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익찬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이따금씩 산재 사망사고와 관련된 문의가 들어온다. 한 노동자는 지방소도시에서 아무런 보호장구 없이 건물 창문을 닦다가 추락해 사망했다. 다른 노동자는 토류판을 해체하다가 압력으로 튕겨져 나가서 두개골 골절로 숨졌다. 모두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변호사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많지 않다. 형사판결에서 사업주의 유죄가 인정되더라도 초범인 경우에는 구속되기는 어렵다든지, 회사가 제시한 금액이 적더라도 민사소송을 제기해서 받을 수 있는 금액이 그 정도라든지 하는 수준의 하찮은 상담뿐이다. 형사고소를 하거나, 유가족이 원한다면 공론화가 가능하다고 말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평생 그런 것과 거리를 두고 살아 온 평범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지금의 상황도 너무 버겁고 감당하기 힘들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있는 지금도 추락·끼임과 같은 사고는 하루에 한두 건씩은 발생한다. 이 답답한 상황은 도대체 어떻게 풀어야 할까.

노동자에게 위험한 작업을 거부할 권리가 있고 참여하여 바꿔 나갈 권리가 있는가. 추락위험이 있는 사업장에서 안전대를 설치하거나 개구부에 위험표시를 해서 실수로 추락하더라도 살 수 있는 조치를 요구하고, 그런 조치가 없다면 작업할 수 없다고 선언할 권리가 있을까. 끼임의 위험이 있는 곳에 접근을 차단하도록 울타리나 안전센서를 설치하라거나, 컨베이어 바로 옆에서 이뤄지는 위험한 작업을 다른 방법으로 대체하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을까. 노동자의 목에 칼을 들이대면서 작업지시를 하는 것은 아니니 작업거부나 작업대체 요구는 가능하다. 대신 그러려면 회사를 나가야 하거나, 업무방해죄로 고소 당할 것이다.

현장에 항상 있는 위험은 누구보다도 현장 노동자가 가장 잘 안다. 그리고 사고가 발생한 다음의 재발방지 대책도 다름 아닌 현장 노동자가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나 명예산업안전감독관과 같은 제도를 둬 산재예방에 대한 노동자의 의견을 듣도록 하고, 작업중지명령 해제시에도 노동자 의견을 청취하게 돼 있다. 하지만 모두 허울뿐이다.

법·제도와 사업주의 관점이 오로지 의무 중심으로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처벌이 뒤따르니, 마지못해 하는 수준이다. 그마저도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출입이나 위험성 평가는 시늉만 낸다. 이보다 더 뿌리 깊은 것은 안전보건 문제는 교통사고와 같이 사업을 운영하다 보면 불가피한 것이고, 수많은 규제를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니 지금 오는 소나기만 피하자는 생각이다. 아무런 규제가 없던 시대에는 하나씩 만들어지는 규제를 지켜나가는 게 필요했고, 문맹률이 높았던 시대에는 그 규제를 지키는 게 오롯이 사업주의 몫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단지 사업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법·제도를 바라보는 관점을 뒤집어야 한다. 노동자 참여를 통한 상시적인 안전보건 활동이 있어야 하고, 법과 제도도 그 방향에 맞도록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노동조합은 ‘참여해야 안전하다’라는 기조를 수립하고 노동자의 참여권 보장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노동계의 요구를 어떻게 법·제도에 녹여 노동자 참여권을 확대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안전보건 조치는 지키기 불가능하고 귀찮은 것이라거나, 무엇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해선 안 된다. 피곤한 작업이더라도 노·사·정이 함께 노력을 해야 하고, 또 노력을 하면 재해를 줄일 수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맞게 법·제도도 변화해야 한다. 영국의 산재 사망사고 감소사례는 이러한 방식이 옳다는 것을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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