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서희 청년유니온 기획팀장

운칠기삼. 사람의 일은 재주나 노력보다 운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는 운이 아무리 좋더라도 노력이 없으면, 내가 준비돼 있지 않으면 그 운을 잡을 수 없다는 의미도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렇기에 언젠가 찾아올 운이라는 기회를 잡기 위해 나는 노력을 했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되지 않았다면 ‘운이 없었나 보다’ 생각했다. 그게 경쟁을 버티는 힘이었다.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내가 원하는 근무조건의 일자리를 얻는 것은 여러 가지 요인들이 맞물려야 탄생할 수 있는, 그야말로 ‘기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적당히 타협한다. 직무, 연봉, 복지, 회사의 이름, 출퇴근거리 등을 두고 내가 포기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지워 나간다. 그리고 보통의 사람들은 노력으로 채워서 일자리를 얻어 낸다.

최근에는 이 노력 안에도 운이 작동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내가 언제, 어디에서 어떤 부모님 슬하에서 태어나는지에 따라서도 노력을 통해 펼칠 수 있는 여건이 달라진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사양직업이 되기도 하고 혹은 미래 가치가 급상승하기도 한다. 또 역병에 대응하기 위해 필수노동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기도 한다. 정권에 따라서 내 일자리가 정규직이 되기도 한다.

일자리의 조건을 타협할 수 있는 사람들의 사정은 차라리 좀 나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적 자원이라도 존재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여기, 모든 조건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사람도 존재한다. 지금 당장 소득원이 없으면 안 되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더 나은 일자리를 가기 위해 자신에게 사용하는 시간과 비용조차 사치라고 여기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게 사회안전망이다.

지난달 말, 고용노동부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5년 동안 3회 이상 실업급여를 수급하는 경우 실업급여를 50%까지 삭감하고, 자발적 퇴사를 한 후에 일시적 일자리를 거쳐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경우 대기기간을 4주로 연장하는 내용이 뼈대다. 언론에서는 고용보험 기금이 바닥나 재정대책이 필요해 법개정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기금의 재정난을 전체 실업급여 수급자 6%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줄인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일까. 기금 문제와 반복수급 현상은 해결방법이 달라야 한다. 정부가 작성한 입법예고 문서에는 개선 필요성으로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높은 임시직 근로자 비중 및 짧은 근속기간 등으로 인해 반복수급이 광범위하게 나타날 수 있는 구조이며, 일부 단기 취업 및 구직급여 수급 의존 행태도 있음”을 언급했다.

전자가 말하는 것은 노동자의 잘못이 아니다. 비정규직 일자리를 양산하는 우리나라의 구조적 문제다. 또한 후자의 경우 이런 상황에서 “의존”이라는 표현을 쓰는 게 적절한지 우려된다. 정부뿐 아니라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장 의원은 2회 이상 반복수급자까지도 실업급여를 제한하는 것으로 제안했다.

단기 계약직을 전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는 노동자에게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일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긴다. 한국 사회가 비정규 일자리를 양산해 내는 것을 용인하고 있다면 국가는 적어도 이들의 최후의 방패막이 돼야만 한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고용위기를 겪고 있는 현재야말로 고용보험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순간이다. 고용안전망을 더 촘촘하고 빈틈없게 하려고 고민하는 것이 아닌, 구멍을 더 넓히는 행태는 고용보험의 목적과도 맞지 않다.

장철민 의원과 정부의 입법 논리대로라면,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노동자는 많지 않다. 청년유니온은 정부의 실업급여 개편안에 이견을 제기하며, 노동부에 입법예고에 대한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조합원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6%에 불과하고, 주변에서 찾기도 힘든 사람일지라도 최후의 보루마저 빼앗기게 둘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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