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굴삭기에 치여 목숨을 잃은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주가 미등록 체류자라는 이유로 보상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일이 발생했다. 이런 일은 일상다반사다. 올해 상반기에만 40명이 중대재해로 사망할 정도로 ‘위험의 이주화’ 문제는 심각하다. 고용허가제 시행 17년이 됐지만 노동자들은 ‘무권리 상태’라고 하소연한다. 산재뿐만 아니라 임금체불, 사업장 변경 문제가 쌓여 있다. 당사자들과 활동가들이 이주노동자 권리 보장 방향을 제시하는 글을 보내왔다.<편집자>

▲ 송은정 이주노동희망센터 사무국장
▲ 송은정 이주노동희망센터 사무국장

매일노동뉴스에 16년 만에 글을 쓴다. 다시 글을 쓰기 전 반성부터 하고 싶다. 매일노동뉴스에서 취재하던 시절의 나는, 이주노동자 문제에 무지하고 무관심했다.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해 질문해 본 기억조차 없다. 노동기자로서 ‘현대판 노예제도’로 불린 외국인산업연수생 제도, 시행될 때부터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가로막힌 고용허가제에 문제의식을 갖고 취재하지 않았던 것에 반성한다.

지금은 이주노동 단체에서 일하면서 기자들의 취재협조 요청을 많이 받는다. 열악한 숙소에서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 산재 피해를 당한 이주노동자, 코로나 백신접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주노동자 등등등. 그들의 코멘트를 받을 수 있도록 소개해 달라는 요청이다.

물론 복잡한 제도를 구체적인 사례로 드러낼 때 문제가 잘 부각될 수 있음을 안다. 하지만 극단적인 사례를 이야기할수록 근본적 원인과 책임 소재가 휘발되고 있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 해당 피해자에 대한 연민과 가해자를 향한 분노는 이런 문제가 전국적이고 구조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잊게 하기도 한다.

고용주들이 이주노동자에게 폐허 같은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 숙소를 제공하는 것은 내국인을 고용한 사장보다 특별하게 더 악독해서가 아니라, 고용노동부가 이주노동자들에게 이 같은 숙소를 제공해도 숙박비 공제를 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건축법상 가설건축물은 주거 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 노동부는 왜 주거용도로 사용할 수 없는 가설건축물에서 이주노동자는 살 수 있다고 판단하는가.

농·축·어업 ‘노동자(E9-3, E9-4)’로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63조에 의해 근로시간, 휴게와 휴일에 관한 규정을 적용받지 못한다. 농촌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1일 8시간 일하기로 한 근로계약서와 다르게 실제 한 달 250~290시간씩 일하면서 겨우 160만~180만원만 받는 이유다. 선진국에 들어섰다고 자랑하는 대한민국이 아직 1953년 제정 당시 근로기준법 조항을 유지하면서 농·축·어업 노동자들을 차별하고 있는 것이다.

고용노동청은 3년 넘게 6천만원 이상 임금체불을 당한 이주노동자를 직권으로 조사해 농장주가 인정한 금액, 3천400만원만 체불금품이라고 확인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경찰이 7천만원에 이르는 체불임금 진정을 하기 위해 출석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노동청 앞에서 체포를 시도하기도 했다. 임금체불을 당한 경우 횟수 제한 없이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있지만 조건이 까다롭다. 노동부 고시에 따르면 월 임금의 30% 이상 금액을 2개월 이상, 월 임금의 10% 이상 금액을 4개월 이상 체불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월급의 10% 정도는 3개월까지 체불돼도 참으란 말인가? 도대체 어떤 기준인지 알 수가 없다.

일할 수 있는 사업장 조건이 사실상 정해져 있는 터라 이주노동자가 회사를 바꿀 수 있게 된다고 해서 임금체불, 장시간 노동, 열악한 숙소, 산재 위험 등에서 완전히 벗어나긴 힘들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의 알선을 믿고 최소 3년간 한국에 일하러 온 이주노동자들이 근로계약서와 다른 노동현실에서 주체적으로 벗어나려 한다 해도 사직할 자유가 없다는 것을 바로 알게 된다. 노동부는 문제가 될 때마다 ‘외국인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업장변경 사유’를 계속 확대해 왔지만, 이제 다 외우기도 쉽지 않은 그 많은 조항들은 모두 노동자가 입증해야만 하는 사유들이다.

최근 한 베트남 노동자는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한국 동료 2명과 베트남 동료 1명이 보호장치 없는 기계에서 사고를 당한 것을 보고 자신도 같은 일을 당할까 봐 두려워 사업장 변경을 ‘요청’했지만 사업주는 사업장변경의 다른 의도가 있어 사고 핑계를 댄다고 주장했다. 노동부는 지난 4월1일 시행한 개정 ‘외국인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업장변경 사유 고시’에서 중대재해 발생(4조4호가목)을 추가했다.

정부는 이주노동자의 송출과 알선업무를 독점하고 있다. 기업들은 자신의 이해와 요구를 해결해 주는 정부에 이주노동자의 취업기간 연장을 요구해 왔고, 도입 규모를 확대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지난해 3월 이주노동자 5명이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없는 고용허가제는 위헌법률’이라고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에 노동부는 대리인단을 통해 고용허가제는 모범적 제도라며 자화자찬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정부는 영하 20도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속헹씨에게, 체불임금을 받지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간 수많은 노동자에게, 산재로 사망한 프레용 자이분씨에게 사과 한 번 한 적이 없다. 반성은커녕 언론보도가 있을 때마다 ‘해명’ 보도자료를 낸다.

최근 대한민국이 삼권분립이 된 나라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아 국회의 책임은 따로 거론하지 않겠다. 문제는 고용허가제다. 모든 책임은 정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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