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를 계기로 쿠팡의 기업 운영방식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지난해 코로나19 집단감염과 노동자들의 과로 논란 때부터 쿠팡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낮은 안전인식은 문제로 지적돼 왔다. 쿠팡 노동자들이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물류센터 노동환경 개선 방안을 6회에 걸쳐 제시한다.<편집자>

민병조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장
민병조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장

깁스를 풀어 보라고요?

하루는 동탄물류센터에서 근무하는 경민(가명)씨가 작업 중 무거운 도트박스를 반복해서 들다가 엄지 손가락 부위 인대가 늘어나 엄지와 검지에 철심을 고정하게 돼 깁스를 하고 회사에 출근했다. 경민씨가 깁스를 한 채 출근했는데 출근 보안검색대에서 경보음이 울렸고 보안사원들에게 제지를 당했다. 경민씨는 당황했지만, 일하다 인대가 늘어나 철심을 고정했기 때문에 금속탐지에 잡힌 거 같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보안사원은 경민씨에게 깁스를 풀어 보라고 요구하며 출근을 제지했다. 경민씨는 황당하기도 했지만, 마치 깁스안에 무언가를 숨기고 들어가는 사람처럼 의심하는 태도에 몹시 불쾌했다고 한다.

열심히 일하면 손에 열이 난다?

지난겨울 동탄센터에서 일하던 수민(가명)씨는 다른 사람들은 출근하면서 핫팩을 바로 지급받았는데 본인이 일하는 층은 30분 이상 늦게 나눠 주는 걸 보고 현장관리자에게 핫팩을 빨리 달라고 요청했다. 돌아온 답변은 어처구니없게도 “핫팩을 일찍 나눠 주면 주머니에 손을 넣고 핫팩을 만지느라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일부러 일을 시작하고 몸에 열이 날 때쯤 나눠 주는 것이다”였다.

수민씨가 관리자의 황당한 답변을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시간대 근무하던 일용직 노동자가 근무 직후 화장실에서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사망했다. 추운 현장에서 일하다 난방이 되는 공간에 들어가자, 급격한 온도격차로 몸에 이상반응이 온 것이다. 수민씨를 비롯한 근무자들은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고인이 돌아가신 화장실 앞에 한 동료가 흰 국화를 두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쿠팡물류센터는 난방시설이 부족하다. 개인 난방물품은 보안검색대를 통과하지 못한다. 유일하게 의존하는 게 회사에서 나눠 주는 핫팩인데, 그마저도 언론에 나온 대로 겨우 한두 개다. 핫팩 하나에 관리자 갑질까지 더해지니 수민씨는 서러움을 넘어 분노가 치밀었다.

1천명을 엘리베이터 한 대에 태우는 방법

동탄센터에 확진자 발생으로 셧다운을 하게 되자, 감염확산을 막기 위해 쿠팡은 현장 내 모든 엘리베이터 탑승인원을 8명으로 제한했다. 바쁜 출퇴근시간대 인원 제한이 지켜지지 않자, 관리자들은 퇴근시간에 단 1대를 제외하고 모든 엘리베이터 운행을 중단했다.

3·4층에서 일하는 사람만 해도 300명이 족히 넘는데 8명만 탈 수 있는 엘리베이터 한 대만 운영하니 현장이 어떻겠는가. 폭염 속 9시간 근무를 마친 노동자 수백명은 지친 몸을 이끌고 300개가 넘는 계단을 걸어 다녀야만 했다.

방역지침은 노동자들도 바란다. 하지만 감염예방을 핑계 삼아 노동자들에게 ‘똥개훈련’은 시키지 말아야 한다. 물류센터 내 거리 두기가 되지 않는 공간이 엘리베이터만은 아니다. 출퇴근시간에 보안검색대부터 사물함이 있는 탈의실, 1층 입구까지 인파가 붐빈다. 10분 이상 몰리는 구간에 대한 방역지침은 없으면서 길어야 2분이 넘지 않는 엘리베이터 탑승에만 야만적인 징벌 태도를 보인다는 게 참으로 한심하다.

위에 세 가지 사례 외에도 쿠팡물류센터지회가 출범하고 세 달이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인권침해 상담과 제보가 끊이질 않는다. 특히 쿠팡이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개인물품 반입금지 규정일 것이다. 쿠팡은 보안을 이유로 개인물품 반입을 엄격히 제한한다. 허용되는 물품은 생수, 작은 사탕이나 초콜릿 따위, 복용약 정도다. 놀랍게도 현대인의 필수품인 휴대전화도 반입이 안 된다. 급한 연락이 와도 받을 수 없고, 일하다 다쳐도 119도 부를 수 없다. 경기도 덕평센터 화재사고 발생시 최초 목격자가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었다면 관리자들에게 거짓말쟁이 취급을 받는 수모를 겪지 않고 재빨리 조치할 수 있었다.

쿠팡이 지난해부터 직원안전과 건강관리에 2천300여억원을 투자했다고 한다. 큰돈을 들였으니, 현장에 변화가 있으리라 기대한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는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큰 변화도 필요하지만, 작은 변화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회사가 비용을 들여 바꿀 수 있는 노동조건도 있지만, 마음을 기울여야 바꿀 수 있는 노동조건도 있다. 법적 근거도 원칙도 없는 막무가내식 통제는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다. 밤낮없이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기에 기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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