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 이 버스에 타시는 분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새벽 5시반이면 직장인 강남의 빌딩에 출근해야 하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저는 이제 이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 당을 여러분과 함께 가져가고자 합니다.”(2012년 진보정의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 노회찬 의원)

노회찬 의원 3주기를 맞아 제작된 다큐멘터리 <노회찬6411>이 14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사 명필름과 시네마6411, 노회찬재단이 의기투합했다. 노동운동가에서 진보정치인까지, 방대하고도 입체적인 삶을 살았던 노회찬. 다큐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노회찬재단에서 <노회찬6411>을 연출한 민환기(53·사진) 감독을 만났다. 중앙대 영화학과 교수를 겸직하고 있는 민환기 감독은 <미스터 컴퍼니> <청춘 선거> 등 다수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미스터 컴퍼니>로 17회 부산국제영화제 다큐 경쟁부문 대상 비프메세나상을 수상했다.

“노회찬을 잘 몰랐기에 맡을 수 있었다”

- 어떻게 연출하게 됐나.
“지난해 7월 심재명 명필름 대표의 제안으로 맡게 됐다. 노회찬 의원을 잘 알았거나 팬이었다면 오히려 맡지 않았을 것이다. 그를 잘 몰랐기에 겁 없이 하게 된 듯하다. 저는 다큐에서 바라보는 인물에 상당히 거리를 둔다. 그래야 사람들이 어떻게 바뀌는지가 보인다. 노 의원을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노회찬6411>은 올해 5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선보였다. 당시 러닝타임이 3시간이었다. 그 뒤 추가 인터뷰를 거쳐 공식 개봉에서 2시간 분량으로 줄여 작품을 완성했다.

“지난해 8월부터 자료조사와 구성작업을 거쳐 12월부터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올해 5월 전주국제영화제까지는 시간이 촉박했어요. 전주국제영화제 버전을 먼저 만들자고 방향을 잡았죠. 3시간짜리로 분량이 많았어요. 진보정당운동과 관련한 한국현대사 이야기가 (개봉작보다) 많이 들어갔습니다.”

- <노회찬6411>에서는 유신반대운동을 하던 고교생에서 노동운동가를 거쳐 진보정치인이 된 노회찬의 일대기를 엮어 냈다. 어디에 초점을 맞췄나.
“(전주국제영화제 버전까지는) 진보정당운동과 관련한 한국현대사 맥락 속에서 노회찬을 설명하려고 했다. 그것이 제가 설명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었다. 그때까지도 노회찬의 사적인, 내면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불확실한 면이 있어서 역사 속 인물로 접근했다. 그러다 (전주 이후) 좀 더 내면의 이야기를 할 사람들을 추가로 인터뷰했다. 그중 중요한 사람이 노 의원 아내인 김지선 여사다. 역사 속 인물이지만 내면의 갈등과 고단함이 있었을 거다. 전주 버전에서 들어간 역사적 사건을 줄이고, 그 부분을 채워 나갔다.”

진보정당운동 줄기에 노회찬 내면 엮어

민 감독은 이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추가 인터뷰를 포함해 50명의 사람을 만났고, 200시간 분량의 인터뷰를 하면서 노회찬을 탐색했다.

“두 가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노회찬이란 사람에 대해, 그 사람이 인생을 바친 진보정당운동을 꼭 다루자고 했죠. 그분의 생각과 감정은 진보정당운동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겠다 싶었습니다. 진보정당운동에서 중요한 사건을 연대기 순으로 배열하고 그때 노회찬의 감정은 뭐였을까, 어떤 면을 드러낼까, 그렇게 접근했어요.”

3주기를 맞은 지금까지 노회찬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여전하다는 사실, 그것이 이 다큐멘터리의 출발점이다. 세대가 어떻든, 정치적 지향이 어떻든, 계급이 어떻든 각자 자신이 처한 상황과 자리에서 노회찬을 기억한다. 노동운동가 노회찬, 진보정당 산파 노회찬, 촌철살인 노회찬, 삼성 X파일 노회찬, 6411번 버스 노회찬…. 이런 노회찬을 영화에서 무엇을 통해 하나로 묶어 내고자 했을까.

“진보정당으로 권력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 이분이 가진 현실적인 꿈이었던 듯합니다. 그 꿈을 향해 달려 나간 노회찬. 그러나 2008년 민주노동당이 분당됐죠. 그 꿈이 꺾였다기보다는 그 꿈을 이루려는 방식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이후에도 부침을 계속 겪었습니다. 이분이 좋은, 착한 정치인이 아니라 그 (진보정당을 통한) 권력에 대한 의지가 남달랐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했습니다.”

“진보정당 통한 권력의지 확고했던 노회찬”

- 그런 권력에 대한 의지가 영화에서는 어떻게 표현됐나.
“권력을 갖고 싶은, 대통령이 되고 싶은 노회찬이 영화에서 1시간가량을 이끈다. (2012년 진보정의당 대표 수락연설에서) 6411번 버스가 나오는 장면이 역사적으로 노회찬이 가장 힘들었을 때였을 것이다.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다시 합친) 통합진보당이 또 깨지고, 진보정의당이 만들어지고. (진보정당이 권력을 잡으려고) 자기가 지금까지 해 왔던 방식을 회의하기보다 다시 또 질문하는 것 같다. 내가 무엇을 위해 진보정당운동을 했지? 앞으로 진보정당운동을 어떻게 해야 하지? 그 측면에서 6411번 버스 연설이 나온 것 같다. 어떤 역사적 국면에서 항상 초심으로 돌아가고, 항상 근본적으로 질문한다. 그 대답이 사회적 약자, 노동하는 사람들이 평등하게 사는 사회였던 것 같다.”

-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이 “눈물 쥐어짜기 신파조가 아닌 긍정적 메시지를 바란다”고 민 감독께 요청했다고 들었다.
“눈물을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눈물이 나더라. 사람마다 눈물 양은 다르니까.(하하) 이분이 고단함에도 자기의 꿈과, 그 꿈을 실현하는 방식을 한 번도 양보하지 않은 사람이란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봤다. 노회찬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울고, 과거를 회상하는 영화가 아니었으면 했다. 노회찬을 모르는 사람들이 봤으면 한다. 자세한 정치 지형을 이해하지 못해도 자기 꿈을 일관되게, 타협하지 않고 실천한 사람이다. 되게 고단한 방식으로. 그것을 이해하면 이 사람의 진가를 알게 되지 않을까. 조금 지루하더라도 연대기 순으로 해야 그 고단함, 일관성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사회적 약자·노동하는 사람이 평등한 사회 꿈꿔

- 본인의 작품이지만, <노회찬6411>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무엇인가.
“영화에서는 인터뷰하며 우는 이가 한 사람뿐이지만, 사실 많은 사람이 울었다. (노회찬의 친구나 지인 등) 중년의 남자들이 우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는 게 힘들면서도, 노회찬이 이해되더라. 어떤 사람이었는지. 노회찬의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모습을 그의 친구와 지인들의 눈물을 통해 볼 수 있었다.”

- 노 의원은 민주노동당 초창기 TV토론회에서 한국 사회 양극화, 서민의 어려운 삶을 짚으며 한국 정치판을 갈아야 한다고 일갈한다. 20년이 지난 지금 양극화는 더 심화하고 서민의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감독이 본 ‘노회찬 정신’은 무엇인가.
“인간은 다 똑같고, 똑같아지기 위해서는 정치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 길이 진보정당이라고. 그것이 노회찬의 뜻이 아니었을까. 사람이 가진 다양한 호기심과 욕구, 즐거움은 제대로 된 정치체제에서만 발현될 수 있지 않나.”

한 가지 에피소드. 노회찬 의원은 <매일노동뉴스> 초대 발행인이자 대표를 역임했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 부분은 나오지 않는다. 민 감독은 “원래는 매일노동뉴스 부분도 포함했지만 이야기 흐름 등 여러 사정으로 나중에 빠졌다”고 소개했다.

“한국 사회에서 보기 힘든 인물, 많이 봐 주길”

- <노회찬6411> 개봉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미래의 관객들에게 바라는 점은.
“2030세대, 젊은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한다. 한 개인에 관한 이야기지만, 한국 현대사의 어떤 맥락을 이야기한다. 젊은 사람들은 역사에서 뭔가를 배웠다는 것을 좋아하는 듯하다. 그런 측면에서도 이 영화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특이점을 가진 한 사람의 일대기를 볼 수 있다. 한국 사회가 갖고 있지 않은, 드문 인물상이다. 그런 점에서 볼 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앞으로 계획은.
“김대중 전 대통령 다큐를 만들 예정이다. 역시 명필름에서 만든다. 1·2편에 나눠 제작하는데, 저는 2편을 맡는다. 역사 안에서 그와 함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갈 예정이다. 제작사는 내년 상반기 안에 끝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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