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지혜 서울청년유니온 위원장

할애는 “소중한 시간·돈·공간 따위를 아깝게 여기지 않고 선뜻 내어 줌” 이라는 의미다. 할애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 있다. 운영위원회라고 불리고 주로 저녁에 회의를 하는데, 지치지도 않고 아이디어를 낸다. 화상회의라고 회의하는 척만 하는 법이 없다. 그 회의에 영혼 없이 참여하고 있다가는 ‘다들 이렇게까지 진심인데!’ 각성하며 피곤한 뇌에게 아이디어를 내놓으라 재촉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운영위원회는 분과 혹은 범분과 회의로 다시 이어진다. 올해의 경우 노동·경제, 기후·환경, 참여·교육, 문화예술, 평등·인권, 사회안전망, 주거 등의 분과다. 각 분과회의에서는 해당 주제에 관심 있는 청년들이 모여 우리 삶에 필요한 정책과 프로젝트를 논의한다.

그렇게 모인 청년들이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서청넷)’라는 이름으로 정책을 제안해 왔다. “취업준비를 하는 상황이 부모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도록 청년구직자가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취업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한 해에는 면접을 앞둔 청년이 정장·구두를 빌릴 수 있는 ‘취업날개서비스’를 정착·확대했다. 일 경험을 지원하는 서울시 ‘뉴딜일자리’가 청년을 단순히 취업률로 바라보지 않도록, 일 경험의 과정과 청년의 자존을 중히 여기도록 제언하기도 했다. 일자리와 노동을 포함해 각 의제마다 청년당사자가 내 이야기를 풀어내고 서로의 상황을 더해 가며 현실반영 정책을 만들었다.

여기까지 봤을 때 청년들이 정책을 제안하면 그게 다 정책이 되고 집행될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정책제안 과정은 한편의 아름다운 드라마가 아니라 ‘인생은 실전이야’에 가깝다. 숙의에도 불구하고 담당 부서의 문턱을 넘지 못해 없어진 정책도 많고, 예산과에서 ‘컷’하는 정책도 있다. 청년의 요구도 있고 행정의 요구도 있어 보였는데 프리랜서와 같이 수년째 답보상태인 의제도 있다. 제안된 모든 정책이 만족스러울 수 없고, 필요하더라도 시기가 안 맞을 수 있다. 그렇지만 수용·불수용이라는 판단을 넘어 지향이 다르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이, 지향이 같은데 지금 할 수 없다면 어떻게 발전시킬지 같이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행정의 역할이 수용·불수용을 가르는 것에 그친다면 시민의 거버넌스 파트너가 아니라 정책감별사일 뿐이다.

한편, 거버넌스를 한다는 건 비단 정책제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서청넷은 심심해서 와 봤다가 진심이 되는 공간, 나의 고민을 우리의 고민으로 확산해 본 공간이면서 모두가 내 맘 같지는 않다는 걸 확인한 공간, 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아 가는 공간이지만 행정의 벽 앞에서 가슴 답답해져 본 공간, 시민참여에 대한 확신을 얻어가는 공간인 동시에 행정과 시민은 정책수립의 파트너가 될 수 있는지 고민이 많아지는 공간이다. 서청넷은 시작된 이래로 참여한 수천명의 청년, 그 수만큼이나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과정과 결과를 누군가 독점하거나 왜곡할 수 없는 이유다. 지금까지의 서청넷과 앞으로의 서청넷이 그렇듯 거버넌스란 결국 그걸 구성하는 시민의 것이다.

시간과 마음을 기꺼이 할애하는 청년들과 제 역할을 다하려 노력한 행정이 있었기에 만들어진 경험과 정책의 한가운데 있는 2021년이 아닐까. 가운데에 있다는 것은 온 만큼은 가야 한다는 것이고, 가야 할 길은 초행이 아닌 듯해도 초행이라는 점에서 지나온 길과 또 다른 갈 길이다. 약간의 꽃길과 더 많은 진창일지라도 거버넌스 경험과 거버넌스가 탄생시키는 양질의 정책이 더 많은 청년에게 닿기를 여전히, 여전히 바란다.

요새 서울시장이 언급하는 ‘청년 서울’은 경쟁을 부추기는 ‘정책 배틀’ 혹은 청년부서의 형식적 격상에서 오지 않는다. 시민이 마주한 삶의 문제를 풀어 갈 수 있는 대안을 행정과 청년이 함께 모색해 보는 것, 그것이 ‘청년 서울’에 가깝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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