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잇단 중대재해로 산재 예방에 대한 관심이 높다. 산재를 줄이기 위해서는 법·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법과 제도를 현장에서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미래일터안전보건포럼 소속 전문가들의 제안을 연속 게재한다.<편집자>
 

권영일 미래일터안전보건포럼 자문위원(노무법인 이든 대표노무사)
▲ 권영일 미래일터안전보건포럼 자문위원(노무법인 이든 대표노무사)

고용노동부의 올해 7·8월 중대재해 발생 현황에 따르면 두 달간 중대재해가 97건 발생해 98명이 사망했다. 그중 건설업 사망이 50건으로 절반이 넘는다. 법률 제·개정과 정부 차원의 제도 정비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고, 스마트 건설안전이 현장에 속속 도입되고 있는데도 건설업에서 중대재해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건설현장 사망사고 원인 중 가장 많은 것이 ‘작업자의 불완전한 행동’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사망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데 현장의 최일선에서 작업자들을 지도·관리하는 안전관리자의 역량이 가장 중요할 수 있다는 얘기가 성립한다. 이에 건설안전관리자 고용 환경의 현주소를 점검해 보고, 산업재해 감소를 위한 그들의 역량 강화 방안을 제안한다.

10명 중 6명이 비정규직

건설현장 안전관리자는 현장의 실행예산에 포함된 안전관리비를 활용해 현장소장이 면접을 보고 채용하는 경우가 많다. 기간제 계약직 또는 프로젝트 계약직(PJT)이 적지 않다. 노동부의 2018~2020년 30대 건설업체 안전·보건관리자 현황자료에 따르면, 30대 건설사의 안전·보건관리자 4천272명 중 62%에 해당하는 2천643명은 비정규직이다. 안전보건관리자 10명 중 6명이 비정규직인 것이다. 전문성을 가진 인력을 채용해 적극적·조직적인 안전관리를 하기보다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필요 자격증을 가진 인원수를 채우는 소극적이고 형식적인 안전관리를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일부 현장에서는 안전관리자를 공정 추진에 도움이 되지 않는 부수적인 존재로 여긴다. 안전관리 이외의 잡일을 하도록 요구하는 때도 많고, 공사를 잘 모른다는 이유로 안전관리자의 지도나 조언을 무시하기 일쑤다. 그러다 중대재해라도 발생하면 직접적인 잘못이 없어도 마치 죄인처럼 안전관리자는 자책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이러한 연유로 안전관리자 자신도 자신의 직무는 ‘잘 해 봐야 본전’인 파트로 인식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건설현장 안전관리자가 ‘실질적인 독자성’을 갖추지 못해 책임 있는 안전관리가 이뤄지지 못한다.

정규직으로 채용해 직무연수 거쳐야

건설안전관리자의 고용 환경과 관련해 ① 불안정한 고용안정성으로 인해 ‘존중받지 못하는 권한과 낮은 독자성’ ② 인원수를 채우는 형식적인 채용관리로 인한 ‘전문성 부재’는 재해 발생과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두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안전관리자의 정규직 비율을 높여야 한다. 비정규직 안전관리자는 원칙적으로 프로젝트 준공과 함께 근로관계가 종료된다. 다음 현장에서 재채용된다는 확신이 없다면 점차 소극적인 자세를 띠게 되고, 소속감은 약해지게 된다. 이 경우 현재보다 좋은 조건으로의 이직을 늘 염두에 두고 근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건설업 재해는 줄어들기 힘들다. 따라서 안전관리자의 정규직 전환과 정규직 신규채용 확대를 통해 안전관리자의 고용안정성을 높여야 한다. 회사 차원에서도 안전관리자가 지속해서 프로젝트를 경험하게 되면 내부 노하우 축적이 가능해진다. 현재 건설업체의 산재예방활동 실적평가 기준의 하나로 정규직 안전·보건관리자 비율을 산정해 입찰참가자격사전심사(PQ)에서 가점을 주는 제도가 도입돼 있다. 건설공사 입찰시 신인도 평가에서 선임 신고된 전담 안전·보건관리자의 정규직 비율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가점 비중을 높여 제도의 실효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둘째, 안전관리자 직무연수기간 설정이 필요하다. 단순히 정규직 비율만 높인다고 해서 그들의 질적 역량이 강화되는 것은 아니다. 정규직 비율을 맞추기 위해 자격증만 있고 실무경험이 없는 정규직 유휴 인력을 현장 안전관리자로 투입하면 산재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험에 합격한 전공자와 비전공자 모두를 대상으로 3개월 정도의 연수기간을 설정해 현장 경험을 쌓도록 할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직무연수과정을 거친 후에만 안전관리 자격을 부여받도록 제도화한다면 안전관리자의 전문성 확보, 역량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안전관리자는 기술과 인간을 동시에 생각하는 안전기술자이자 휴머니스트여야 한다. 역량 있고 작업자의 안전을 우선으로 하는 안전관리자는 작업자들에게 ‘우리 현장에 꼭 필요한 존재이자 우리를 지켜주는 고마운 존재’가 될 것이다. 이러한 안전관리자로부터 지도·교육받은 작업자들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돼 ‘불완전한 행동’이 현저하게 줄어들 것으로 확신한다. 이 상향식(Bottom-up) 혁신이 ‘문화로서의 안전’으로 뿌리내리는 날이 오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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