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잇단 중대재해로 산재 예방에 대한 관심이 높다. 산재를 줄이기 위해서는 법·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법과 제도를 현장에서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미래일터안전보건포럼 소속 전문가들의 제안을 연속 게재한다.<편집자>
 

▲ 최은영 미래일터안전보건포럼 자문위원(법무법인 사람 변호사)
▲ 최은영 미래일터안전보건포럼 자문위원(법무법인 사람 변호사)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2조2호에 따르면 산업안전보건법 2조1호에 따른 산업재해 중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한 결과를 야기한 재해는 ‘중대산업재해’에 해당된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7월 입법예고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 2조와 동조 관련 [별표1]에서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을 납·수은·크롬 또는 그 화합물·벤젠 등에 노출돼 발생한 급성 중독과 산소결핍증·열사병 등 총 24가지 직업성 질병으로 구체화했다. 이는 인과관계의 명확성(급성), 사업주의 예방가능성, 피해의 심각성 등을 고려해 규정된 것이다.

시행령 제정안에 따르면 ‘뇌심혈관계질환, 근골격계질환’은 직업성 질병의 범위에서 제외됐다. 그런데 최근 택배 물류회사에서 사업주의 안전·보건조치의무 위반으로 인한 근로자들의 뇌심혈관계질환 발병 및 이로 인한 사망(과로사)이 증가하고 상당한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음을 고려할 때 논쟁의 여지가 있다.

노동계에서 주장하고 있듯이 재해자가 △뇌심혈관계질환 등으로 사망한 경우와 △뇌심혈관계질환 등으로 중증 상태에 이르러 오랜 기간 요양 중인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 대한 뇌심혈관계질환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 확보 의무 부여의 필요성과 해당 의무 위반으로 인한 처벌 필요성은 동일하게 존재한다. 그럼에도 사망자가 발생한 경우에만 처벌이 가능하게 돼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에 해당될 소지가 있다.

한편 직업성 질병에 뇌심혈관계질환이나 근골격계질환 등을 포함시키는 경우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 위반과 질병 발생 간 인과관계를 명확히 규명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법 적용의 어려움이 생긴다. 실질적으로 사망사고나 중독사고를 중심으로 처벌이 이뤄지게 돼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이 떨어지게 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재해자의 해당 질병이 산재로 인정되는 단계에서 사업주가 협조를 해 주지 않아 산재조차 인정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뇌심혈관계질환, 근골격계질환 등은 오랜 기간 요양을 필요로 하는 상병이다. 이러한 상병이 산재로 인정돼 요양급여나 휴업급여가 지급되는지 여부는 재해근로자 및 그 가족들의 생계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간과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또 다른 문제는 기업이 해당 질병의 위험인자들을 가지고 있어 질병 발생 가능성 높은 근로자와의 채용 계약 자체를 기피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뇌심혈관계질환이나 근골격계질환 역시 경영책임자 등의 보건조치 의무 확보를 통해 예방해야 할 필요성이 큰 질병에 해당된다. 하지만 이를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 가능한 직업성 질병의 범위에 포함시키기보다는 기존 산업안전보건법·근로기준법을 개정하거나 벌칙 규정을 강화하는 방향을 고려해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 669조에는 “사업주는 근로자가 장시간 근로 및 교대작업 등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가 높은 작업을 하는 경우 직무스트레스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을 위한 조치들을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해당 조항은 내용이 너무 추상적이다. 어느 정도의 개선조치 및 대비책을 마련해야 의무 이행이 되는 것인지가 불명확해 사실상 실효성 및 강제력이 떨어지는 조항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당 조항과 관련해 보다 구체적이고 상세한 기준을 설정해 적절하고 효과적인 개선조치를 마련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시 벌칙 규정을 적용해 징역 또는 벌금형 부과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가 근로자에 대한 건강진단 실시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를 벌금형 부과가 가능하도록 형을 강화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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