될 경우 그 활동을 방해할 목적으로 사용자의 전적인 계획과 주도하에 설립된 점 ② 회사가 자체 검증을 거쳐 노조 위원장 등 노조원을 선정한 점 ③ 노조설립 직후 회사와 2011년 임금 및 단체협약을 체결한 것이 진성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봉쇄하기 위한 것이었던 점 등을 들었다. 재판부는 “피고 노조는 그 조직이나 운영을 지배하려는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의해 설립된 것으로서 헌법 및 노동조합법이 규정한 실질적 요건을 갖추지 못해 그 설립이 무효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했다.

에버랜드노동조합은 2011년 7월 옛 삼성 미래전략실(미전실) 인사지원파트와 에버랜드 인사지원실이 주축이 돼 설립한 어용노조다. 당시 삼성은 진성노조가 설립될 경우를 대비해 ‘진성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한 어용노조를 만든다’는 취지의 ‘그룹 노사 전략’을 갖고 있었다. 삼성은 2011년 노동자들이 민주적인 노조설립을 추진하자 복수노조가 허용된 2011년 7월 직전에 미전실 주도하에 에버랜드 인사·노무 담당자들을 중심으로 비상상황실을 설립해 조직적인 노조파괴 공작 차원에서 어용노조를 설립했다. 그 후 진성노조인 금속노조 삼성지회 대신 어용노조가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등 회사의 의도대로 어용노조가 형식적인 노동자 대표 역할을 해왔다. 어용노조는 진성노조가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없도록 방해했다. 삼성은 진성노조 간부들을 부당하게 징계하고 해고했다. 이 징계 및 해고는 모두 법원에서 부당함을 인정해 무효화한 바 있다.

진성노조 파괴계획을 세우고 실행한 삼성그룹 간부들은 구속기소 됐고 1·2심 모두 삼성전자 부사장 등에 대해 이례적으로 실형을 선고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해 5월 삼성의 노조파괴 역사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어용노조의 1·2기 위원장도 삼성과 공동정범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한국노총의 입장표명은 없다. 어용노조에 대한 한국노총의 조사나 징계가 없다.

한국노총은 역사가 오래된 훌륭한 조직이다. 노동법과 제도개선, 노동인권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조직이다. 소속 노동조합은 대부분 건강하고 자주적이다. 그러나 일부 ‘불량노동조합’ 사건에 대해 의견표명을 하지 않는 점이 무척 아쉽다. 불량학생의 불량행위를 발견하고도 묵인하는 선생과 학교의 태도는 불량학생에게 힘을 준다. 불량학생 지망생이 자라난다. 보통의 학생들은 학교를 냉소하고 교과서를 집어던지며 절망한다. 이렇게 되면 그것은 이제 학교가 아니게 된다.

“피고 노동조합 설립은 무효임을 확인한다.” 올해 8월26일 삼성 노동자들이 방청석에 자리했던 수원지법 법정에 울려 퍼진 판결주문을 매섭게 기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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