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국가 기간산업으로 자리한 정보통신기술(ICT)산업의 위상에 비해 ICT 노동자들은 그에 걸맞은 목소리를 내지 못했습니다. 이러는 사이 필수노동자인 IT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이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 ICT 노동자가 결집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전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최장복(56·사진) IT사무서비스노련 위원장이 이같이 강조했다. 지난 7월1일 위원장에 취임한 최 위원장은 최근 연맹에 여성위원장을 신설하고 기존 통일위원장과 정치위원장 자리에 힘을 실어 주는 등 내부조직을 강화하는 작업을 했다. 그간 대외적 활동이 두드러지지 않았던 연맹의 위상을 끌어올리기 위한 정지작업이다.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ICT노동자 목소리를 정부쪽에 전달하고 사회적 대화기구에도 관련 위원회를 신설할 수 있도록 역량을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대선에서도 ICT 노동자의 정치적 의사표현을 할 작정이다. 잠잠했던 연맹을 깨우는 데 한창인 최장복 위원장을 지난 6일 오전 여의도 한국노총회관 연맹 사무실에서 만나 취임 100일의 소회를 들었다. 그는 KT노조 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회원조합 간, 연맹 간 연대활동 넓힐 것”

- 취임 100일이 지났는데, 소회가 있다면.
“우선 아쉽다. 코로나19로 인한 제약이 크다. 현안논의나 정책토론회 같은 모임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나. 마음 놓고 만날 수 없으니 현장과의 논의에 한계가 있다. 연맹이 그간 대외적 활동이 왕성하지 않다 보니 역량을 결집하기 위해 회원조합 간 연대활동이 필요하다. KT·SK텔레콤·LG유플러스 같은 통신 3사 노조 외에 규모가 크지 않거나 새로 만들어진 ICT노조와 연대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정부에 전달해야 한다. 그런데 만나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더 가만히 있지 않으려고 하고, 대표자회의와 화상회의를 비롯해 소모임을 만들어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 그간 연맹의 대외역량이 두드러지진 않았다.
“맞다. 연맹이 한국노총 내에서도 규모가 작지 않고 각각의 회원조합이 결코 투쟁성이 약한 조직도 아닌데 연맹 이름으로 뭉쳐서 활동하는 점에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래서 앞으로는 투쟁성을 갖고 선명한 활동을 하려고 한다. ICT 노동자 문제는 물론이고 총연맹 내 26개 연맹과 자주 만나면서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대정부투쟁 같은 부문에도 연대할 작정이다. 통신 3사의 경쟁은 치열하지만 같은 ICT 노동자가 반목할 이유는 없지 않나. 같은 노동자로서 임금과 처우개선에 동참하고 다른 부문과도 함께하면서 대외적인 역량을 강화하려고 한다.”

- 사회적 대화기구에 ICT분과위원회를 요구하는 것도 유사한 맥락인가.
“그렇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내에 ICT분과위원회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목소리가 너무 작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ICT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가. 과거 KT 아현국사 화재사건 때 경험하지 않았나. ICT는 이미 국가 기간산업이다. 그런 기간산업 노동자들의 노동 문제를 이야기할 공간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ICT기업은 주로 대규모 사업장이 아니다. 소프트웨어에 집중돼 큰 사업장이 없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가 연대하지 않고 각자도생하는 것은 어렵다. 서로 연대하면서 ICT위원회 같은 공간을 마련해 정책과 노동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ICT는 사회유지 필수업무, 정책결정 참여해야”

- 설치기사 같은 ICT 노동자 안전 문제도 의제가 될 수 있나.
“물론이다. 회선 설치나 기기점검 현장방문 노동자는 우리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필수노동자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으로 소득이 줄고 실업 위기를 겪고 방문시 감염 위험에 노출되거나 근무여건이 더 나빠지는 이들이 많다. 정부가 이들을 위한 제도적 노력을 하고 있지만 한시적 지원이 아닌 지원의 실효를 높이는 노력을 수반해야 한다. 이제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는 일상화됐다. ICT 노동자의 업무를 사회유지를 위한 일상업무로 파악하고 노동자가 직접 관련 논의기구에 참여해 입장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노동자 참여가 절실하다. 연맹 차원에서 이런 부분에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 ICT산업 구조조정에 따른 노동자 피해는 어떤가.
“KT파워텔이 매각될 때 논란이 컸다. 결과적으로 초반 우려와 달리 잘 마무리됐지만 매각 진행에 앞서 노동자와 먼저 대화를 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이런 구조조정은 회원조합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연맹은 노동자 배려 없는 일방적 매각에 반대하고, 투명한 매각과 고용보장·근로조건 유지에 대한 공개합의를 요구할 것이다. 특히 통신업계 외에도 ICT업계에는 클라우드 같은 소프트웨어 스타트업도 다수 포진해 있다. 이들은 규모가 크지 않아 사용자쪽과 관계설정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 임금피크제를 매우 이르게 적용하고 교섭을 제대로 하지 않는 곳도 있다. 이런 곳에 대해서도 교섭권을 위임받거나 하는 방식으로 처우개선과 노동자 권익보호에 최선을 다하겠다.”

“ICT 아는 대통령 위해 지지선언 검토하겠다”

-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ICT 노동자들 의제도 부각할 기회다.
“중요한 시기다. 앞서 말한 것처럼 ICT산업은 국내 기간산업이다. 이런 비중과 위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 ICT가 국민의 복지와 삶의 질 향상, 다양한 사회문제 해결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ICT 공약을 내놓을 수 있다. 우리나라가 세계적 ICT 경쟁력을 확보한 건 정보화 시대를 예상하고 준비한 덕분이다. 앞으로는 더 새로운 기술이 지배하는 사회인 만큼 ICT의 개념을 제대로 가진 후보가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노조위원장으로서는 장밋빛 노동공약 말고 차근차근 노사정 대화를 이끌어 실질적 결과를 낼 대통령이 필요하다. 쉽게 내뱉는 말처럼 공허하지 않아야 한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 대선에서 ICT노동자의 목소리를 어떻게 대변할 계획인가.
“지지선언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벌써 지지요청이 많지만 우선 총연맹의 정책적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물론 무조건 따라간다는 것은 아니다. 숙고하고 회원조합과 논의해 입장이 다르다면 다른 목소리도 낼 수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연맹은 단 한 번도 대선이나 총선에서 지지를 결정한 적이 없다. 이번에는 어떻게든 목소리를 내 보려 한다. 누가 될지는 모른다. 우선 후보가 정해지면 ICT 노동자의 목소리와 요구를 캠프에 전달하는 것으로 시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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