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장애인의 노동은 평가절하되는가. 이 물음에서 시작한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의 장애인노동권담론모임이 3년간의 연구와 조사를 이어 가고 있다. 올해는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으로 연구와 조사를 했다. 장애인노동권을 고민하는 담론모임 활동가들은 생산성 중심 평가의 한계를 넘어 담론을 재구성하자고 제안한다. 이들의 주장을 5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 유진우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동료상담가
▲ 유진우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동료상담가

21세기 직업군은 다양하다. 다양한 직업은 비장애인들에게만 선택지가 열려 있다. 장애인은 직업을 선택할 수 없는 사회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장애인들은 단순노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비장애인 중심 구조에서 과연 장애인은 직업을 선택할 수 없을까.

내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는 지난해까지 목사가 되기 위해서 한신대 신학대학원에 재학했다. 열심히 공부하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목사라는 직업에 천천히 다가갔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교회에 청빙(청빙은 사기업에서 직원을 뽑는 과정을 말한다)이 돼 전도사를 해야 하는 커리큘럼이 있었다. 1년 동안 20곳 넘는 교회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전도사가 되지 못했다. 이유는 대부분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교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교회는 전도사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사실은 장애 때문에 교회에서 요구하는 노동을 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교회에서 요구하는 전도사의 노동은 크게 설교와 양육이다. 설교는 성서를 해석해서 신도에게 전하는 것이다. 양육은 신도가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까지만 해도 “어? 장애인이 할 수 있는 노동이잖아”라고 생각할 수 있다. 두 가지 노동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설교와 양육 이외에 따라오는 노동이 있다. 차량운행, 교회 보수, 심방(방문), 축구부 지도, 행정 등 무수히 많은 예외 노동이 따라온다. 나처럼 휠체어 탄 뇌병변 장애인은 차량운행, 축구부 지도, 교회 건물관리를 할 수 없다. 애초 이러한 노동을 전도사가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이런 예외적인 노동을 강제하면 장애인들은 배제될 수밖에 없다.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그들이 만들어 놓은 목사의 자격조건(노동) 때문이다. 목사는 설교와 양육만 하는 존재가 아닌 교회의 전반적인 분위기, 차량관리, 교회 건물보수, 심방, 축구부 지도 등 자신을 갈아 넣어야 하는 노동을 해야 하는 직업이었다. 즉 본인들 마음대로 전도사와 목사를 부려먹기 쉽게 목사의 노동 한계점을 지정해 놓았다.

나는 왜 목사가 되지 못하는 것일까. 화가 나서 한국기독교 장로회총회(기장) 헌법을 찾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기장 헌법에 이러한 규정이 명시돼 있었다. “신체가 건강하고 가정을 잘 돌볼 수 있는 자”다. 이는 장애인 목회자를 양성해서는 안 된다는 말과 똑같다. 내가 목회자가 되지 못한 이유도 기장 헌법에 명시돼 있어서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던 것이었다. 헌법에 있는 장애인 복지가 단순히 시혜적이었음을 판명해 주는 것이자 장애인이 정상 범주가 아니라며 ‘보이지 않는 벽’을 쳐서 막는 것이다.

교회에서 장애인을 받지 않는다면 장애인 신학생 혹은 목회자는 배제되고 만다. 이러한 노동 시스템을 전환해야 한다. 외국 교회들은 목회자 월급을 노회(교구의 목사와 장로 대표들이 모이는 모임으로, 기장 같은 경우는 1년에 두 번 정도 노회비를 걷는다)에서 준다고 한다. 즉 중앙단체에서 각 교회의 목회자들에게 월급을 주는 형식이다. 나는 이것이 ‘공공일자리’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노회라는 중앙집단이 월급을 관리해 주는 형식 말이다. 한국은 개교회(개별 교회)가 노회로 노회비를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이러한 시도를 하면 어떠한 일이 생길까. 회비로 장애인 사역자의 월급을 주는 것은 어떨까. 노회에서 장애인 사역자가 갈 수 있는 교회 리스트를 만들어 장애인 사역자에게 가고 싶은 교회를 선택하게 하고 노회에서 월급을 주는 형식이라면 장애에 대한 장벽을 깰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방식이라면 이동권이 보장되고, 노동권이 보장되는 교회가 만들어질 것이다. 장애인으로 시작한 교회의 ‘장애인 일자리’가 교계 내의 사역지를 찾지 못하는 이들에게까지 확장된다면 더욱 좋은 일일 것이다. 이래야 예수님 말씀대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한다”고 생각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