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나케이오 해고노동자 5명이 지난 20일 오전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 1심 선고 공판 직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박종근씨, 기노진씨, 김계월 아시아나케이오지부장, 김정남씨, 김하경씨. <홍준표 기자>

“중앙노동위원회 판정과 같이 경영상 긴박한 필요성이 인정되는 부분 이외의 나머지 부분에 있어 해고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고 소송비용은 보조참가인을 포함해 모두 원고가 부담한다.”

지난 20일 오전 10시5분께. 재판장이 약 1분간 주문을 낭독하자 방청석에 앉아 있던 아시아나항공 하청업체 ㈜케이오(KO) 해고노동자 5명은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김계월(58)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아시아나케이오지부장을 비롯해 기노진(60)씨·김정남(60)씨·김하경(59)씨·박종근(54)씨는 동료들에게 사측의 패소 소식을 알리며 눈물을 흘렸다.

무급휴직 거부 8명 해고
법원 “해고회피 노력 미흡”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유환우 부장판사)는 이날 아시아나케이오가 중노위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하고 해고노동자쪽 손을 들어줬다.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들이 해고된 지 463일 만이다.

아시아나케이오 해고는 이른바 ‘코로나19 1호’ 정리해고로 불린 사건이다. 사측은 지난해 5월11일 코로나19로 인한 경영난을 이유로 무기한 무급휴직을 요구했고, 이에 동의하지 않은 노동자 8명을 해고했다. 코로나19로 세계 각국이 국제선 운항을 중단하고 국제선 운항률이 10%대 이하로 급감하면서 사실상 일시적 업무정지 상태에 이르게 됐다는 이유였다.

그러자 해고노동자 8명 중 6명이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제기해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다. 중노위도 지난해 12월8일 사측의 재심을 기각하자 사측은 이들을 복직시키지 않은 채 이행강제금만 납부하고 행정소송을 냈다. 회사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 3명을 선임했다.

법원은 두 차례 변론기일을 진행한 뒤 이날 회사의 부당해고가 맞다고 선고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존재했지만,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했다고 볼 수 없다는 중노위 판정을 인정한 셈이다.

울먹인 해고노동자 5명

“지금이라도 원직복직 이행하라”

선고 직후 법원 앞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해고노동자 5명은 발언 내내 울먹였다. 기내 청소를 담당했던 김계월 지부장은 “부당해고를 인정한 사법부 판결은 당연한 결과”라며 “행정법원도 부당해고라고 판결한 만큼 케이오 사측과 금호문화재단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 아니라 즉각 복직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선고 공판 전 3일 동안 법원 앞에서 진행한 릴레이 3천배에 참여했다. 장시간 절을 한 탓에 연신 다리를 절었다.

기내 청소를 맡았던 김하경씨도 “뼈가 휘도록 결근, 병가 한 번 없이 일했는데도 해고를 당했다”며 “천막농성을 하면서 일할 때도 나지 않았던 땀띠가 났던 게 주마등처럼 스친다”고 말했다. 여성 청소노동자를 이송한 업무를 한 박종근씨는 “복직 투쟁 과정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 많은 분이 함께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회사가 부당해고를 인정하고 지금이라도 원직 복직을 이행하길 바란다”고 했다. 지난 4월30일과 5월31일 길 위에서 각각 만 60세의 정년을 맞이한 김정남씨와 기노진씨도 법원 판결이 다행이라고 말했다. 기씨와 김씨는 지난 4월13일부터 약 한 달간 단식농성을 했다.

해고노동자들은 정부도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부당해고에 책임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지부장은 “코로나19는 국가적 재난상황임에도 해고로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며 “정부가 코로나19를 핑계로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를 방관하고 이 상황에 오기까지 해결책을 내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이다. 해고노동자들이 일터로 돌아갈 수 있도록 책임과 의무를 다해 달라”고 요구했다.

▲ 공공운수노조 관계자가 지난 20일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부당해고 판결을 촉구하는 릴레이 3천 배를 진행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 공공운수노조 관계자가 지난 20일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부당해고 판결을 촉구하는 릴레이 3천 배를 진행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회사, 해고노동자에게 “고생했다” 한마디만

특히 이들은 사측이 사과는커녕 1심 판결에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기노진씨는 “법정에 온 회사 노무부장에게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지 물었더니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가 전부였다”며 “해고자를 긴 시간 길바닥 위에 방치해 놓곤 사과는커녕 고생이라고 하는 게 사용자를 대표해 나온 사람의 태도인지 기가 찼다”고 했다.

사측은 “적법 절차에 따른 해고”라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며 판결문을 토대로 항소를 검토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해고노동자들은 원직복직이 될 때까지 계속 투쟁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지난해 8월13일부터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또 50리길 걷기·오체투지·단식농성·노동청장 면담 등을 진행했다.

지난 9일에는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케이오 지분 100%를 소유한 금호문화재단 이사장인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엄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행정소송 1심 선고를 앞두고는 법원 앞에서 3일 동안 릴레이 3천배를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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