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는 지난 9일 이재명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광복절 가석방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법무부가 밝힌 사유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국가적 경제상황과 글로벌 경제환경에 대한 고려 차원”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1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지만 6개월 만에 풀려나게 됐다.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부당한 합병을 추진한 혐의로 또 다른 재판을 받고 있는데도 말이다.

4년 전 촛불을 들었던 국민은 무엇이라고 할까. ‘유전무죄, 무전유죄’ ‘재벌특혜’ ‘삼성공화국’이란 오명 앞에 대한민국이 흔들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박범계 법무부 장관을 향해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날 것 그대로의 모순 위에 선 가석방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

▲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
▲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

8월13일 금요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가석방으로 풀려난다. 참으로 부당한 일이다. 그 부당한 일을 정당한 것처럼 포장하기 위해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문재인 대통령은 참으로 애 많이 썼다. 그래도 부당한 것은 부당한 것으로 차갑게 남아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 5월17일에 공시한 올해 1분기 보고서에는 수많은 임원 명단이 수록돼 있다. 일부는 등기 임원이고 나머지는 모두 미등기 임원이다. 수많은 미등기 임원은 딱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상근이다. 즉 회사에 매일 나와서 일하고 보수를 받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나머지 딱 한 사람은 “미등기 비상근” 임원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맡고 있는 일은 가끔씩 출근해서 둘러보기만 하면 되는 그런 종류의 일이 아니다. 회사의 운영을 총괄적으로 책임지는 COO(최고운영책임자) 자리다. 국내 굴지의 삼성전자 운영을 책임지는 자리에 비상근 임원이라. 이상하다. 그 사람이 바로 이재용 부회장이다.

이 현실은 이번 가석방이 내포한 어색함을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다. 주지하듯이 이 부회장은 회삿돈을 빼돌려 사익을 위해 뇌물로 바친 자다. 그 규모도 커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된 중죄인이다. 형기를 모두 마쳐도 회사와 일정 기간 의무적으로 관계를 뚝 끊어야 하는 취업금지 대상이다. 그런데도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을 임원 자리에 그대로 남겨뒀다. 다만 “취업”을 하지 않고 있다고 강변하기 위해 “비상근”으로 해 둔 것이다.

그러나 비상근으로 두었다고 해도 회사의 임원인 것은 맞고 만일 삼성전자의 업무에 문제가 생겨서 책임을 추궁할 때는 COO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감옥에서 형기를 보내고 있는 사람에게 책임을 지라고? 말이 안 되는 얘기다. 결론적으로 이 부회장이 COO로서 활동하지 않는다면 삼성전자는 자본시장에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실제로 일하지 않는 자가 COO로서 일하고 있다고 공시했기 때문에), 만일 이 부회장이 옥중에서 실제로 COO로서 삼성전자 업무를 챙기고 있다면 허위 공시는 아니겠으나, 취업제한 위반이다. 취업제한을 위반한 자를 가석방해 준다고?

이런 논리적 모순은 이 부회장의 가석방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거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가석방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핵심 논거는 반도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통 큰 결단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 부회장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이미 20조원의 대미 투자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이것은 그럼 어떻게 했다는 것인가? 이 부회장이 개입해서 한 결정인가? 아닌가? 이 부회장이 개입해서 한 결정이라면 한편으로 취업제한 위반이라서 수형 생활 중 위법행위를 한 것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얼마든지 옥중에서도 중요한 투자 결정을 할 수 있으니 꼭 가석방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반대로 이 부회장이 개입해서 한 결정이 아니라 삼성전자 이사회가 한 것이라면 이 결정은 이 부회장 없이도 삼성전자는 중요한 대규모 투자 결정을 정상적으로 잘 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 것이다. 그럼 이 부회장이 필요 없다. 어떤 경우건 이 사례는 이 부회장의 가석방 논거로는 사용 불가능하다.

그럼 결국 남는 것은 무엇인가? 재벌 총수에 대한 특혜를 적법절차로 포장하려는 억지뿐이다. 재벌 총수 앞에는 법률도 대선공약도, 촛불 국민의 명령도 없다는 날 것 그대로의 대한민국의 현실만이 덩그러니 우리 눈앞에 있는 것이다.

“이게 나라냐?”라는 촛불 혁명의 구호 옆에 늘 같이 붙어 다녔던 또 다른 구호는 “재벌도 공범이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재벌을 개혁하는 것은 촛불의 명령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그걸 어긴 것이다.

 

기회는 불평등, 과정은 불공정, 결과는 부정의
김주호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팀장

▲ 김주호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팀장
▲ 김주호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팀장

“(재벌총수들은) 이미 형량에서 많은 특혜를 받고 있는데 또 가석방에서도 특혜를 받는다면 그것은 저는 경제정의에 반하는 그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위 발언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5년 1월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일 당시 최태원 SK 회장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가석방 시도에 대해 반대하며 발언한 내용이다. 2014년 2월 대법원은 465억원의 회사자금을 횡령한 최태원 SK 회장에게 징역 4년을 확정했다. 이에 재계와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기업인 가석방의 불을 지폈고, 2015년 1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에서 “기업인이라고 해서 어떤 특혜를 받는 것도 안 되겠지만 또 기업인이라서 역차별을 받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법 감정, 또 형평성 이런 것을 종합적으로 감안해서 법무부가 판단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법무부로 공을 넘겼다. 이에 당시 문재인 의원은 재벌총수들에 대한 사면은 물론 특혜 가석방 또한 경제정의에 반하는 일이라며 반대했다. 결국 최태원 회장은 사면대상자에서 제외됐고 그 다음해 대통령 특사로 자유의 몸이 됐다.

2021년 1월 국정농단 재판 파기환송심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에게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등을 도와 달라는 청탁과 함께 회삿돈 87억원을 횡령해 뇌물로 건넨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국정농단의 공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뇌물 혐의로 징역 15년을 받은 점, 횡령액이 50억원을 넘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법정형이 징역 5년에서 무기징역인 점 등을 감안하면 2년6개월의 형량도 특혜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후 온 나라를 촛불로 가득 채웠던 국정농단의 공범, 무려 87억원의 회삿돈을 횡령해 불법승계에 활용한 범죄자는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무산됐던 ‘특혜 가석방’을 통해 불과 207일 만에 자유의 몸이 됐다.

박범계 법무부장관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가석방이 특혜가 아니라며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국가적 경제상황과 글로벌 경제환경에 대한 고려 차원’라고 밝혔다. 이에 더해 법무부는 최근 3년간 형기를 채우지 않은 가석방자 인원이 244명이고, 2020년 추가 사건 진행 중 가석방이 허가된 인원이 67명이라며 특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여기에 청와대는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로 내세운 재벌총수에 대한 사면권 제한 약속을 정면으로 돌파하기는 민망했던지, 가석방은 법무부가 규정과 절차에 따라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청와대가 언급할 사안은 아니라며 책임을 법무부와 가석방심사위원회에 떠넘기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미 국정농단 재판에서 일련의 불법행위가 승계작업의 일환이었다는 사실이 인정됐음에도 이후 재판에서 혐의를 부인하는 등 반성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다. 또한 가석방 결정이 현재 진행 중인 삼성물산 불법합병, 프로포폴 투약 혐의 등 재판에 부당한 영향력을 미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이 부회장은 애초에 가석방 제도의 취지나 조건에 맞지 않는 인물이다. 완화된 조건을 적용해야 할 모범수형자, 생계형 범죄자, 노약자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만약 박범계 장관의 발언처럼 경제상황이 가석방의 사유라면 과연 국정농단이라는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경제상황’을 이유로 가석방되는 일반 국민이 몇이나 될 것이며, 앞으로 풀려나지 않을 중범죄자가 어디 있겠는가.

불행히도 문재인 정부의 ‘이재용 구하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벌써부터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가석방에 따른 경영활동 제약에 대해 불편이 없도록 해 달라고 법무부 장관에게 요청했고, 부총리 본인이 잘 챙기고 있어서 추가로 요구할 게 없었다는 경총 회장의 인터뷰까지 나오고 있다. 이대로라면 취업제한 해제는 물론이고 사면까지도 밀어붙일 모양새다. 촛불의 정신을 이어받아 적폐청산과 재벌개혁을 이뤄내겠다던 문재인 정부는 이미 이재용 특혜 가석방을 통해 건너서는 안 되는 강을 건넜다. 문재인 대통령은 더이상 법무부 장관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이재용 특혜 가석방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모든 국민 앞에 떳떳이 밝혀야 할 것이다. 온 국민 앞에 재벌총수 특혜 가석방을 반대했던 2015년 1월의 문재인은 지금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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