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은영 변호사(법무법인 사람)

대상판결 : 대법원 2021. 9. 9. 선고 2017두45933 전원합의체 판결

1. 사실관계

망인은 입사일인 2014년 2월24일부터 재해일인 같은해 4월19일까지 휴대폰 내장용 안테나 품질관리, 3차원 부품 측정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입사한 날부터 재해발생 전까지 54일 동안 약 539시간, 1주당 평균 69.7시간을 근무했다. 휴일에도 출근해 연장근무를 하는 등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지속적으로 강도 높은 업무를 수행했다. 이와 같이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로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망인은 2014년 4월19일 오전 9시50분께 휴대폰 내장용 안테나가 포장된 5.6킬로그램 정도의 박스 80개를 한 번에 2개씩 약 10분 동안 빠르게 운반하다가 쓰러져 박리성 대동맥류 파열로 사망했다.

원고(망인의 부)는 망인의 이 사건 사망이 업무상 재해로 인한 것이라며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 청구를 했고, 피고 근로복지공단은 ‘망인의 상병과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부지급 처분을 했다. 이후 소송절차에서 1심 법원은 원고승소 판결을, 2심 법원은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2. 대상판결의 판단

가. 다수의견(9인)

다수의견은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강조하며,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37조 1항은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기 위한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에 관한 증명책임을 공단에게 전환하는 규정으로 볼 수 없고,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의 증명책임은 업무상의 재해를 주장하는 근로자측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다. 그리고 원심 법원의 판단에는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잘못이 없어 상고를 기각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나. 반대의견(4인)

반대의견은 산재보험법 37조1항은 업무상 재해의 인정 요건 가운데 본문 각호 각목에서 정한 업무관련성이나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이를 주장하는 자가 증명하고, 단서에서 정한 ‘상당인과관계의 부존재’에 대해서는 그 상대방이 증명해야 한다고 봐야 하고, 이것이 법률해석에 관한 일반원칙에 부합된다고 했다. 이에 업무상 재해에 관한 증명책임 원칙에 반하는 기존 판례는 변경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의 구체적 판단에서는, 망인의 사망은 산재보험법 37조1항 본문에 따라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있으므로 이와 다른 취지의 원심판단에는 상당인과관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봤다. 나아가 기존 판례에 따를 때에도, 가사 망인의 대동맥류 파열이 개인적인 기저질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업무상의 과로나 스트레스가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에 겹쳐서 질병을 악화시킨 경우로서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어 원심판단은 파기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3. 판례평석

가. 산재보험법 37조1항(이하 ‘이 사건 조항’)의 해석 문제

대상판결에서 주요한 쟁점은 이 사건 조항을 상당인과관계에 관한 증명책임을 공단에게 전환하는 규정으로 볼 수 있는가였다. 이에 대해 다수의견은 그렇게 볼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반대의견은 법률해석의 일반원칙상 증명책임을 전환하는 규정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법률 조항이 본문과 단서의 형식으로 돼 있고 단서에서 본문이 정한 법률효과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규정돼 있는 경우, 단서에서 정한 요건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은 그 법률효과를 저지하려는 자가 부담한다고 보는 것이 보편적인 해석방법이라고 볼 것이다. 다수의견은 이 사건 조항의 단서 부분은 이 사건 조항의 본문에서 이미 규정하고 있는 업무상 재해의 인정 요건인 인과관계가 법적·규범적 관점의 상당인과관계를 의미한다는 점을 확인하는 취지로 봄이 상당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석하는 경우 이 사건 조항을 굳이 본문과 단서의 형식으로 규정한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다수의견의 해석대로라면, 애초에 이 사건 조항의 본문에서 “근로자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로 부상·질병 또는 장해가 발생하거나 사망했고, 업무와 부상·질병·장해·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존재하는 경우 이를 업무상 재해로 본다”고 본문 자체에서 ‘상당인과관계’를 명확히 표시하면 되는 것이었다. 대상판결의 ‘반대의견에 대한 대법관 김선수, 대법관 이흥구의 보충의견’ 판시를 인용했다.

그러므로 문언해석상 이 사건 조항은 근로자측이 이 사건 조항에서 정한 사유로 재해가 발생했다는 구체적인 사실을 증명하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고, 이를 다투는 공단이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없다’는 사정을 증명해야 하는 것으로 해석함이 타당하다.

나. 의학적 인과관계 입증의 현실적 한계 존재

이 사건에서는 망인의 사망 원인이 된 대동맥 박리라는 상병이 과연 업무상 과로·스트레스로 유발 가능한 질병인지가 주요한 쟁점이 됐다. 이 사건의 순환기내과 감정의는 대개 과로나 스트레스로 대동맥 박리가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으므로 부검 등에서 밝혀지지 않은 기저질환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지만, 이런 기저질환을 가진 상태에서 업무로 인한 과로나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위험인자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소견을 제시했다. 결국 감정의는 ‘업무상 과로·스트레스가 망인의 상병 발생 및 사망의 위험인자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상판결 중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에서는 “산재보험법 시행령 34조3항 [별표3]은 업무상 질병의 구체적 인정기준을 정하면서 그 유형별로 세분해 업무상 질병에 해당하는 경우를 예시하고 있으므로, 적어도 그에 해당하는 질병에 대해서는 근로자측의 증명부담이 어느 정도 완화돼 있다고 볼 수 있다”는 판시를 했다. 그런데 업무상 질병에 대한 구체적인 인정기준을 살펴보면, ‘다음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원인으로 해리성 대동맥류가 발병한 경우에는 업무상 질병으로 본다’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업무상 과로·스트레스 사실이 존재하고 ‘해리성 대동맥류’가 발생한 경우에는 이를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해리성 대동맥류’는 망인의 사망원인이 된 ‘대동맥 박리’와 동일한 상병이다.

그럼에도 2심 법원과 대법원에서는 ‘의학적으로 박리성 대동맥류는 업무와 관련성이 낮은 자발성 개인질환’이라는 입장을 유지하며 이 사건 망인의 업무와 사망 간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과연 보충의견의 판시대로 업무상 질병에 대한 구체적 인정기준에 제시된 질병에 대해 근로자측의 증명부담이 완화된 것이라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상당한 인적·물적 조직을 갖춘 정부나 공단에서도 업무상 질병에서의 의학적 인과관계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함에도, 그보다 열악한 위치에 있는 개인에게 이러한 증명책임을 부담하게 하고 그 불이익을 감당하게 하는 것이 과연 공평의 원칙에 부합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다. 기존 대법원 판례 입장에 따른 판단

기존 대법원의 일관된 입장은 “업무와 사망의 원인이 된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이 업무수행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적어도 업무상의 과로나 스트레스가 주된 발생 원인에 겹쳐서 질병을 유발 또는 악화시켰다면 그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망인은 사망 당시 만 25세로 심장질환·고혈압 등의 기저질환이 없었다. 발병 전 8주간 주당 평균 69시간, 4주간 주당 평균 62시간을 근무했다. 발병 당일 약 10분 동안 평소에 하지 않던 육체적 업무를 한 후 갑자기 쓰러졌다. 객관적 근로시간으로 볼 때 망인이 사망 전 과로했음을 부정할 수 없고, 발병 직전에는 급격한 업무환경의 변화가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기존 대법원의 입장에 따르더라도 설령 망인에게 대동맥류 파열의 개인적 기저질환이 있었다 하더라도, 과중한 업무로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운반작업을 하던 중 혈압이 상승해 자연경과 이상으로 급격히 악화해 사망한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라. 결어

상당수의 산재 사건에서 재해자는 본인에게 발생한 상병의 의학적 발병요인이나 업무와의 인과관계에 대한 입증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대 의학이나 첨단과학으로도 아직 명확히 밝혀 내지 못한 영역이라 하더라도 예외가 없다. 산재보험제도의 기본이념과 입법목적을 고려할 때에, 입증곤란으로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재해근로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 개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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