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이 자회사를 통한 사내하청 노동자 고용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자회사 전환이 고용안정이나 처우면에서 나아질 수는 있다. 하지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불법파견을 저지른 대기업의 법적·사회적 책임 이행, 민간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대제철의 방침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간판만 바꿔 불법파견 계속하겠다는 것
장석원 금속노조 언론부장

▲ 장석원 금속노조 언론부장
▲ 장석원 금속노조 언론부장

20년 동안 맞고 살았다. 폭력이 지긋지긋해서 그만 때리라고 재판 걸어 이겼다. 그러나 가해자는 지금부터 몽둥이로 때리겠다고 한다. 안 때릴 수는 없고 때리는 방법만 바꾼다는데 이걸 개선이라고 해야 하나? 지금 현대제철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딱 이렇다.

대기업 공장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는 보조 역할이 아니다. 생산의 주체다. 이들이 일손을 놓으면 자연스럽게 공장이 멈춘다. 그래서 법도 생산과정에 투입되는 노동자의 업무는 하도급을 못 하게 했고, 2년 이상 같은 일을 한 노동자는 정규직이라고 규정했다. 이걸 20년 동안 대놓고 어긴 것이 사내하청 불법파견 문제다. 참다못한 노동자들이 소송을 넣었고 법이 너무 명확하기에 재판마다 이기고 있다.

현대제철의 자회사 강행은 소송에 이긴 하청노동자를 직고용해야 하는 상황을 피하려는 몸부림이다. 현대제철은 자회사 설립이 처우개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1·2심을 이기고 대법원 승소가 눈앞인 순천공장은 뺐다. 이미 노동자가 승소한 순천은 자회사를 만들어도 회사가 노리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으니 아예 제외한 것이다. 자회사가 ‘순수한 의도’는 아님을 알 수 있다.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는 현대제철에 명백한 차별이 존재한다고 확인했다. 이 차별은 노동자를 분할지배하려는 자본의 전략이다. 재벌대기업은 노동자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으로 차등하고 차별해, 단결하지 못하고 서로 갈등하게 만들어 지배한다. 자회사의 임금이 원청의 몇 %라는 현대제철의 설명이 이런 의도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똑같은 일을 하면 같은 노동자로 대우해야 하는데 자회사 노동자는 원청과 구분되는 2등 노동자여야 한다는 것이 회사의 속셈이다. 간판만 바꿔 차별과 불법파견을 계속하겠다는 자본의 부도덕함을 노동조합이 용인할 수는 없다.

현대제철은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직접고용 해야 한다. 자회사 이직이 노동자의 자발적인 선택이라는 거짓말도 그만둬야 한다. 현재 속한 하청사를 강제폐업해 자회사로 안 가면 실직자가 되는데 어떻게 이것이 자발적 선택인가. 자회사로 가면 소송도 취하하고, 더는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서약도 써야 하는데 이것이 어떻게 자유로운 선택인가. 문어발처럼 사업을 늘리는 재벌이 이젠 인력파견회사까지 만들겠다니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공공부문 정책이 부른 민간기업의 편법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

▲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
▲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

불법파견으로 판명 나면 직접고용 의무가 발생하지만 고용의 범위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본사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아도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과거 국회에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을 개정할 당시 노동계는 본사 기간제 비정규직으로 채용해도 면피 될 수 있다고 우려했지만 이런 내용을 담지는 못했다. 현대제철은 불법파견 노동자를 본사 기간제 비정규직으로 채용하지는 않았는데, 아마도 사회적 비난이 너무나 클 것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파견노동자 시절보다 더욱 고용불안을 야기하는 기간제 전환 방식은 법원에서 부정될 가능성도 높다.

자회사는 논란의 여지가 아직 많다. 자회사 채용을 직접고용 범위에 포함할 것인지에 대한 법원판단이나 사회적 합의가 아직 없다. 다만 이 방식이 공공부문 자회사 전환 방식에서 시작한 것임이 자명하다.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공공기관은 자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을 택했다. 공공부문에서 자회사도 정규직이라고 선을 그어 버린 셈이다. 이로 인해 통신회사 비정규직은 오랜 기간 투쟁에도 자회사 정규직으로밖에 전환하지 못했다. 자회사로도 충분하다는 정부 신호를 받은 민간기업, 현대제철도 이 방법을 택했다.

불법파견시 직접고용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해석의 여지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상식적으로 보면 본사 정규직화라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공공부문은 자회사를 우후죽순처럼 만들어 전환했고, 이제 민간에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직접고용 의무가 발생한 상황에서 자회사 방식은 편법에 불과하다.

 

무책임과 왜곡보도가 부르는 억울함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

▲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
▲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고용하기 위한 현대제철의 자회사 설립은 평소 같으면 칭찬받을 결정일 수 있으나 오히려 논란이 크다. 얼마 전 고등법원의 불법파견 판정 이후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현대제철 사내하청은 1·2심에서 모두 불법파견으로 판정받아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확정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기에 노동자의 반발은 당연하다. 조금만 더 있으면 현대제철 정규직 전환이 결정되는데 굳이 임금과 고용이 불안한 자회사로 전환하길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제철은 경영상 전략적 의사결정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지 몰라도 두 가지 측면에서 사회적으로 무책임한 결정을 한 것이다.

첫째, 대법원 결정을 앞두고 이제 와서 임금과 고용보장 수준이 원청과 다른 자회사로 전환하겠다는 것은 스스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법원으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다는 것은 정규직으로 채용할 노동자를 불법으로 파견받아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법을 시정하라는 판결을 앞두고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보다 다시 비용을 줄이기 위해 자회사로 전환하겠다는 것은 모범을 보여야 할 대기업의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둘째, 공공부문도 정규직화를 하면서 자회사 전환을 활용했다고 항변할 수 있으나 공공부문 자회사는 민간부문과 다르다. 우선, 정부가 통일적으로 바람직한 자회사 운영안을 내놓고 매년 평가를 통해 노동자의 우려를 반영해 개선방안을 찾고 있다. 이와 달리 민간부문 자회사는 모회사를 제외하고 누구로부터도 통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자회사 전환 이후 운영에 대한 평가와 개선이 어렵다. 이러한 까닭에 대법원 판결을 앞둔 현대제철의 자회사 전환 결정은 사회적으로 무책임한 결정이다.

여기에 더해 언론은 현대제철 사례를 제2의 인국공으로 몰아가고 있는데, 법원은 불법파견된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직접고용하라고 결정했다. 그 결정대로 하자는 것이 왜 공정성을 위반한 것인지 오히려 언론에 묻고 싶다.

 

일방적 자회사 추진, 노조와 성실교섭해야
송영섭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 송영섭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 송영섭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현대제철은 자회사 전환을 추진하면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불법파견 정규직화 소송에 대한 소취하 동의서와 부제소 확약서를 요구하고 있다. 소취하에 동의하지 않거나 부제소 확약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자회사에 지원할 수 없다.

현대제철이 요구하는 부제소 확약서는 “본인은 현대제철을 상대로 현대제철과 협력업체 사이의 법률관계가 적법 도급관계가 아님을 전제로 한 권리를 주장하지 아니합니다. 본인은 현대제철의 협력업체에 근무했던 기간의 근로관계와 관련해 현대제철, 소속 임직원 및 협력업체 등 기타 이해관계 있는 당사자를 상대로 임금·상여금 등 명목을 불문하고 금품을 청구하는 소송(청구원인을 불문)을 비롯해 일체의 민사·형사·행정상 및 기타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합니다” 등으로 기재돼 있다. 현대제철과 소속 임직원, 기존 협력업체, 자회사인 현대ITC 등에 대한 모든 권리주장이 봉쇄되는 것이다. 한편 하청업체 14개사는 소속 하청노동자들에게 8월31일부로 현대제철과의 도급계약 종료를 이유로 한 사업종료 및 고용관계 종료를 통보했다.

비정규 노동자는 해고의 위험을 무릅쓰고 불법파견 소송을 유지하거나, 자신의 모든 소송상 권리를 포기하고 자회사에 가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을 강요받았다. 그 과정에서 현대제철은 노동조합과의 교섭을 일체 거부했다. 노조를 배제한 현대제철의 일방통행식 자회사 추진, 기존 하청업체와의 도급계약 해지 및 사업종료,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해고위협으로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은 이미 예견됐다.

자회사 전환은 비정규 노동자들의 신분관계에 중대한 변경을 가져오는 근로조건 사항으로 교섭에서 풀어야 할 문제다. 현대제철이 노조와는 아무런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노사공동결정의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부당한 조치다. 현대제철은 이제라도 일방적인 자회사 추진을 중단하고 노조와 성실히 교섭에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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